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양이들에 대한 그리움

등록 2004.07.06 12:51수정 2004.07.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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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지지난해 고양이에 대한 얘기를 여러 번 썼다. 2002년 9월 11일 '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라는 글을 쓴 것을 시작으로 2003년 7월 18일 '내 곁에서 사라진 고양이들'이라는 글까지 도합 11편의 고양이 관련 글을 썼다.


그 고양이 이야기들을 꽤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었다. 글을 너무 재미있게 써서 얄밉다고, 내게 재미있는 '항의'를 하신 분도 있었다.

그 고양이 관련 마지막 이야기를 지난해 7월에 쓴 후로 얼추 1년이 되어간다. 엊그제 메일로 그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 주면서 그 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신 분이 있었다.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수만 가지 일들이 시시각각 세포분열 하듯이 파생하며 망각의 어둠 속으로 숨가쁘게 침몰해 가는 이 바쁘고도 정신 없는 세월 속에서 1년 전의 마지막 고양이 이야기를 상기하며 그 후의 일을 궁금해하는 분이 계시다니…!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내 고양이 관련 이야기가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면 굳이 마무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테지만, 그 모든 일들은 이미 과거완료형이 되었으므로, 관심을 표해 주신 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릴 겸 뒤늦게라도 마무리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부터 고양이 관련 마무리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동창 친목회 참석이 그 계기였다.

매월 11일 초등학교 동창 친목회를 할 적마다 남은 음식을 챙기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나와 한 명의 여자 동창이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줄 생선류와 약간의 밥을 챙기고, 그 여자 동창은 개에게 줄 육류를 챙겼다. 그런데 나는 지난 봄부터 그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챙기던 생선류도 모두 그 여자 동창의 차지가 되었다.

그 여자 동창은 생선류와 육류와 밥 등 남은 음식을 모두 독차지해 가면서도, 전처럼 생선류를 챙기지 않는 내게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조금은 섭섭했다. '둔감하면서 욕심만 많은 여편네'라는 느낌이 슬며시 들 정도였다.


그런데 단 한 명의 동창 친구가 남은 생선류 음식을 챙기던 내 과거지사를 기억해 주었다. 왜 오늘은 남은 생선을 챙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그가 했다. 그의 그 의문이 나는 참으로 고마웠다. 정말 묘한 마음이었다. 고마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내 마음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읎어. 내게서 밥을 얻어먹던 한 마리 남았던 고양이마저 어디 가서 죽었는지 얼마 전부터 오지 않거든."
"그려? 그럼 친구 마음이 좀 서운허겄구먼?"
"서운허지. 허전한 마음이기두 허구…."

그때부터 서운하고 허전한 심사를 달랠 겸 내 곁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진 그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을 마무리 글로 옮기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난 봄 어느 날 아침부터 마지막 남은 얼룩잿빛 수놈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마다 내가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을 끄러 밖에 나가면 으레 반가운 인사를 하던 녀석이었다. 혼자 남아서 좀 쓸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앞지르기도 하며 강아지처럼 따라다니고 적당한 곳에서는 몸을 뒹굴기도 하던 녀석이었다.

연립주택 맨 뒷동 앞에서 작은 개와 만나면 한 순간 등을 한껏 구부려 세우고 잠시 대항을 할 듯 하다가는 달아나 버리는, 그리고 그때는 내 뒤에 더욱 바짝 따라붙는 겁도 많고 영리하기도 한 놈이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 아침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루 내내 틈틈이 밖에 나가서 녀석이 집 앞에 나타났는가 살폈다.

하지만 그 날 하루종일 나타나지 않은 녀석은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죽은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서 무슨 일로 변을 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녀석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3일 동안 뒤 베란다 구석에 보관했던, 녀석에게 여러 날 줄 수 있는 음식을 어머니는 뒷동의 개에게 갖다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고양이 냄비를 깨끗이 닦으며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어느덧 나의 아침은 허전해진 상황이었다. 불을 끄러 발을 옮길 때 간혹 녀석의 몸이 내 발에 채이기도 해서 조금은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던 일이 금세 그립고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았다.

녀석은 지지난해 가을 처음 내게로 와서 밥을 얻어먹기 시작했는데 두 눈 색깔이 다른 흰색 암코양이의 새끼와 달랐다. 다른 고양이의 새끼인데도 흰색 암코양이의 가족 속으로 끼어 들어와서 내게서 밥을 얻어먹으며 자랐다. 형제가 아닌 탓에 흰색 암코양이 새끼들 중 수놈 새끼고양이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그 놈의 눈치를 보고 늘 견제를 당했다.

그런데 애초 객이었던 그 녀석이 끝까지 남았다. 한때 다섯 마리나 되던 내게서 받을 얻어먹던 고양이들이 이런저런 일로 차례로 사라지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그 녀석이 바로 네 마리 가족 속으로 끼어 들어와서 특히 새끼 수놈고양이한테 구박을 받았던 놈이었다.

그 사실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내게 갖게 했다. 홀로 남은 녀석에게 밥을 줄 때마다 운이 좋은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녀석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아침에 밥을 줄 때는 다른 노란색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내 승합차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현관 안을 넘봤다. 내가 고양이 밥그릇에 밥을 부어주고 집에 들어와 있으면 곧 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문에 몸을 부딪는 소리였다.

문을 열고 보면 주인 격인 얼룩잿빛 수놈 고양이가 객인 셈인 노랑 고양이에게 밥그릇을 내주고 쫓겨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현관으로 나가면 노랑 고양이는 금세 달아났다. 그러면 얼룩잿빛 수놈 고양이는 다시 밥그릇을 차지하고 먹는데, 나는 녀석이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그 자리에 한참씩 서 있어주어야 했다.

생각하면 묘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나에게서 밥을 얻어먹으니 얼룩잿빛 수놈 고양이는 주인 격이었다. 그리고 노랑 고양이는 객인 셈이었다. 체구도 노랑 고양이가 작았다. 그런데도 주인 격인 녀석이 우리 집 현관 안에 있는 밥그릇을 객에게 빼앗기고 문 쪽으로 쫓겨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내가 집 밖으로 나가면 노랑 고양이가 금세 달아날 줄 알고 얼룩잿빛 고양이가 먼저 의기양양한 기세로 다시 밥그릇 쪽으로 달려가곤 하니, 그런 녀석을 보면서 쿡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승합차 밑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도 나중에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밥을 더 부어주었다.

그러나 어느덧 그 모든 일은 끝이 났다. 얼룩잿빛 수놈 고양이가 사라진 다음에는 노랑 고양이도 오지 않았다. 가끔 집 근처에서 노랑 고양이를 만나는데 녀석은 내게 알은 체도 하지 않는다.

지난 2002년 가을부터 금년 봄까지 햇수로 3년 동안 반 야생고양이들과 사귀던 세월은 이제 끝이 났다. 가족 외식이나 모임 회식을 할 때마다 음식점에서 남은 밥과 생선류 음식을 가져오는 일도, 그 음식들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일도, 아침마다 물을 끓여 생선의 소금기를 우려내고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도, 동네의 가로등 방범등을 끄러 돌아다니는 아침마다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던 일도 어느새 모두 지나간 일, 추억이 되어버렸다.

아쉬움과 허전함이 크고, 이런 일에서도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지만, 내 삶 안에 그런 추억들이 존재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여러 마리의 반 야생고양이들이 한때나마 내게서 밥을 얻어먹고 서로 접촉하고 정을 나누며 살았다는 것은 정말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생각하면 그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2세 고양이를 좀더 신속하게 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한 일, 2세 수놈 고양이를 다 자란 상태에서 무모하게 분양을 시도하여 떠돌이가 되게 한 일, 새끼를 낳은 2세 어미 고양이로 하여금 여러 번 거처를 옮기도록 내가 새끼들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인 일, 모녀 고양이가 쥐약 먹은 쥐를 먹지 않도록 좀더 음식을 충분히 주지 못한 일 등을 생각하면 그 사라진 고양이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나와 최초로 인연을 맺었던 두 눈의 색깔이 다른 흰색 암코양이의 손자 하나가 살아 있음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새끼 시절에 남산리 사돈댁에 내 손으로 분양을 해드린 놈인데, 녀석이 특이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밭일하러 나가는 주인들을 먼 밭에까지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 자란 지금에는 쥐를 기막히게 잘 잡는다고 한다.

종종 남산리 사돈댁엘 가는데, 이 다음에 다시 사돈댁에 가서 그 녀석을 보게 되면 참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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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돌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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