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 꾸릴 수 있게 지원 "

<외국인이주노동자 지원단체 탐방기 1>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등록 2004.08.25 17:48수정 2004.08.26 09: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마지막 주 지체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장애인 재활을 위한 특수 목회와 일반 목회를 겸하고 있는 한 목회자와의 약속으로 어렵게 시간을 내 창원을 찾았을 때였다.


막 창원에서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귀국을 앞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전화를 받았다. 외지인이라 지리가 어둔 탓에 눈에 띄게 큰 건물 안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간사를 맡고 있는 박진숙씨를 만났다.

세상 참 좁다는 말을 하며 박진숙씨는 상담소에 들르기를 강권했다. 결국 이틀 동안의 행사로 잠을 설쳐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며 상담소에 들어서자, 여기 저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a 상담소 실무자들. 오른쪽이 박진숙 간사

상담소 실무자들. 오른쪽이 박진숙 간사 ⓒ 고기복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창원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3층 건물과 옥상을 사용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안에는 잘 정리된 사무실과 강의실, 컴퓨터실, 쉼터가 3층에 자리 잡고 있고, 옥상에는 운동시설로 당구와 탁구장이 갖춰져 있었다.

상담소에는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철승 소장과 고려인 출신 실무자, 박진숙씨 외에 상담을 하러 온 구 소련권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쉼터를 이용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여럿 있었다. 두 명의 실무자는 휴가 중이라고 했다.

이철승 소장의 안내로 상담소 내부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사무실 바로 앞에 예배와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그 옆으로 쉼터와 컴퓨터실, 식당이 꾸려져 있었다.


정보통신부의 지원으로 마련된 컴퓨터는 전부 다섯 대로 쉼터에 찾아온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본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a 남자 쉼터 내부

남자 쉼터 내부 ⓒ 고기복

쉼터에는 2층 침대들을 들여놔서 좁은 공간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 배치를 하고 있었다. 쉼터는 이주노동자들이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두었을 때, 또는 귀국을 앞두고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을 때, 질병을 얻어 요양을 하거나 회사에서 구타당하여 피신해야 할 때 갈 곳이 없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이철승 소장은 하루 평균 30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3일에서 5일 정도 머무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남자 쉼터와 여자 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식사시간에는 각 음식문화권 별로 식당을 자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연일 열대야가 계속되던 때라 쉼터 안에도 열기가 후끈했는데, 쉼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 다수가 더위를 피해 쉼터 밖에 있는 공터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그중 특이하게도 웃통을 벗어들고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a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고 있는 이주노동자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고 있는 이주노동자 ⓒ 고기복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는 이주노동자가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와 옥상에 마련된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고 있었다. 같이 한 판 치고 싶었지만, 더위를 견뎌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웃으며 지나쳤다. 당구대가 놓여 있는 공간 바로 옆에는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정의와 평화, 인권의 정신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 1997년에 설립되었다. 상담소는 임금체불, 폭행, 부당한 차별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주고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이철승 소장을 비롯한 3명의 한국인 실무자와 3명의 외국인 활동가가 매일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두 시간 정도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상담소 전체의 일을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일반적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과 형편 때문이었다.

단, 지역적 특성에 맞게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설립 이후 줄곧 중점을 두고 일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해외투자법인연수생' 문제를 계속적으로 파고들어, 지난 5월 대법원에서 ‘해외투자법인연수생’과 관련하여 승소하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은 해투연수생을 근로자로 인정, 고용주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하여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도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산업연수제'와 '해외투자법인연수생'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a 상담소 현판

상담소 현판 ⓒ 고기복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현재 김해, 마산, 창원, 함안을 비롯한 경남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약 2만여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사기, 폭행 등과 같은 문제가 있을 때 상담을 통해 도와주고 있고,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지원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철승 소장은 현재 상담소 내에는 인도네시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중국,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각 나라별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데, 한국인 실무자들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철승 소장과 실무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 길에, 옥상에서 만났던 꼬마가 재빠르게 뛰어가며 마치 제 집에서 나서는 손님에게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5. 5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