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통신연구원, '검은 뒷거래'로 얼룩진 연구현장

검찰 수사돌입... 내부 직원들 "특단의 개혁조치 필요"

등록 2004.07.27 19:59수정 2004.07.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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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통신연구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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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내 최대 규모의 국책연구원 중의 하나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직 간부들이 연구사업 수주와 관련해 모 IT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수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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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부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추가 금품 거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검찰이 추가 수사에 돌입할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남기춘)는 27일, 국책 연구사업을 수주받도록 해주고 일부 IT기업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ETRI 전직간부 4명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ETRI 전직간부였던 윤모, 김모씨 등 4명은 지난 2000년 ETRI와 함께 정보화촉진기금을 지원받아 공동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던 U사로부터 스카우트비 명목으로 1억6000만원을 챙긴 뒤 회사를 옮기지 않는 방식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U사가 이들 전직 간부들의 도움으로 회사가 큰 이득을 보는 등 대가성 입증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비리로 얼룩진 국내 최대 국책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정보통신 산업의 기술 보급을 목적으로 지난 1985년 정통부 산하에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정보통신 국책연구원으로 90년대 CDMA이동통신 기술 상용화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현재 정통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이동통신, 디지털텔레비전, 홈네트워크 등 9대 신성장동력 산업 연구개발 사업 중 8대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있으며, 한 해 예산만 4천억원이 넘는 거대 연구원이다.


그러나 ETRI는 대부분의 직원이 이공계 석·박사 인력으로 구성됐다는 특징과 특정기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소수 인력으로 구성된 조직의 폐쇄성 등으로 인해 검은 거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ETRI에 재직 중인 연구원 A씨는 “대부분의 직원이 이공계 석박사 인력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인 ETRI는 특정기술에 지식이 있는 국내외 인력이 한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연구용역상의 각종 비리와 위탁과제 선정시에 그들만의 검은 고리를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현재 연구원 내부는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한데도 비리를 저지른 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이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연구용역이나 위탁과제를 업체에 주게 되는데, 이런 특정 기술을 수행할 수 있는 업체가 한정적이고, 이런 업체들은 대개 연구원들이 주식을 가지고 있거나 학연·지연으로 친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검은 돈을 거래하게 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전문인력으로 이뤄진 조직의 폐쇄성이 검은 거래 조장

올해 들어서도 감사원 감사와 연구원 자체 감사에 의해 적발된 검은 거래 사례가 있어 노동합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 경영진에게 내부혁신을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올해 초 2개월동안 진행된 감사원의 정보화촉진기금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에서는 ETRI의 전·현직 주요 간부들이 벤처기업 등으로부터 부당한 주식을 취득한 혐의로 적발돼 감사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또 올 4월에는 연구원의 자체 감사결과 연구원들이 납품 업자로부터 골프채 세트를 상납받아 나누어 가진 혐의로 정직 처분 등 징계를 받기도 했다.

ETRI 노동조합에 따르면 연구원에서는 금품 도난 사고도 발생했다. 재작년 미 퀄컴사와의 CDMA 기술료 소송 승소를 기념하기 위해 공로자에게 줄 금 100돈(700만원 상당)의 메달이 7개월째 행방이 묘연해 노동조합이 도난신고를 추진하자 슬그머니 되돌아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노동조합은 지난 22일 ‘노동조합 주간소식’을 통해 “이러한 부정부패에 대해 직원들은 전임 원장들의 오랫동안 독선적인 경영 행태와 상층부의 도덕적 해이, 올바른 ETRI 가치관의 실종, 연구원의 개혁마인드 부재 등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며 “이 사건들이 대부분 전임 원장 재임시 발생했지만 현 경영진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당히 처리하거나 면죄부를 주고 있어 지나치게 안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은 또 “연구현장이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특단의 개혁조치가 시급하다”며 “ETRI의 부정부패에 대한 현실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정부관련 기관에 특단의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조합 “비리로 얼룩진 연구현장 특단의 조치 시급”

반면 ETRI측은 “검찰이 발표한 사건의 경위는 당사자들이 그에 대한 관련 책임을 지고 2002년 연구원에서 퇴직했다”며 “이는 퇴직한 직원의 개인적 사건으로 ETRI 전체의 조직적인 문제와는 무관한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검찰은 IT 업체인 I사에 대해서도 전직 간부 윤모씨 등에 금품을 건넨 혐의를 잡고 압수수색을 실시, 확보한 관련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검찰은 또 지난 1999년 모 회사측에 주식을 헐값에 매각토록 한 혐의로 정보통신부 현직 부이사관급 간부인 임모 국장을 소환할 계획이다.

현재 검찰이 소재파악에 나선 임모 국장은 잠적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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