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 유죄 판결은 직무유기"

이재승 국민대 법대 교수, 대법원 판결에 직격탄

등록 2004.08.12 12:10수정 2004.08.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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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국민대 법대 교수
이재승 국민대 법대 교수
대법원이 지난달 15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최모씨에 대해 유죄 확정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 이재승 국민대 법대 교수(사진)는 12일 <로우피플 칼럼>을 통해 "무죄판결이 가능한데도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대체복무를 언급한 것은 법관으로서의 직무유기"라며 대법원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재승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무죄를 고수한 이강국 대법관을 제외한 대법관들은 병역거부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은 것을 보며, 사법부의 국가지상주의적인 세계관에 상당한 균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대법원에게는 양심의 자유나 병역거부 문제에 있어 인권의 옹호자로서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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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서 사법부가 개인들에게 수시로 가했던 반인권적 정치재판들을 돌이켜보았을 때 대법원이 민주주의 이행국면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번쯤 발언하겠지, 자신들의 구태의연한 판결로부터 한번쯤 이탈하겠지 기대했는데 속절없게 됐다"며 한탄했다.

그는 특히 "무죄판결이 내려질 때에만 대체복무제가 곧장 도입되리라는 점을 가장 잘 아시는 분들이 무죄판결이 가능한데도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대체복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언급한 것은 법관으로서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진정 대체복무제도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위헌제청을 하던지 아니면 무죄 판단에 동참했어야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판결내용과 관련, "대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국가안보나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고 규정했으나, 어떤 자유가 상대적이라는 것은 여타 자유나 공익과 비교형량해서 자유의 보호 범위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대법원이 말하는 상대적 자유는 국가안보 앞에서는 무제약적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상대적이어서 국가지상주의적 세계관에서는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자주 원용하는데 이는 양심의 자유를 더 높은 차원에서 지지해주는 자유주의의 최상급 가치개념으로, 자유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런 현상이 이번 판결에도 그대로 나타났다"며 대법원을 비난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압도하기 위해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라는 어처구니없는 용어를 구사했는데, 이는 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제한 또는 희생할 수 있다는 논법"이라며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유주의의 핵심개념으로서 언제나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방식으로만 사용되지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국민 전체인가에 따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병역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면서 "병역거부와 같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지만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하여 대안적 제도를 형성해야 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국가의 필연적인 의무"라고 지적했다.

또 "대안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무죄가 되어야 한다. 대안적 제도(대체복무제)가 없기 때문에 유죄판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자유권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다수의견이나 보충의견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엔인권위원회나 인권이사회는 여러 차례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지 말 것을 선언하며 적절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했고, 자유권규약 제18조(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근거조항이라고 선언했다"며 "사법부가 국제인권규정을 갖고 국내법의 효력을 진지하게 저울질해보는 판결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법학교육 및 사법개혁의 주제로 다루어 봄직하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윤리적으로 보편화 가능한 양심적 결정에 반해 병역거부자들에게 집총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제 병역거부자들이 터 잡고 있는 근본적 평화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법원은 길가는 나그네를 불러다 재판의 홍두깨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 평화주의자들을 기준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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