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립회관 관장독재, 박정희 유신독재와 비슷"

[현장] 점거 농성 52일째인 장애인시설을 가다

등록 2004.08.13 13:05수정 2004.08.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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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3일, 농성 52일째를 맞은 공대위는 밤 늦은 시간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13일, 농성 52일째를 맞은 공대위는 밤 늦은 시간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a 10일 비노조직원과 체력단련 동호회가 농성장 진입을 시도하다가 통유리 입구를 박살냈다. 문틀에 남은 날카로운 파편이 오른쪽 밑으로 보인다.

10일 비노조직원과 체력단련 동호회가 농성장 진입을 시도하다가 통유리 입구를 박살냈다. 문틀에 남은 날카로운 파편이 오른쪽 밑으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대통령도 탄핵받는 민주시대에 관장독재는 구시대적 독재이다."
"나에게 계단보다 더 어려운 장벽은 장애인 시설장의 '욕심'이다."
"관장연임 결사반대! 민주적 운영쟁취!"


지난 1975년 한국 최초로 설립된 장애인 이용 시설인 정립회관 교육관(본관) 2층 사무실. 지난 12일 찾아간 정립회관 사무실에는 입구부터 위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쪽지들이 어지럽게 나붙어있었다. 통유리 자동문은 산산이 부서져 문틀에 날카로운 유리조각만 남아있고 경사로로 된 복도쪽 입구 역시 폭격에 맞은 듯 허물어져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사무실 안에는 수북히 쌓인 컵라면이 눈에 띈다. 바로 옆에 집기류들도 나뒹굴고 있다. 눈을 돌려 복도쪽 창문을 보니 안쪽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 공사용 철근 거푸집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마치 장기전에 돌입한 요새 같아 보인다.

관장의 연임 문제로 장애인들이 52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곳을 찾은 것은 이날 저녁 8시 30분께. 농성참가자들이 낯선 기자의 등장에 대해 경계의 눈빛부터 보냈다. 기자임을 밝히자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이완수 관장의 임기 연장은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비슷"

정립회관은...

정립회관은 지난 1975년 지체장애인의 자립과 권리보호 사업을 통해 사회통합을 실현한다는 설립목적을 가지고 서울 광진구 구의동 세워졌다.

회관은 75년 인권옹호단체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88서울장애인 올림픽에서는 보치아와 스누크(포켓볼) 등 2개 종목이 열리기도 했다. 회관은 장애인 수영장, 사격장, 양궁장, 도서관, 체력단련실 등을 갖추고 있고 하루 평균 200∼300명의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0년대 초, 시설 비리 문제 등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친 농성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립회관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집행위원장 박경석. 이하 공대위)와 정립회관 노조(지부장 김재원)가 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에바다' 사건 등 이전 장애인 시설 문제에서 흔히 등장하는 인권유린, 비리문제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11년 임기를 마친 이완수 관장의 연임 문제 해결 ▲이용자가 참여 가능한 민주적인 시설운영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공대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관장의 장기집권'. 사회복지법 지침과 정립회관 운영규정에는 시설장의 정년을 만 65세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년 동안 시설을 책임졌던 이완수 관장의 임기가 지난 6월말로 끝난 가운데 회관 운영권을 가진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회에서 6월 17일 이 관장을 '임기 2년 계약직 관장'으로 다시 임명했다. 공대위에서는 이에 대해 "이 관장의 장기집권을 위한 편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회관에서 노들야학 교장을 맡고 있는 박경석 위원장은 "장애인 시설장의 임기제도를 정년제에서 임기제로 바꾸는 것은 진일보한 형태"라면서도 "정년을 바로 앞둔 사람이 정년을 적용하지 않은 채 임기제를 채택한다는 것은 관장을 더 하겠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사회는 이 관장의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 관장의 장기집권과 직접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사회는 이 관장의 임기를 4개월 남겨놓았던 지난 2월 정관개정을 통해 관장의 정년제를 3년 임기제로 바꿨다. 하지만 공대위의 반대와 관할 광진구청의 시정요구 때문에 이사회에서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이완수 관장의 임기 연장 시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독재를 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며 "이 관장은 즉각 퇴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공대위가 문제로 삼는 것은 시설의 '비민주적인 운영'. 박 위원장은 "이곳은 70년대부터 장애인 문제를 지적해왔던 선배들이 거쳐간 일종의 성지다, 이러한 공간은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회관 운영에 있어 시설 종사자나 사용자들의 목소리는 사업추진에 있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공대위와 노조는 지난 6월 22일 정립회관 사무실과 관장실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세 차례 진입 시도... 부상자 입원 중"

a 지난 10일 체력단련 동호회와 회관 직원이 농성장 진입을 위해 복도쪽 입구를 부수고 있다. 회관측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가장 정면에 보이는 남성과 오른쪽 판넬을 들고 있는 남성이 회관 직원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체력단련 동호회와 회관 직원이 농성장 진입을 위해 복도쪽 입구를 부수고 있다. 회관측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가장 정면에 보이는 남성과 오른쪽 판넬을 들고 있는 남성이 회관 직원이라고 한다. ⓒ 정립회관 공대위

50일 이상 농성이 계속되는 동안 공대위는 "회관측에서 지난달 22일과 지난 10일과 11일 3차례에 걸쳐 사무실에 진입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회관 체력단련실을 이용하는 체력단련 동호회와 비노조 직원 등이 파이프를 휘두르고 소화기를 뿌리며 농성장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입구 통유리와 유리창 등이 파손됐다고 주장한다. 또 11일에는 '곰두리 봉사대'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입을 막았던 농성단원 1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 중이고 10여명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노조원으로 농성단에 참여하고 있는 조현민(32·사회복지사)씨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곳에서 이렇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참을 수 없다"며 "이 관장의 자격 없음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다, 폭력을 사주한 관장은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은 "이런 폭력진입과 같은 행태, 시설의 사유화와 인권침해, 비리 등은 민주적 운영이 된다면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a 복도쪽 입구 역시 폭격에 맞은 듯 부서져 있다.

복도쪽 입구 역시 폭격에 맞은 듯 부서져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2년 계약직 공대위 안 반영한 것… 폭력은 오히려 말림"

회관 측 입장 역시 단호해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말 회관측은 노조 간부 4명을 해고했고 4명에 대해 정직 처분을 내렸다.

현 상황에 대해 회관 고위 관계자는 "내부규정을 정년제에서 임기 3년의 임기제로 바꿨는데 이를 2년 계약직으로 정한 건 공대위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 결과"라며 "공대위에서는 65세 정년만 내세우지만 정부 지침에는 정년을 넘기더라도 8년 동안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관장 이전에도 사무국장과 관리실 직원 등 정년 이후에도 계약직으로 고용한 사례가 있다.

회관 이사회는 지난달 30일 입장 성명서를 내고 이 관장 연임 이유에 대해 "관장과 사무국장이 동시에 교체될 경우에 올 수 있는 행정공백을 막고, 진행이 중단된 수영장 재건축공사를 마무리하고 정립회관이 안고 있는 각종 난제를 풀어가는 데에는 본 협회의 모체인 삼애회의 설립멤버이자 그 동안 정립회관을 운영해오면서 사업개발능력과 투명성이 검증된 이완수 관장이 적임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는 사용자(장애인)들이 정립회관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하는 원칙에는 동의한다"며 협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 노조 징계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노조원에 대해 소명 기회를 줬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벌어진 진입시도에 대해 "우리는 폭력행사를 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며 "직접적인 폭력행사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회관측 입장에 대해 박 위원장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8년 유예기간 적용'에 대해 "유예기간은 '정년제'에만 적용된다. 임기 적용이 끝난 이 관장에 대해 이사회에서는 정관을 새로 만들어 임기제를 적용하려고 했으므로 유예기간 적용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종신제도는 법적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없었다. 다 합리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던 것"이라며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회가 이 관장 인맥으로 포진돼 비민주적으로 야합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회관측이 폭력행사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관련, "회관 관계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고 쇠망치를 휘두르는 동영상과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렇게 회관과 공대위측의 대립에 대해 관할 광진구청 관계자는 "이 관장이 정년을 넘겼지만 예외조항 8년이 걸려 있어 구청에서 얘기를 못하고 있다"며 "다만 20억 정도 예산이 투입되는 곳을 저렇게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공권력 투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회관측에도 '노조원의 징계수위를 낮추는 식의 설득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회관측으로부터 5명이 고소당했지만 장애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적극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난처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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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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