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고추 한 박스에 2천원이라니, 그냥 달라고 하쇼"

밑지는 농사 지은 '초보 농사꾼'의 애환

등록 2004.08.13 14:44수정 2004.08.1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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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는 지금 말 그대로 찜통 속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밤마다 정전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에어컨 사용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곳 산골마을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마찬가지다. 한낮에는 불가마 속이나 다름없다. 움직이기만 하면 등에 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덥다고 하는 일 마다하고 마냥 놀 수는 없는 일이다. 도시 사람들은 휴가를 즐기려고 난리지만 농부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지금 이 시기에 농사일을 접어 둘 수 없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목에 수건 하나 두르고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이종득
이곳 사람들의 주된 농사는 풋고추 재배이다. 산골마을 특성상 논보다 밭이 많다. 또한 비탈 밭이라 지을만한 작물도 많지 않다. 옥수수나 감자가 있지만 풋고추가 그나마 수지타산에 맞는다.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는 풋고추 작목반이 결성되어 있다. 집집마다 적게는 2천주, 많게는 1만주 넘게 풋고추를 심는다.

나도 지난 겨울 고추 작목반에 가입을 하고, 2천주를 심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걱정부터 해주었다. 힘들어서 아마 포기하고 말 거라고…. 그렇다고 놀고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도시에서 살던 내가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지만 농부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도전할 수 밖에….

이종득
이곳 사람들은 한낮 뙤약볕을 피하기위해 새벽에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보통 6시면 밭에 나가 고추를 딴다. 부부가 모두 동원하여 일을 하면 10kg 한 박스를 따는데, 한 시간 가량 소요된다. 한낮의 볕을 피해 아침저녁으로 10시간 작업하면 10박스 정도 수확을 할 수 있다.


이종득
나 역시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시작해서 하루 서너 박스씩을 가락시장에 올린다. 지금까지 60여 박스를 보냈다. 그중 상품(고추가 구부러진 것)이 20여 박스나 된다. 상품 가격은 특상품(반듯하고 좋은 것) 가격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풋고추 특상품 한 박스(10kg)의 경매 가격이 6천원이고, 상품 가격이 2천원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며칠 전에는 한 박스에 2만원을 훨씬 넘었다. 3만원을 넘을 때도 몇 번 있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어도 농사 지으면서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폭락했다. 이유는 물량이 많고, 소비가 줄었다는 것.

내가 고추 2천주를 심는데,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보니 아직 본전도 수확하지 못했다.

고추모 값으로 24만원이 들었고, 고추모 심는데 들어간 품값으로 5만원, 고추말뚝(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줄을 띄우기 위해 고추 사이사이 막아두는 것) 값으로 22만4000원이 들었다. 게다가 약값에, 비료값으로 12만원 정도가 들었고, 내가 일한 품값을 하루 일당 4만원정도로 계산하더라도 나는 지금까지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한 박스에 6천원, 아니면 2천원이라니. 사실 고추 한 박스를 가락시장에 올리는 금액만 따져도 2천원이면 농사꾼한테 돌아오는 돈은 거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운반비가 한 박스당 500원이고, 박스 제작비가 650원이고, 경매 수수료가 경매 값의 약 2% 정도가 공제된다. 그러니까 한 박스를 경매받기까지 들어가는 금액(원천징수되)만 1400원이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 고추모 값 등의 재료비를 빼면 나는 밑진다.

이종득
다시 말해 2천원을 주고 고추 한 박스를 사겠다고 나서는 도매인이 있다면 농부한테 고추 한 박스를 그냥 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힘들게 지은 고추를 그냥 달라니, 이는 합법을 가장한 강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농협에 가서 그것도 경매라고 받아왔느냐고 하면 오히려 면박만 준다. 자기들 수수료는 다 챙기면서 한다는 소리가 "그럼 도로 갖다드릴까요?"라는 식이다.

나는 주장하고 싶다. 각종 농산물 경매에는 최저가와 최고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농사를 업으로 사는 농부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시 근로자들은 최저 인금을 근거로 협상을 하지만 농부에게는 그런 조치마저 없으니 강탈이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기껏 지은 농산물을 갈취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풋고추 농사에서 풋고추 특상품 한 박스에 일만원, 상품 한 박스에 오천원 미만으로 가격이 나올 경우 농사짓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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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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