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06

폭동

등록 2004.08.26 17:17수정 2004.08.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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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가 일부러 날 잡고 늘어져 거짓 됫박을 숨길 기회를 준 것이었군!'

백위길은 아쉬운 데로 이동현만 포도청으로 끌고 갔고, 그는 곤장형을 받았다. 이동현이 끌려 간 뒤 싸전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런 상인들 사이를 허여멀쑥한 사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나갔다.


"요즘 포교놈들이 오뉴월 가이삿기마냥 빌빌대는 줄만 알았더니 오늘은 된통 당할 뻔했군!"

싸전 상인 정종근의 불만 어린 말에 옆에 온 허여멀쑥한 사내가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길래 형님께서 사소한 일도 주의를 기울이라 하지 않았나?"

정종근은 허여멀쑥한 사내에게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됫박까지 속이며 쌀을 갈무리하라는 이유는 뭐란 말이오? 우리로서야 손해 볼 것은 없는 일이지만."


허여멀쑥한 사내의 대답은 단호했다.

"손해 볼 것은 없다면서 무슨 궁금함이 그리 많은가!"


머쓱해진 정종근은 괜히 쌓여 있는 쌀들을 휘휘 저어 보았다. 이들은 단지 됫박만 속이는 것은 아니었다. 쌀에 물을 섞어 불린 후 밑에 깔아 놓아 무게를 속이기도 하고, 됫박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모든 싸전 상인들이 쌀을 파는 것을 거부하는 등 그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상공업의 발달과 불어난 인구로 인해 자체적으로 농사를 지어 식량을 수급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한양이기에 그들의 위상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싸전상인들을 주무르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경강상인 행수 배수도와 옴 땡추였다.

"그래, 우리가 쌀을 실어 나르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필시 테가 날 것인데 어찌 하겠소? 우리 경강상인들도 쌀을 온전히 갖다놓을 창고를 가지고 있지는 않소이다."

옴 땡추는 경강상인들의 행수 배수도의 말을 듣고서는 코웃음을 쳤다.

"거 큰 상인인줄 알았더니 좀스럽기 짝이 없구려! 어차피 엎어지면 돈이 우수수 떨어지는 일에 어찌 이리 소심하단 말이오."

"허나 노골적으로 이리하면 곤란하단 말이외다."

옴 땡추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지만 내심 배수도가 자신이 바라는 바를 벗어나지 않음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좋은 창고 하나를 알아보겠소. 대신 굳게 약조를 맺어주어야 하오."

배수도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했다.

"창고를 사용하는 비용은 따로 산정할 것이고 행여 쌀은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자가 있으면 아니되오."

배수도는 마땅히 응하겠다고 대답했고 옴 땡추는 기분 좋게 경강상을 나와 여객(旅客 : 오늘날의 여관)을 운영하는 김재순에게로 갔다.

옴 땡추는 모반 사건으로 인해 10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이를 후회해 본 적은 없었다. 단지, 그가 그렇게 자신하고 있었던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만큼은 뼈저린 실수라 여기고 있었다. 그가 친형제 같이 생각했던 이승 채수영의 배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별감 강석배, 그리고 포교들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채수영은 죽었고 강석배는 먼 곳으로 떠나버렸으며 포교들 중 당시를 기억하는 이는 백위길이 유일했다. 반면 12년이 흘렀음에도 옴 땡추가 곳곳에 박아놓은 막후 세력의 뿌리는 깊어 포도청은 몇 번이고 궁중의 하속들로부터 위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옴 땡추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일은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으리라!'

순간 생각에 골똘히 빠진 옴 땡추의 어깨를 세게 치고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버럭 화가 치밀어 오른 옴 땡추는 소리를 질렀다.

"예끼 이 사람아! 어깨를 치고 지나갔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책을 옆에 낀 청년이 황급히 옴 땡추의 앞에 엎드려 사과를 했고 조금은 과한 태도에 오히려 옴 땡추가 당황할 지경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시구를 외우다가 그만 큰 결례를 저질렀나이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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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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