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을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9)

등록 2004.06.20 15:18수정 2004.06.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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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창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한창 흐드러지게 핀 감자꽃 ⓒ 박도

내 집 앞길에는 이따금 차들이 지나다닌다. 마을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뒷산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있다고 했다. 이곳에 온 뒤로 나는 그곳에는 어떤 마을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마침 안흥 장터에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 역마끼를 아내에게 넌지시 알리자 쉽게 차머리를 뒷산 고갯마루로 돌렸다(나는 여태 운전면허증이 없다).


a 전나무 숲길

전나무 숲길 ⓒ 박도

집에서 조금 달리자 전나무 숲길이 나오고, 잠시 후 고개를 넘자 곧 환상의 산마을이 나왔다. 사방을 둘러보자 어디나 신선이 사는 듯한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내 눈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스위스 산마을보다 이 마을이 더 아름다웠다.

그동안 나는 유럽대륙 여러 나라, 중국대륙, 미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우리 국토만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나라는 여태 보지 못했다. 정말 우리나라 산하는 끝내주도록 아름답다.

산길을 조금 더 달리자 마을 들머리를 알리는 장승이 서 있었다. '송한리'라고 했다. 장승 옆 입간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a 마을 들머리의 장승

마을 들머리의 장승 ⓒ 박도

어서오세요. 우물가의 둥지처럼 포근한 쉼터가 있으며, 가마솥의 누룽지와 그 숭늉 맛을 풍기는 촛불의 심지 같은 마을 송한리입니다….

고향을 아끼는 순수한 농부들이 100여 가구가 오순도순 살던 기름진 곳이었으나 1980년대 이농현상으로 농촌을 떠나 이제는 몇 가구만 남아 마을을 지키면서 고랭지 무, 배추, 감자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저희 마을은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580~ 670미터의 지대로써 이곳을 다녀가면 가슴이 후련하고 살맛이 난다는 곳, 송한마을입니다.
송한리 주민 일동


산비탈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다. 감자 꽃이 이토록 예쁠 줄은 미처 몰랐다. 차에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 이렇게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동네를 두고 마을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도시로 갔을 테지.


a 송한리 마을 소개 입간판

송한리 마을 소개 입간판 ⓒ 박도

그들은 허리가 휘도록 농사를 지어도 품값도 나오지 않아서, 아이들 교육을 남부럽지 않게 시키기 위하여, 한 집 두 집 떠난 게 이렇게 산마을을 텅 비게 만들었나 보다. 한동안 기웃거려도 몇 집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 밭 감자는 봐주는 이도 없는데도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고, 길섶의 개망초도 함초롬히 피웠다. 이상의 <권태>에서처럼 정말 "도둑이 이 마을에 와도 도심(盜心)을 잃어버릴 것" 같은 산마을을 한참동안 헤매도 누구 한 사람 맞아주는 이도, 개 짓는 소리도 없었다.

나는 무주공산인 언저리 산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황홀경에 빠져 카메라에 담고는 발길을 돌렸다. 이 아름다운 산마을을 두고 왜 사람들은 좁은 저자거리에서 아귀다툼을 하면서 살아갈까?

a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1)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1) ⓒ 박도


a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2)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2) ⓒ 박도


a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3)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3) ⓒ 박도


a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4)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4) ⓒ 박도


a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5)

송한리에서 바라본 산하(5) ⓒ 박도


a 길섶에 핀 개망초

길섶에 핀 개망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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