▲한 미국가족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식사를 주문하고 있다.강인규
단적인 예로 미국에서 맥도널드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흔히 사람들이 한 사람 몫으로 주문하던 햄버거, 감자튀김, 그리고 탄산음료를 모두 더해도 600㎈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날 맥도널드 매장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수퍼사이즈(Supersize)' 메뉴로 앞의 세 가지 음식을 주문하면 총열량은 1500㎈를 쉽게 넘어선다.
오늘날 외식업계는 가격 할인을 미끼로 사람들로 하여금 개별 제품보다는 '세트메뉴(value meal)'를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돈 몇 푼만 더 내면 양을 늘려주는 '수퍼사이즈' 전략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비단 맥도널드뿐 아니라, 버거킹, 웬디스, 케이에프씨 등의 대다수 패스트푸드 체인점에 일반화되어 있다.
비만: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
외식산업의 상업전략은 우직한 '끼워팔기'와 '늘려팔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거리로 발을 옮기거나 신문과 잡지를 펼쳐 들 때, 그리고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켜거나 극장에 들어설 때 우리들의 감각은 끝없이 먹을 것을 권하는 상업적 메시지에 압도된다.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보도 역시 먹는 것의 문제점보다는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언론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광고주로 성장한 식음료업계의 비위를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먹을 것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음식섭취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통제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과다한 음식섭취가 단순히 개인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그 원인 역시 개인이 통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차원이라면, 비만의 책임을 한 개인의 '나태'나 '의지부족'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음식을 먹도록 유도하는 수많은 정교한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누가 억지로 먹으라고 했느냐'는 항변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역사 대부분은 궁핍의 시기였다. 수렵과 원시경작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간이 자연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음식을 얻는 일은 결코 순탄한 일이 아니었다. 음식이 주위에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먹어 두어 기아를 면하고 종족 번식을 위한 에너지를 얻으려는 노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본능에 속한다.
그러나 음식의 생산, 보존, 수송수단이 발달하고 누구나 손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생존의 본능은 오히려 존재를 위협하게 되었다. 더구나 음식의 생산량이 수요를 넘어서게 되면서 시작된 식음료업계간의 치열한 경쟁과 판매촉진 전략은 사람들을 '죽도록 먹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인간의 본능과 환경의 불일치, 그리고 '음식 권하는' 사회적 유혹은 비만을 결코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뉴욕대학 영양학 교수인 마리언 네슬은 비만의 해법을 개인의 의지가 아닌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는 사회환경의 변화에서 찾는다.
네슬은 자신의 저서 <음식의 정치학: 식음료산업이 영양과 보건에 끼친 영향(Food Politics: How the Food Industry Influences Nutrition and Health)>을 통해, 한 개인이 음식에 대한 사회적 유혹을 의지력만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사회적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잉여생산된 음식을 팔기 위해 미국에서만도 매년 300억달러씩 광고비로 쏟아붓는 업체들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배고프지 않아도 먹도록 만들며, 심지어는 포만 상태에도 음식을 찾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회환경이라는 것이 네슬의 말이다.
"'수퍼사이즈'로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