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오늘이 재판 마지막이었으면..."

[현장] 연쇄살인범 유씨 첫 공판

등록 2004.09.06 19:12수정 2004.09.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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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지역 부유층 노인 및 전화방,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연쇄살인한 유영철씨.

서울지역 부유층 노인 및 전화방, 출장마사지 여성들을 연쇄살인한 유영철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재판장 "다음 재판 기일은 오는 9월 21일 오후 3시로 하겠습니다."
유영철 "판사님은 저를 벌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스스로 죄 값을 치르기로 했기에 …. 다음 기일을 잡지 말고 선고를 …. (나는) 인생을 포기했고, 오늘이 재판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다음 기일에 법정출석을 거부하겠습니다 …."
재판장 "(피고인은) 돌아가서 시간을 갖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다음 재판은 …."


유영철(34)씨는 교도관들에 의해 이끌려 재판장을 빠져나가기에 앞서 방청석을 향해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해자 가족 한사람이라도 여기에 나와 있다면 사과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여성과 노인 등 21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연쇄살인범' 유씨가 6일 첫 재판을 마치면서 남긴 말에 60여명의 방청객과 20여명의 취재기자들은 당황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황찬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유씨는 "언론에서 내가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막 살인을 시작하는 단계였다"고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유씨는 검찰에서 '잡히지 않았다면 수첩에 100명 정도 (이름이) 찼을 때까지 계속해서 계속 살인을 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는데"라고 묻자 "살인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씨는 검찰이 '피해자들을 죽일만 했고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며 "같은 맥락이지만 기회와 방법이 없었을 뿐이지 죄송한 마음은 갖고 있다"고 약간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기도 했다.


얼굴 드러낸 유씨 보기 위해 방청객 100여명 찾아 ... 긴장감 속에 재판 진행

유영철씨의 첫 재판은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층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재판 시작 전부터 국내·외 언론들이 주목했고, 많은 시민들이 유씨의 얼굴과 재판을 보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법원은 법정으로 통하는 2층과 4층에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검문대를 설치하고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일일이 출입자 검문을 했다. 또 만일의 불상사를 대비해 119 응급구조대원 3명이 법정 밖에서 대기했고, 재판 중 방청객의 돌출행동을 대비해 10여명의 법원직원이 법정 안에 들어와 있었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150석 규모로 방청객은 취재기자 포함해 100여명이 넘었다. 피고인석과 방청석 사이에 정복을 차려입은 교정 직원 18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동안 유씨는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시켜 왔기에 그의 얼굴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앞서 법원은 법원 내 사진촬영을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진 기자들이 유씨의 모습을 담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기자들은 그가 이동할 수 있는 장소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재판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날 오후 2시5분께 황찬현 부장판사와 배석판사가 자리한 후 유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씨는 일반 수의가 아닌 검정색 티셔츠와 바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의 손은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얼굴은 긴 머리와 짙은 눈썹에 수염까지 길게 길러 창백한 모습이었다.

방청객들은 침묵 속에서 피고인석에 앉은 유씨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재판은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황 부장판사는 우선 유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했고, 유씨에게 "검찰과 변호인, 법원이 묻는 말에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고, 유리한 진술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피고인의 권리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유씨는 또박또박 자신의 인적 사항을 답하고, 피고인의 권리를 듣고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에 대해 "한가지 증거만 나오면 자백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나와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고 나름대로 불만을 토로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애인과 이름이 같아서 얼굴은 달라도 그 사람이라 생각하고 죽였다"

a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연쇄살인범 유영철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어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바로 검찰 측의 신문이 시작됐다. 하지만 워낙 유씨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기에 재판장은 유씨에게 핀마이크를 부착해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씨가 작은 목소리로 답을 이어가자 방청객들은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유씨는 검찰이 공소사실 인정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네"라는 대답으로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검찰이 피해자들에 대한 살해과정을 세세하게 물어 방청객들은 놀라워하는 표정이었고, 유씨는 아무런 반응없이 신문하는 검사를 바라보면서 또박또박 대답했다. 더구나 유씨는 미리 준비해온 자신의 범행 내용을 적은 쪽지를 꺼내 대조하면서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씨는 피해자 중에 애인이었던 김아무개씨와 이름이 같아 잔혹하게 살해를 했다는 진술을 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유씨의 변호인은 "유씨가 수사과정에 적극 협조했고 객관적 증거도 피고인의 자술이 있어서 (찾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는 유씨가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 변호인측 신문을 진행토록 하고 재판을 두 시간 반만에 끝냈다.

한편 유씨는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유기, 사체은닉, 공무원자격 사칭 등 10가지 죄명을 받고 있다. 또 최근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 중이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까지 병합돼 11가지 죄명으로 앞으로의 재판이 진행된다.

다음 공판 기일은 오는 21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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