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65

뭐야? 빌려줬다고? (3)

등록 2004.08.27 11:19수정 2004.08.2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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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야 그렇지만 넌 의원이라 비보전 같은 곳에서 꾸미는 음모와 계략은 잘 모르잖아.”
“음모와 계략? 형은 내가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인줄 알아?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 형도 나보다 겨우 며칠 먼저 태어났어. 그러면서 자긴 어른이고 난 어린애라고?”

“아, 아냐. 그런 게 아니고…”
“그리고 내가 무천의방의 방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 어떤 음모와 계략을 꾸미더라도 올곧게만 하면 결국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될 수 있었어.”


“아니냐, 그게 아니라니까. 내 말은…”
“아니긴 뭐가 아냐?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걱정 마. 믿을 만하기에 믿는 거야. 그리고 여기 잠깐만 있어봐. 내가 가서…”

“말하다 말고 갑자기 어딜 가는데?”
“하하! 기다려봐. 금방 올 테니 혼자 술이나 마시고 있어.”
황급히 어디론가 나가는 장일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회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만 잘못 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어머니나 고모가… 그리고 제세활빈단 단주로서의 막중한 책무도 있단 말이야.’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상념에 잠겨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장일정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여깁니다. 얼굴을 보시면 안다고 하셨지요? 그럼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신경 써 주셔서 감사 드려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나저나 찾던 사람이면 좋겠군요.”


장일정의 뒤를 이어 들어선 여인은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회옥은 누구냐고 눈짓을 보냈지만 장일정은 대답대신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십시오. 찾는 사람이 맞습니까?”
“……!”


면사 여인은 잠시 이회옥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느 순간 그대로 굳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아야, 뉘신데…?”
“어허! 형은 가만히 좀 있어봐.”
“저어…, 혹시 이것을 아시는지요?”

면사여인이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네모 반듯한 물건으로 크기는 손가락마디 만한 것이었다.

“그건 주사위가 아닙니까?”
“그럼 그 물건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건 왜 묻습…? 가만, 이건…? 그렇다면 혹시…?”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본시 각져 있던 모서리 부분이 둥그스름하게 닳은 주사위를 본 이회옥은 흠칫거렸다. 그러자 면사여인이 한 발짝 다가서며 다시 물었다.

“이 물건을 기억하시는지요?”
“이건 소생이 소싯적에 은자로 만든… 혹시, 산해관 무천장주의 영애이신 추수옥녀 여옥혜 소저가 아니십니까?”

“아아! 맞군요. 소녀의 짐작이 맞았군요. 너무 출세하셔서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 했는데… 반가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예에…? 아, 예! 바, 반갑습니다.”

너무도 반가워하는 여옥혜의 말에 대꾸는 하였지만 이회옥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래 전, 산해관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단 두 번이었다.

한번은 너무도 배가 고팠을 때 가마를 타고 지나가면서 은자 한 냥을 던져주었을 때이고, 다른 한번은 언덕 위에서 독서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였다. 그때 건넸던 은자로 만든 주사위가 지금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이다.

두 번 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남이 아니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정인을 만난 듯 너무도 반가워하니 의아해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이회옥의 표정이 약간 이상하다 느낀 소화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감축드립니다. 드디어 정인(情人)을 만나셨군요.”
“고마워요. 덕분에 공자님을 찾았네요.”
“예에…? 저, 정인이라니요? 이게 대체 무슨…?”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찰라 여옥혜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 순간 이회옥의 두 눈이 뚱그래졌다.

“엇! 형! 형…!”
“앗! 너, 너는 회옥이…? 회옥아!”

“형! 형이 어떻게 여길…? 혀어엉…!”
“하하! 반갑다. 반가워.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뜨겁게 포옹하는 이회옥과 왕구명을 보고 장일정과 여옥혜은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 사이를 몰랐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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