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사람들

명절에 더욱 그리워지는 이주노동자들의 고향

등록 2004.08.30 15:00수정 2004.08.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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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게 어느덧 가을 문턱에 들었습니다.


서늘함마저 느끼게 하는 보름달을 보며 낮에 외국인이주노동자들과 나눈 추석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때 이른 추석 이야기가 나왔던 건 추석 때까지 회사 일이 잘 안되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낸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선물보따리가 엉성할망정 귀성길 교통지옥의 현장에 뛰어들지언정 그저 즐거운 게 우리들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들이 북에서 내려 온 실향민들일테고 그 다음으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마냥 낯설지 만은 않은 이웃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 이들에게도 추석이 찾아오고 있지만 그리 반갑지가 않은가 봅니다.

한국 생활 5년이 다 돼 가는 재중동포 손춘화(28)씨. 추석이 다가올수록 귀국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기가 불황을 겪으면서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도 문을 언제 닫을지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요즘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고 합니다.


老母-기다리는 마음
추석을 앞두고

정작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올 추석, 고향에 못 갈 것 같다는 인사를 미리 드렸던 터라 자식된 도리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모의 마음에야 비기겠습니까마는, 멀리 부모를 떠나 있는 자식도 그에 버금가는 그리움을 안고 높아진 하늘만 멀리 바라봅니다. 아래에 고향에서 자식을 기다리실 노모의 심정을 그려봤습니다.

老母-기다리는 마음

텃밭 찰옥수수
치성할멈 맘 아는지
야물게도 열렸다

이 골짝 옥수수는 찰지기로 소문났다
젋은 사람들 싸들고 다니는게 번거럽다면서도
한 보따리 싸가기를 마다 않는다

그 찰옥수수가
치성할멈댁 마당에서 천연덕스럽게 나뒹군다

치성할멈,
벌써 쪼그라진 찰옥수수 수염 뜯을 때마다
담 너머를 힐끔거린다
개천에서 바글대는게 박씨네 손주들인갑다

명절이라고 벌써 사흘째 까불고 있다
서럽게 늘어진 땅거미 아래서
치성할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일 쪼매 더 말려야겠어" 하신다

벌써 여러 날 말렸음직도 한데…. / 고기복
불법체류자라는 불안감과 공장 문을 닫으면 지난 가을부터 올해 초까지 겪었던 장기간 실직의 고통을 다시 겪을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는 안면 근육 반쪽이 마비되는 증상을 가져와 지난달에는 침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온 몸을 파고드는 것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친지 생각입니다. 한국 추석의 의미를 잘 아는 손춘화씨에게 이국에서 보내는 추석은 감당하기 힘든 쓸쓸함으로 다가올듯 합니다.


"중국에서는 벌써 추석 명절 지낸다고 휴가 준비해요. 올해는 휴가가 2주예요. 가족 친지들을 만난 사람들은 밤새 이야기하며 음식 장만을 할 거예요. 제가 장녀잖아요, 저도 집에 가면 엄마, 아빠 음식 해 드릴텐데…."

우리말이 유창한 춘화씨지만 말끝이 흐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춘화씨는 추석 때쯤이면 경기가 풀려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니던 회사의 부도, 단속 등으로 제대로 일해 본 적이 없어서 집에 가고 싶어도 아직은 집에 돌아갈 준비가 안 됐다고 하더군요.

지난 7월 출입국 직원들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다리가 부러진 스리랑카인 랄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한숨만 나옵니다. 부지런히 벌어 부모님과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꿈을 안고 찾은 낯선 나라 한국.

이 때문에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따위는 털어 내자고 마음 먹었지만 외국인노동자의집 쉼터에서 벌써 한 달 넘게 생활하면서 마음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일자리를 잃고, 다리까지 다친 터라 다가 올 추석은 더욱 움추려 들게 합니다.

몸이 아프면 부모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는 게 인지상정. 다리를 다치고 난 후 부모님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합니다.

랄은 "공장 동료 직원들이 추석 때 선물을 싸들고 고향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러웠어요. 스리랑카에서 웨샥(우리의 석가탄신일과 유사한 명절) 때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들고 고향으로 가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하며 씁쓸히 웃는다.

한국인 공장 동료들을 고향으로 떠나보낸 뒤 공장 기숙사에 남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찾아오는 추석 등 명절은 그저 하루 이틀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날입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은 병들고 더욱 쓸쓸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려는 노력도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관련 단체인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에서도 각국 전통문화공연들을 준비하여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줄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할 때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다면 그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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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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