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명 때문에 사라진 모래소리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4)

등록 2004.09.03 20:45수정 2004.09.04 11:23
0
원고료로 응원
a 320굴의 벽화 비천(飛天). 성당시대의 작품으로 돈황의 대표적인 비천상이다.

320굴의 벽화 비천(飛天). 성당시대의 작품으로 돈황의 대표적인 비천상이다. ⓒ <敦煌石窟>

돈황 막고굴

막고굴을 보면서 한 편의 시가 문득 떠올랐다. 유치환의 <생명의 서>가 바로 그 시다. 고등학교 이래 잊고 있던 이 시가 왜 갑자기 생각난 것일까?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모든 것이 사멸한 아라비아의 사막 한 가운데서 삶에 대한 물음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극한 열정이 그대로 와 닿는다. 그 처절한 외침이 귓가에 울린다.

막고굴을 둘러보면서도 이와 같은 예술가의 열정이, 이곳을 지나가던 대상들의 바람이 그대로 느껴졌다. 생명이라곤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이 가로막혀 있는 석굴 안에서 오직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몇 달 아니 몇 년씩 벽화를 그리고 조각을 새겼다. 이러한 사람의 집념이, 열정이 그리고 바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막고굴이다. 그렇기에 10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숨결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a 259굴의 조각 선정불(禪定佛). 북위시대의 작품으로 참선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259굴의 조각 선정불(禪定佛). 북위시대의 작품으로 참선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 <敦煌石窟>

하지만 막고굴로 들어가면 안내원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곳은 현재 남아 있는 492개 굴 가운데 고작 10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안내원이 데리고 가는 대로 이끌려 10곳을 둘러볼 수 있을 뿐이다.

이곳 작품들은 벽화나 조각이 대부분인데 굴을 파고 벽면과 천장에는 그림을 그리고 빈 공간에는 나무나 진흙을 재료로 하여 조각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의 작품들은 1000여 년의 시간차가 있기에 시대별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안내원은 이러한 흐름의 특징보다는 암기했던 것을 흐르는 물처럼 줄줄 쏟아놓기만 한다.


a 112굴의 벽화 반탄비파(反彈琵琶). 중당시대 작품으로 비파를 등에 돌려 켜고 있다.

112굴의 벽화 반탄비파(反彈琵琶). 중당시대 작품으로 비파를 등에 돌려 켜고 있다. ⓒ <敦煌石窟>

100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작품을 고작 1시간 30분여 만에 그것도 10개밖에 보지 못하였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곳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러기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사진으로나마 보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敦煌石窟>(돈황석굴)이라는 사진첩을 흥정하여 100위엔(정가는 280위엔)을 주고 한 권 샀다.

돈황의 명사산

명사산, 맑은 날에는 모래 소리가 관현악기 소리같이 들리거나 수만의 병마가 두들겨 치는 북과 징소리같이 들리므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사람과 문명 소음으로 이제는 들을 수 없다. 그로 인해 명사산의 슬픈 전설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

명사산에서는 색다른 체험으로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낙타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그 하나이고 모래썰매를 타고 산을 내려오는 것이 나머지 하나다.

a 명사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산의 모습

명사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산의 모습 ⓒ 정호갑

낙타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이국적인데 산에 올라 모래산이 겹겹이 펼쳐져 있는 광경 또한 낯선 풍경이라 여행 기분이 절로 난다. 또 산에서 내려올 때는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마치 눈썰매를 타듯 빠른 속도에 취해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는 그 기분도 괜찮다.

특히 이곳 모래색이 검은색, 붉은색, 녹색, 노란색, 흰색 다섯 가지로 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다른 사막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모래 색깔을 찾아 병에 담아보니 예쁘다. 가져가도 괜찮다고 하기에 책장에 두면 좋겠다 싶어 병에 조금 담아왔다.

아쉬움으로 남은 것이 월아천이다. 초승달 모양의 샘이 모래산 한 가운데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산 아래에 있는데 초승달 모양이라지만 어쩐지 인공 냄새가 풍겨 신비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주위가 모래산인데 물이 어떻게 이곳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일었다. 사람도 많이 북적대기에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말았다.

명사산에 얽힌 전설

전설 1

전설에 의하면 명사산은 수풀이 울창한 청석산이었다고 한다. 월아천에는 당시 신을 모시는 사당들이 많았기에 항상 법회가 열렸으며, 사람들은 이때 춤과 노래로 신들을 공경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어느 해 정월보름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징과 북소리로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뜻밖에 사막의 신인 황룡태자를 깨우고 말았다, 황룡태자는 놀라서 큰소리로 부르짖자 역풍이 사방에서 일어나 모래가 산 같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황룡태자는 몰래 나와서 명절 행사를 훔쳐보았는데, 그 명절의 행사가 재미있고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박수를 쳤다.

그러자 순식간 모래들이 날아와서 춤과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을 압사 시켜 버렸다. 이에 황룡태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괴로워하면서 청석산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하였다 한다. 이때부터 월아천 앞의 산들은 모두 모래산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현지의 사람들은 모래가 서로 부딪쳐 나는 소리가 바로 산 아래의 수많은 영혼들이 징과 북을 쳐서 자신들의 신세를 하소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설 2

옛날에 한 장군이 거느리는 군대의 깃발과 갑옷의 색깔이 황색, 녹색, 백색, 검은색, 붉은색의 5가지 색으로 구분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 부대를 이끌고 서역 정벌에 나가 크게 승리하여 양관으로 들어와서, 명사산에서 진영을 만들고 주둔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명사산은 모래가 없고, 푸른 나무와 맑은 물과 풀이 무성한 푸른 산이었다. 장군은 속으로 군사와 말들이 연이은 전쟁으로 인하여 매우 힘들고 지쳤을 것이라 생각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였다, 또한 말들로 하여금 산에 풀어 놓아 편하게 휴식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적군들이 기습하여 많은 장교와 병사들을 죽였으며,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강을 이루었으며, 죽은 이의 숫자가 만 명이 넘었다.

이에 적군들은 큰 승리를 기뻐하며 승리의 제를 지낼 때 갑자기 하늘에서 역풍이 일이고, 천둥번개가 치며 누런 모래가 폭우처럼 내려와 순식간에 수많은 시체들을 뒤덮었으며 잠시 후, 하나의 커다란 모래무덤 같은 모래산이 생겨났다. 이후부터 산에 바람이 불 때면 모래바람의 소리가 낭랑하지 않고 징과 북을 치는 것 같으며,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므로 산의 이름을 명사산이라 하였다. 명사산의 5가지 색깔은 그 군대의 5가지 깃발과 갑옷의 색깔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전설 3

월아천은 오래 전 돈황이 갑자기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자 어여쁜 선녀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 눈물이 샘을 이루었다는데서 비롯되었다. 후에 선녀가 샘 안에 초승달을 던져 빛을 찾게 했다고 한다.

트루판의 화염산

벌써 산 이름에 화(火)와 염(焰)이 들어가니 얼마나 더운 산인지 알 수 있다. 산의 모습도 마치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주위에 그 어떤 생명체도 찾아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작열하는 태양에 모두 다 타버려서인지 온 산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

a 마치 불타는 모습을 하고 있는 화염산

마치 불타는 모습을 하고 있는 화염산 ⓒ 정호갑

이런 산의 모습을 사람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오승은의 <서유기>에는 화염산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한다.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으로 가기 위해 화염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이 산이 불타고 있기에 도저히 넘을 수 없었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나찰녀의 파초선이 있어야 하기에 손오공이 나찰녀와 싸워 마침내 파초선을 얻게 된다. 그 파초선을 부치자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끌 수 있었으므로 일행은 무사히 이 산을 넘어 천축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산 앞에 서니 열기가 그대로 와 닿는다. 그 열기에 사진을 빨리 찍고 차에 오르기가 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난 지금 산에 오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움으로 남는다. 산 정상에 올라 태양의 뜨거움과 맞서는 오기를 보였어야 했는데. 언제 또 갈 수 있을는지.

트루판의 고성

트루판에는 고창과 교하 두 고성이 있다. 이곳을 다녀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곳만 둘러보길 권한다. 두 곳을 다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역사에 대해 모르고 또 눈을 끌만한 화려한 유적이나 유물도 발견할 수 없기에 한 곳만 둘러봐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a 달구지 타고 고창고성으로

달구지 타고 고창고성으로 ⓒ 정호갑

한 곳만 둘러본다면 교하고성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교하고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보존이 고창고성보다 훨씬 잘 되어 있다. 교하고성은 하천을 따라 이루어진 도시로 지금도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집터에 들어가 앉으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슬며시 빨려 들어간다. 잠시 알 수 없는 과거에 빠져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묘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a 교하고성 동문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교하고성 동문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 정호갑

하지만 두 곳 다 당시에는 영화를 누렸을 텐데 지금은 당시의 흔적만 군데군데 찾아볼 있을 뿐이다. 흥하면 쇠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여기면서 우루무치로 발길을 돌리는데 갑자기 계영배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이것 또한 나의 욕심일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4. 4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5. 5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