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김선일씨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가 애원할 때, 나는 저절로 내가 잡혀있는 상상을 했다. 애통하게 "나는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느꼈을 우물 같이 깊은 절망감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겁에 질린 그가 몸부림을 칠 때, 나는 그가 떠올렸을 ‘대한민국의 의미’에 가슴이 미어졌다.
납치를 당한 그 기간 동안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를 비롯한 참여정부는 한 사람의 국민이 온 몸으로 느꼈을 공포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김선일씨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이국만리 땅에서 공포에 떨면서 죽어갔다.
한 사람의 학생이 존중되지 않으면서 학생 전체를 존중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직원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전체 직원을 존중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국민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국민 전체를 존중할 수 없다.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우리는 이제 겨우 ‘전쟁의 광폭함’을 조금 엿보았을 뿐이다.
부시정권이 전쟁의 이유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와 ‘알카에다 연관설’은 모두 완전한 허구로 드러났다. 더구나 유럽 국가들은 점점 통제불가능 상태로 변해가는 이라크전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더러운 전쟁’에 왜 우리가 가야한단 말인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죽어야만 이 전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한국군이 이라크에 가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더 물러서면 이제 벼랑 끝이고, 한국도 전쟁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될 것이다. 제발 이 추악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NO’라고 말할 수 있기를,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