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만 드리우면 월척이우다"

낚시 천국 인심 천국 추자도 기행

등록 2004.07.26 16:41수정 2004.07.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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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한가운데로 접어드는 제주는 요즘 온 섬이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제주의 공항과 부두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럴 때 하느님은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만 띄워 주시면 7월의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으련만.

7월 22일 오후 3시, 제주항 제2부두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푸른 바다를 가르고 섬 속의 섬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배 멀미를 할까 봐 멀미약까지 먹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나는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웬걸 어찌 바다 한가운데서 잠을 청할 수 있단 말인가?

"김 선생, 뭐 해? 선상에 나가 봐. 바다가 아주 장관이야!"


동행하던 상담 선생님 7명은 벌써 망망대해 제주 바다를 훔쳐 보고 와 환상에 젖어 있다.

a 여객선에서  바라본 하추자도 풍경

여객선에서 바라본 하추자도 풍경 ⓒ 김강임

바다에서 보는 섬은 항상 신비로 가득하다. 섬 속에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환상은 섬을 동경하게 만든다.

뱃길을 가르고 달려온 여객선은 2시간 10분이 지나서야 추자도에 도착했다. 한반도와 제주 본 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추자도. 하추자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본 추자도의 모습은 어느 아담한 산촌 마을을 연상케 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아담한 추자중학교 그리고 교회당, 빨강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집에도 대문이 없다는 점이다.

추자도는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탓에 추자도라 불리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1896년 전남 완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10년에 제주도에 편입된 이후 1946년 8월 1일 제주도제 실시로 북제주군에 소속되었다.

우리가 하루 밤을 묶게 될 민박집은 섬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마을 공용 버스가 다니는 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대문이 없는 집이었다. 2시간을 달려온 우리에게 주인집 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임금님의 수랏상이었다.

추자 바다에서 건져 왔을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 그리고 조갯살과 함께 볶은 호박 볶음. 그리고 추자 맛이 나는 콩나물 냉국은 지금 생각해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a 상추자 항의 저녁놀

상추자 항의 저녁놀 ⓒ 김강임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마을 공용 버스를 타고 상추자로 향했다. 저녁놀 속에 나타난 상추자도항 풍경은 길을 떠나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고깃배에서 켜지는 전등이 바람에 달랑대더니 산중턱 마을에서는 하나 둘 어둠을 밝힌다. 상추자 항에 서니 어디가 어딘지 방향 감각을 잃었다. 저녁놀과 함께 타고 들어가는 바닷바람은 계절의 감각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을 못 맞춰 상추자도 저녁놀 '직구 낙조'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a 민박집에서 본  아침풍경

민박집에서 본 아침풍경 ⓒ 김강임

"쌍둥아, 일어나라."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쌍둥이를 깨우는 소리가 추자도의 아침을 열었다. 눈을 비비고 방문을 여니, 저 멀리 등대 한 쌍이 아스라이 떠 있다. 잔잔한 추자 바다는 마치 호수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파도조차 늦잠을 자는 아침 바다. 추자도의 아침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대문 없는 길가 집에서 방문도 잠그지 않고 잠을 잤던 어젯밤 생각을 하니 아찔해진다. 이곳 사람들의 순수함과 때묻지 않은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뿐인데, 왜 이렇게도 자신이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다.

a 추자항을 지키는 고깃배들

추자항을 지키는 고깃배들 ⓒ 김강임

밤새도록 추자 바다를 지킨 것은 어부들이 띄워 놓은 고깃배들이다. 그러나 이 고깃배들은 풍어를 기원이라도 하듯이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웠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마을 풍경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추자 10경 중 우두도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광경을 보지 못하는 '우두일출'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a 새벽 포구에 모여 든 마을 사람들

새벽 포구에 모여 든 마을 사람들 ⓒ 김강임

아침 6시 30분 마을 앞 포구에는 벌써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낚싯대를 든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부두로 모여 들기 시작한다. 아침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이들이 띄워 놓은 낚싯대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다.


"어디서 오셨오?"
제주도 사투리보다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는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아침 인사를 대신한다. 모두 60을 넘기신 어르신들의 손은 마치 마술사 같았다. 바다에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면 떠오르는 고기들.
"우와!"

a 낚싯대만 드리우면 2마리씩.

낚싯대만 드리우면 2마리씩. ⓒ 김강임

1분 아니, 30초도 되지 않아 낚싯줄에서 대롱대롱 올라오는 바다 고기들을 보면서 우리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추자 10경 중에 '신대어유' 즉 신대에는 천혜의 황금 어장이 형성되어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 있다던데, 그곳이 바로 이곳은 아닌지? 그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신대어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도리어 우리들의 표정이 이상해 보였는지 "이거, 몇 마리 줄 테니 갖고 갈랑가?"라며 호의를 베푸신다.

a 일명 '각재기'라 하는 생선.

일명 '각재기'라 하는 생선. ⓒ 김강임

"아저씨, 저도 한번 낚시질을 해 보면 안될까요?"
옆에 섰던 관광객에게 낚싯대를 건네 준 아저씨는 관광객의 서투른 솜씨에 제대로 된 방법을 가르쳐 주느라 진땀을 빼셨다. 낚시에 서투른 사람도 바다 속에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2마리의 바닷고기(각재기)를 한꺼번에 건져 낸다. 추자 바다는 바닷고기들이 모여 드는 광경까지 눈으로도 보일 정도여서, 그만큼 청정 바다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a 생선 굽는 냄새가 가득

생선 굽는 냄새가 가득 ⓒ 김강임

"여기서 잡은 고기를 구워 먹는 맛도 일품이지"라며 우리에게 마을의 인심을 보이신 마을 주민들도 있었다. 번개탄을 태워 방금 잡아 올린 바다 고기를 올려 놓으니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코 끝에 스민다.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자신들이 낚아 올린 고기를 번개탄 위에 올려 놓느라 정신이 없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런 행위가 추자의 청정 바다를 조금이라도 오염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a 갯가에 숨어 있는 보말. 그리고 바다에서 놀러 온 게.

갯가에 숨어 있는 보말. 그리고 바다에서 놀러 온 게. ⓒ 김강임

한가지 이상한 것은 제주도의 돌이 거무튀튀한데 비해 추자도의 돌은 황색의 색깔을 띄고 있었다는 것이다. 추자도는 낚시 천국인줄만 알았는데 인근 바닷가에 가니 보말(팽이고동)과 게들의 천국이었다. 바다에서 놀러온 게들이 갯가 바위 틈에 줄을 지어 숨어 있을 뿐 아니라, 통통하게 살이 찐 바다 생물들은 추자 바다의 청정 양식을 먹고 자라서인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짧은 여정의 추자도의 기행에서 '추자도 사람들의 인심도 천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섬 사람들은 외지에서 들어 온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보인다는 데도 내가 만난 추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바다 양식을 직접 캐서 나누어 주는 후덕함이 있었다. 그들의 문화. 그리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터', 때묻지 않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선보이는 순수함. 오전 11시에 출발한 여객선이 추자도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작은 섬에서 큰 인심을 이루고 사는 섬사람들의 인심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긴 여정으로 '직구낙조'와 '우두일출', '신대어유'의 진미를 다시 느껴 보기 위해 다시 추자도를 찾아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수덕낙안'과 '석두청산', '장작평사', '망도수향', '횡간추범', '추포어화', '곽게창파' 등의 추자 10경을 다 느끼지 못하고 떠나는 배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섬 속의 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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