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방식으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기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11)

등록 2004.07.13 07:16수정 2004.07.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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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냉장고에 집어넣기


예전에 한참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은 방법'이라는 우스개가 회자된 적이 있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우스개가 아닌 실제 문제라면 어떻게 해결할까? 아날로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예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특이하게 '불가능은 없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사고에 뿌리 박힌 몇몇 유능한 사람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기 위해 코끼리 만큼 큰 냉장고를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코끼리를 냉장고 크기에 맞춰 살점을 베어내다가 그것도 안되면 뼈만 집어넣는 방식을 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70, 80년대만 해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밤낮을 세워 코끼리 만한 냉장고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나 코끼리를 죽여 뼈만 집어넣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원하는 발전을 이루어낸 것도 사실이다.

비록 밤낮을 세워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과 과다한 근로시간으로 골병이 들더라도, 죽은 코끼리를 내놓으라는 코끼리 주인의 원성을 최루탄으로 막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런 부작용쯤은 우리가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누군가는 그렇게 해야 했다고 대중들을 끊임없이 설득했고 그 설득이 당연하고 옳은 것이라 믿었다.

만약 디지털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보라고 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디지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우선 코끼리를 비트화 시키려고 할 것이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비트화 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디지털 카메라나 디지털 캠코더를 이용하여 동영상이나 그림파일을 만들고 냉장고 안에 냉장고 속 크기에 맞춰 축소한 영상파일을 프로젝터로 비추거나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제 모습과 똑같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았을까?

물론 보다 과학이 발달한다면 코끼리 유전자 분석자료를 비트화 시켜 그와 똑같은 소형 복제 코끼리를 만들어 집어넣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밖에도 더욱 다양한 방법의 비트화가 가능할 것이다.


일단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비트화 시키면 그 다음의 이용도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될 것이므로 개성에 따라 수백 수천 가지의 코끼리 냉장고 속 집어넣기가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획일적, 통일적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맞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고가 바뀌면 행동도 바꿔야

이제 우리가 보기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놀랄 만큼 변화되었고 우리의 사고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코끼리를 죽여서 그 뼈만 냉장고에 넣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논리는 점점 사라지고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시대가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직까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사회인 탓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간혹 아날로그 때를 그리워하며 그 때의 방식을 답습하려는 유혹을 많이 받게 되는 것 같다.

코끼리에 맞는 냉장고를 납기일에 맞춰 만들어내기 위해 생산자를 독촉하여 고생 끝에 만들어 냈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후 부실제작으로 냉장고문이 떨어져 그 안에 있던 코끼리가 다치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러한 사소한 문제는 그 때 가서 흔들리는 문짝을 새로 다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목표지상주의적인 생각 탓에 안에 있는 코끼리만 이리저리 부대끼고 괴로움을 당할 우려가 커진 것이다. 그동안 코끼리는 더욱 커지고 예민해졌는데도 말이다. 냉장고에만 집착할 뿐 커지고 예민해진 코끼리의 고충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디지털 세상에 땜빵(?)은 없다

아마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잡음이나 괴로움이 사라지면 커다란 냉장고를 만들 것을 결정한 사람은 스스로 만족감과 성취감을 가질 것이다. 냉장고를 만들고 코끼리를 집어넣는 과정에서 코끼리야 괴로움을 당하던 말건 일단은 코끼리가 들어가는 냉장고를 만들어내지 않았느냐고…. 어느 누가 감히 나처럼 커다란 냉장고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고 그 목표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느냐고 말이다. 또 괴로웠던 지난 날을 잃어버리고 그 주장에 동조하는 코끼리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사고로는 도대체 '왜 그 시기에 그렇게 커다란 냉장고가 필요하며 꼭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디지털세계에서는 '땜방'이라는 단어는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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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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