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컴퓨터를 좋아한다고요?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17)

등록 2004.08.04 06:36수정 2004.08.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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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와 결합한 대박의 꿈


유난히 로또 용지 하나씩을 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많았던 지난 주 금요일, 또 갑자기 웬 바람이 불어서 저런가 싶은 생각에 점심시간을 틈타 로또 찍기에 열중하는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갑자기 왠 로또?"

"모르셨어요. 다음 주부터 로또 복권 가격이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려가는 걸요?"

"가격이 1000원으로 내려가는 것과 이번 주 복권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아이구, 로또 가격이 1000원으로 떨어지면 1등 당첨금이 배나 줄어들게 되잖아요. 대박은 물 건너 간 거죠. 그래서 마지막 대박 기회를 잡으려구요."


a 각종 모습의 로또 행운번호 추출 프로그램(1)

각종 모습의 로또 행운번호 추출 프로그램(1) ⓒ 국민은행


그러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상에 유행하고 있는 로또복권 번호 추출 프로그램을 반복해 돌리면서 제법 신중하게 로또 번호를 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꽤 심각해 보여 그냥 웃자고 농담 한 마디 던지고 돌아왔다.


"잘하면 다음주 월요일 결근하는 사람 몇몇 속출하겠구만."

a 각종 모습의 로또 행운번호 추출프로그램(2)

각종 모습의 로또 행운번호 추출프로그램(2) ⓒ (주)인포밸리소프트


아, 확실히 요즘은 예전에 용꿈이나 돼지꿈과 같은 좋은 꿈을 꾸고 꿈해몽에 따라 복권을 산다기 보다는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상에서 조합한 경우의 수와 확률에 더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인터넷상의 로또방에는 각종 로또 복권 번호추출기가 등장하고 서로서로 정확도 몇 %를 자랑하며 성업 중이다.

이쯤 되면 예전의 막연하고 낭만적이기조차 했던 대박의 꿈이 비트와 만나면서 더욱 구체적이고 정교화된 게임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뭐 그 또한 가망 없는 확률의 꿈이겠지만….

디지털 시대 용한 무당이나 역술인으로 살아남는 법(?)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는 귀신도 컴퓨터와 친하다던가? 용한 역술인이나 무당이 되려면 컴퓨터와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오프라인 상에서의 점집의 수만큼 사이버상에 신종 점집이 넘쳐나고 있다.

예전 16비트 컴퓨터 시절 초창기, 컴퓨터 프로그램화시킨 토정비결로 재미 삼아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신년 운세를 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이러한 프로그램도 더 세밀화 되었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a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서  용한 귀신이나 무당이 되려면  컴퓨터와 친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오프라인 상에서의 점집의 수만큼  사이버상에 신종 점집이 넘쳐나고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서 용한 귀신이나 무당이 되려면 컴퓨터와 친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오프라인 상에서의 점집의 수만큼 사이버상에 신종 점집이 넘쳐나고 있다. ⓒ 다음넷


주역풀이에서부터 서양식 카드점 타로카드라는 동서가 만나는 다양한 운세상담은 물론이고 새로운 형태의 예지자(?) 로또 번호 추출 프로그램까지….

물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낯선 점집보다는, 익명성과 개인성을 보장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얼굴을 맞부딪치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 부담없이 편리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히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분인 개인의 운명도 극히 과학적인 비트로 재단하는 시절이 오고야 말았다는 착잡함에 빠져 있으려니 갑자기 예전에 누군가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원래부터 주역이라든가 토정비결처럼 남의 사주나 운명을 봐준다는 행위 자체가 지극히 통계적이고 확률적인 머리싸움이기에 그만큼 태생적으로 비트와 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부터 귀신은 역술인보다 컴퓨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 속에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 후 사무실을 둘러보니 다행히 결근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쉽지만 주말의 그 신중했던 대박 꿈은 또다시 가망 없는 대박의 꿈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쩌면 대박의 꿈은 그냥 꿈인 채 흘러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비트와 결합하여 더욱 그 꿈의 성취도가 정교해지고 근접해졌다 할지라도 여전히 벼락 맞아 죽을 확률만큼 어려우리라는 낭만적인 대박의 꿈으로 그냥 그대로 머물러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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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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