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생명의 세계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등록 2004.07.22 14:35수정 2004.07.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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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철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었다가 지리라
    바람으로 피었다가 바람으로 지리라
    누가 일부러 다가와
    허리 굽혀 향기를 맡아 준다면 고맙고
    황혼의 어두운 산그늘만이
    찾아오는 유일한 손님이어도 또한 고맙다
    홀로 있으매 향기는 더욱 곱다
    하늘 아래 있어 새벽이슬 받고
    땅의 심장에 뿌리박아 숨을 쉬니
    다시 더 무엇을 바라리요
    있는 것 가지고 남김없이 꽃 피우고
    불어가는 바람 편에 말을 전하리라
    빈들에 꽃이 피는 것은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넉넉하게 피는 것은
    한평생 홀로 견딘 이 아픔의 비밀로
    미련 없는 까만 씨앗 하나 남기려 함이라고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었다가 지리라
    끝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지리라


    (이현주 詩.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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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나무는 꽃이 핀다. 그것은 아름답기도 하고 향기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꽃잎이 떨어졌을 때, 떨어진 꽃잎을 보고 묻는다면, 꽃이 된다는 작업은 아무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쓸모없는 꽃이지만 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가을날 뒹구는 낙엽을 보고 저렇게 다 땅에 떨어져 버릴 이파리를 나무는 왜 되풀이 하는 걸까?

그러나 때가 되면 나무는 다시 잎을 피워낸다. 우리는 쓸모없는 일을 쓸모없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일 속에서 쓸모 있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시 땅으로 되돌려 줄 낙엽과 같은 것일지라도 쓸모없음을 이겨내며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값진 것이다.

잎이 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운 것은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줄기가 생기고 열매를 맺는 것, 그것 역시 아무 쓸모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씨앗 안에서 무엇인가 흙을 헤집고 나와 잎이 되고, 그것이 줄기가 되고, 또 다시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마치 하나의 씨앗이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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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가치를 넘어서, 그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의 생명을 그대로 피워내는 것이다. 그것은 소중한 것이며,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없어지지 않을 영원한 것이다.

우리가 터득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쓸모도 없는 씨앗을 세상 끝까지 퍼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똑같은 가치 속에서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색다른 것은 없다. 쌈빡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하찮은 것도 없다. 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직 저 밖에 나무들이 봄을 맞아서 꽃이 피고, 향기가 나고, 그리고 열매를 맺고…. 그것이 색다르다면 색다른 일이고, 신비하다면 신비한 일이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한다. 조그만 씨앗 하나를 정성스럽게 흙 속에 묻어야 하고, 골고루 물도 뿌리고 영양분도 주고, 그 꽃이 만발하기 전까지는 항상 그 꽃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먼저 내세우게 될 때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배타적인 인생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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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넓은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물방울이 자기 세계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자기보다 더 낮은 세계로 그 낮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기가 스스로 거기에 몸담아서 그리로 뛰어들었을 때, 그것이 다른 물방울에게도 감응을 일으켜서 뛰어들고 또 뛰어들고…. 이렇게 불려나간 것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만한 물방울은 없을 것이다.' 그 물방울은 어디에도 자기를 섞으려 하지 않고 자기 덩어리만 고수할 때 그는 곧 말라 없어져 버린다. 대기가 그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조그만 물방울이 커다란 바다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조그마한 자기 세계를 죽이고 몸을 던져서 시내 위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물방울'의 세계로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물방울 자신에게는 스스로 꽃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명의 세계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를 이루고, 작은 물방울이 큰 바다를 이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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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철


    작은 것들 모두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꽃에게도 풀잎에게도 물방울에게도
    내 기쁨을 두 배로 해주고
    내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는
    친구에게도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너에게도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픈 것일까
    이름 부르는 일이 그립다는 말보다
    왜 이렇게 더 간절한 것일까

    (천양희 詩.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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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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