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나는 인간'이 뭔 뜻이냐?

아날로그형인간의 디지털 분투기(6)

등록 2004.06.23 12:43수정 2004.06.23 18: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는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창조적(?)이기까지 한 외계어를 보고 있자면 다른 차원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상에 유포되고 있는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창조적(?)이기까지 한 외계어를 보고 있자면 다른 차원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얘, 짱이란 게 뭐냐?”

어느날 어머니가 매우 궁금한 표정으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짱'이란 단어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하신다.


"갑자기 짱은 왜요?"
“궁금하니까 그렇지.”
“원래 중고등학교에서 최고로 싸움 잘하는 애를 말했는데 요즘 '최고'라는 의미로 확대되었어요. 거 '얼짱', '몸짱' 하잖아요. 얼짱은 얼굴이 최고인 사람이고 몸짱은 몸매가 최고인 사람이에요. 하하, 우리 어머니도 얼짱 할머니이긴 하지….”

농담으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내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아직 궁금증이 풀어지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뭘 보셨길래 그래요?”
"아니, 인터넷에서 댓글을 보다가 “짱나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길래.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말이야. 네 설명이라면 좋은 뜻인데 그 글은 비난하는 글이었거든…."

아하, 이제야 어머니의 의문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짜증 난다'의 준말인 '짱 난다'와 '최고'라는 의미의 '짱'이라는 말을 혼동하신 것이다. 마우스를 서툴게 클릭하며 조심조심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인터넷 체험기는 재미는 있으나 너무 힘든 가시밭길(?)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어머니의 경우는 인터넷에서 인터넷 신문의 댓글을 주로 접하는 수준이니 이해 정도가 양호한 편이다. 만약 그보다 심한 대화방에 들어가셨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よøぎᄒビλĦᄒコ_¤(안녕하세요)"라는 표현처럼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창조적(?)이기까지 한 외계어에 경악하셨을 것이다.


이모티콘에서 외계어까지

최근 국어 교사인 친구를 만나 인터넷 상의 잘못된 한글 사용 습관이 초등학생들의 맞춤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험에서 ‘겸허한’을 ‘겨머안’으로 ‘멋쩍은’을‘머쩌근'으로 쓰고 나서 왜 틀렸는지를 이해 못하는 아동들이 많다는 사례를 신문 보도를 통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저 'S대 신입생이 한자를 모른다더라' 정도의 가십성 기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그 친구는 인터넷 상에 떠도는 유행어 식의 잘못된 한글 단어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직 정확한 맞춤법을 미처 습득하지 못한 시기의 초등학생이 잘못된 인터넷 상의 한글 단어를 자주 접함으로써 올바른 한글 맞춤법 체계 자체에 혼동이 생기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중고등학생 정도면 최소한 자신들이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글 단어의 맞춤법이 틀렸다는 사실은 알면서 재미로 잘못된 한글을 쓰고 있지만 초등학생의 경우는 틀렸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부족한 게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오빠 안녕하세요'나 '옵하 안냐세여'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가르쳐 주면 대뜸 인터넷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쓰고 있는데 왜 틀렸다고 그러냐고 오히려 질문이 들어올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 상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 상에서 한글의 오용 문제가 심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준말과 받침 파괴, 이모티콘에서 외계어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나가는 언어 파괴 현상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자유로운 가상 공간에서 나름대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된 현상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사용하지 말라고 해 봤자 별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책 없이 방치할 정도로 낙관적인 상황은 아닌 것같다.

그렇다면 기존의 국어교육과는 다른 개념의 유치원과 초등학생용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까지 기초맞춤법이 몸에 자연스럽게 습득될 수 있도록 컴퓨터 게임의 형식을 빌려 만든 한글 맞춤법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 말이다.

"빠순이, 빠돌이는 또 뭐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여전히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 있다.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
“그건 아니구. 애, '노빠'는 뭐고 ?”
“그런 단어는 또 어디서 보셨어요?”
“뭐, 댓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더구나.”

그러더니 갑자기 역정을 내신다.

“남의 글을 보고 의견을 달거나 반박을 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야지. 무작정 이상한 단어를 섞어 가며 욕부터 하니 나같은 무식한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더냐, 괜히 기분만 나빠지더라.”
"하하하, 우리 어머니 짱 나셨네."

'노빠'의 의미를 간단히 가르쳐 드린 후 나는 다시 인터넷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몰래 훔쳐 보았다. 어머니야말로 일제 시대와 광복, 미군정, 6·25, 군사독재 시대라는 급변하는 시대를 거쳐 왔는데도 쉬지 못하고 또 다시 디지털 기기로 둘러싸인 낯설고 두려운 세상에서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가기를 강권당하고 있었다. 문득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경쟁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달하는 현재의 내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 너무 안달하며 살지는 말자. 컴퓨터를 만든 이도 인간이고 사이버 스페이스를 구축한 것도 인간인데 너무 기죽어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일 테니까.

그러니 어머니,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만 그 일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스트레스 받지는 마세요. 인터넷 상의 이상한 단어 몇 마디 이해 못한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기야 하겠습니까?. 당당하게 헤쳐나가세요. 그런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에서 앞으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나갈 자신감 있는 내 모습을 꿈 꾸고 있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