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주의에 '이건 아니야' 외치는 꽃들

내게로 다가온 꽃들(65)- '애기'자가 붙은 아가 같은 꽃들

등록 2004.07.07 17:11수정 2004.07.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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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 중에는 '애기' 자가 붙은 꽃들이 많습니다. '애기'자가 붙은 꽃들은 우리의 '애기'들이 작고 예쁘듯이 아가들을 닮아서 예쁘고, 작고, 앙증스럽습니다.

강원도에서 만난 '애기똥풀'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주에서 만난 꽃들입니다. '애기'자가 들어간 꽃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화두를 온 몸으로 간직하고 사는 꽃 같아서 숙연해 지고, 동시에 행복해 집니다. 물신주의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해 온 몸으로 '이건 아니야!'하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서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아기들이 왜 예쁜가요? 아가들이 한 번 웃어주기만 해도 왜 그렇게 우리들은 행복한 것일까요? 그 웃음 한 번 보기 위해 우리들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재롱을 핍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재롱(?)을 피는 그 순간 만큼은 우리들에게서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가들이 뭘 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웃어만 주면 행복한 것이니, 아가들이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덩어리인 것이죠.

김민수
애기나리는 5월 초 한라산을 오르는 길에 만났습니다.
드문드문 피어 있는 애기나리는 그 작은 꽃을 달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리꽃들 중에서는 하늘말나리와 몇 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그리니 겸손한 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나리꽃을 중국에서는 '백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백합이라고 부르는 꽃도 '나리꽃'이죠. 그러니 애기나리의 꽃말은 백합의 꽃말을 따라 '순결'이라고 하면 될 것 같고, 거기에 '애기'자가 들어가니 '참 작고 소중한 순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꽃의 색도 은은한 아이보리라고 해야 할지 초록이라 해야할지 모를 화사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꽃입니다. 그러나 그 수수함이 순수함으로 다가오고, 치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의 여운을 길게 남기는 꽃입니다.

성형미인, 화장미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수수한 맨 얼굴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김민수
애기달맞이는 길섶, 해안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달맞이꽃은 해가 지면서부터 그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가 활짝 피어 있는 꽃입니다. 애기달맞이라는 이름이 붙은 내력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큰 달맞이꽃이 있었어. 달맞이꽃은 알다시피 밤에 달을 맞이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밤에만 피는 꽃이거든. 밤은 무섭잖아. 그런데 무서우니 혼자서 피어 있기보다는 짝을 지어 무리지어 피어 있었고, 두런두런 달을 보면서 별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다가 달맞이꽃이 아기를 낳았지 뭐야. 그게 애기달맞이꽃이라나?"

제주의 들녘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생각에서부터 그동안 삶을 살면서 받았던 상처들과 아픔들이 말끔히 씻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꽃에게로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김민수
애기도라지꽃은 도라지꽃과 닮았는데 그 꽃이 아가들의 새끼손톱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꽤나 작은 꽃이죠. 그러면 애기도라지도 달맞이꽃처럼 그렇게 태어났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적한 숲길에 자라는 것으로 보아 도라지밭(엄마, 아빠가 있는 곳)과는 먼 곳에 있으니 그런 개연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파리와 뿌리도 다르고 단지 꽃과 열매만 비슷할 뿐입니다.

아직도 만나긴 했어도 변변한 사진을 가지지 못한 꽃이 있습니다. 애기도라지꽃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홍노도라지'라는 하얀꽃인데 지난 해 홍노리가 아닌 성판악으로 백록담을 오르다 계곡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배터리의 부족과 어두운 배경으로 인해 당시의 사진기술로는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젠 담을 수 있겠다 싶은데 그 꽃을 이젠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애기도라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그런데 고맙게도 작년에 피어있던 그 곳에 작년보다 더 무성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니 그 작은 몸으로 온 겨울을 나고 피어났다는 것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김민수
애기똥풀은 줄기를 잘라보면 노란진액이 나오는데 마치 아가들의 똥 같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가들이 노란 황금똥을 싸면 건강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애기똥풀의 줄기에는 꼭 그런 황금똥 같은 진액이 나옵니다. 그러니 참 건강한 꽃인가 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애기똥풀이 한 마디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건강하죠. 그러니 당신의 마음을 그렇게 환하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사랑도 없는 것이겠지요. 안에 고여있는 사랑이 아니라 안에 고임으로 차고 흘러서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건강한 이웃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이기적인 자기사랑도 그렇겠지요.
흐르는 물은 늘 깨끗해서 생명을 살립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겠지요.

김민수
애기풀꽃은 고사리를 꺽는 시기의 말미쯤에 피는 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기 전에 오름과 억새풀 사이에서 아주 잠시 피는 작은 꽃이라서 많은 이들이 그냥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는 꽃이기도 합니다. 작은데다가 흔하지 않아 보아주는 이가 많지 않지만 그래서 자신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애기'자가 들어간 꽃들.

그들이 주는 아름다움 외에도 저는 거기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화두를 얻습니다. 물신주의사회에서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일, 그리고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하는 일은 어쩌면 부질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가들이 품고 있는 꿈을 보세요. 부질없어 보이지만 얼마나 소중한 꿈이고,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질지 상상해 보는 일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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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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