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치 않았던 중국 여행

-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6)

등록 2004.09.13 13:33수정 2004.09.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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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중국 여행

중국에서 배낭여행을 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차표 구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도 처음에는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몇 곳을 거치면서 계속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기차표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기차표를 여행사에 일임하고 출발했다. 그런데도 여행사의 장난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는 하루를 맞게 됐다.

돈황에서 트루판까지는 밤기차로 이동했다. 돈황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늘 하던 대로 여행사 안내원에게 기차표를 달랬더니 주지 않는다. 그냥 자기를 따라오라고만 한다. 조금 이상했지만 여행사에 맡겼으니 뭐 별일이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a 위진벽화묘- 밭 가는 모습

위진벽화묘- 밭 가는 모습 ⓒ <가욕관지하화랑>

기차 끝 부분으로 계속 우리를 데리고 가는데 기차를 보니 임시열차이다. 타서 보니 시설도 형편없다. 에어컨도 없고, 침대 시트도 완전히 낡고, 화장실도 엉망이고 모든 것이 뒤떨어진 기차다. 안내원에게 기차표를 보여 달래니 끝내 보여 주지 않고 몇 군데를 지정하여 주고는 그냥 역무원에게 우리 기차표를 맡기고 간다. 역무원에게 우리 표를 보여 달래도 그 또한 표를 보여 주지도 않고 카드로 교환해 주지도 않는다.

참고로 중국은 기차를 타면 기차표를 역무원에게 제시하고, 역무원은 그 표에 해당되는 카드를 준다. 그리고 도착할 때가 되면 카드와 기차표를 다시 교환한다.

뭔가 이상했지만 기차는 출발했고, 이제 어찌 할 수 없어 안내원이 우리 자리라 일러 준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밤 12시 가량 되니 누군가 나를 툭툭 치며 자기 자리라고 비켜달란다.

'뭐, 이런 일이!'


내 자리라고 말하니 그들은 표를 들이밀며 자기 자리라고 한다. 역무원에게 가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그냥 다른 자리로 가라고 한다. 왜 우리 자리는 없느냐고 하니, 그냥 당신들은 트루판까지만 가면 될 것이 아니냐면서 빈 자리에서 그냥 자란다. 우리 자리가 있을 것 아니냐면서 우리 표를 확인하고자 해도 끝내 보여 주질 않는다. 말이 잘 되지 않으니 속시원히 따질 수도 없다.

몇몇 중국인들이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본다. 값싼 표를 사 가지고 빈 침대칸을 찾아가며 돌아다니는 몰상식한 외국인으로 취급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내 자리라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뭐라 말할 수 없다. 외국인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본다. 하는 수 없이 빈 자리에 가서 누워 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트루판에 다다를 쯤에 역무원이 우리에게 기차표를 건네 준다. 받아보니 놀랍다. 돈황과 트루판의 중간 지점인 하미까지는 경좌(硬座)이고, 하미에서 트루판까지는 경와(硬臥)이다. 경와도 정식이 아니고 이동하는 중에 끊은 부표로 되어있다. 당연히 우리는 10시간이나 가야 하는 거리니 경와로 예약을 한 상태였다.

이렇게 하면 기차비가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200위엔 하는 기차비가 100위엔밖에 들지 않았으니 차이가 난 100위엔은 어디로 날라 갔을까? 괘씸한 마음 이를 데가 없다. 외국인이라고 아마 이런 장난을 치는가 보다. 어디 두고 보자. 반드시 북경에 돌아가 여행사에 따져 환불을 받아 내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외국인을 상대로 여행사의 장난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네이멍구(내몽고)로 여행을 한 동료는 돌아올 때 기차 대신 버스로 와야만 했단다. 중간에 한사람을 내려 주기 위해 알 수 없는 시골길로 계속 달려 거의 하루나 걸렸다고 한다. 기차로는 10시간이면 되는데. 배상을 받았느냐고 하니 그냥 물러섰다고 한다. 외국인이니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중국에 와서 첫번째로 들은 말이 '중국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조금 못 산다고 깔보다가는 큰 코 다친단다. 하지만 이번 기차표 사건은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여행사에 전화를 했다. 여행사와 계약을 할 때 돈을 모두 주지 않고 80%만 주고 아직 20%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랬더니 3일 정도 지나자 전화가 왔다. 기차비 차액인 100위엔을 돌려 주겠다고 한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전액 환불을 요구했고, 정신적 배상까지 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만나자고 한다.

하청을 주면 현지에서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는데 자기들이 성수기라 바빠서 감독을 소홀히 했다면서 참으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면서 돈황에서 트루판까지 기차비 전액을 환불을 하겠다고 한다. 뭐, 이렇게 나오니 정신적 배상까지 요구 할 수 없어 그냥 기차비 전액만 환불받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래도 중국인과 계약에서 돈을 돌려 받은 것이 왠지 뿌듯했다.

중국인의 친절

어처구니없는 여행사의 장난으로 여행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친절함에 여행의 피로를 씻고, 다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중국인의 너그러움으로 여행의 피곤함을 잊을 수 있었다.

a 기차 안에서 중국인들과 함께

기차 안에서 중국인들과 함께 ⓒ 정호갑

사실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북경에서 란주까지는 2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기차표를 받아 보니 3명만이 2층 칸이고 나머지 14명이 3층이다. 밥은 어디서 먹으며, 이야기는 어디서 나눌 것인가? 3층의 침대에서 가만 누워서 22시간을 갈 수는 없지 않나? 큰일이다.

마침 1층에 한 학생이 앉아 있기에 살짝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자리를 조금 비켜 준다. 그러고 나니 우리 일행이 한명 두명 모여드는데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중년 아저씨는 슬그머니 일어나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주고 자기는 빈 좌석으로 살짝 옮겨 간다. 그 틈을 타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기차에서 만난 한 학생은 자기도 란주까지 가는데 전화번호를 일러 주며 호텔에 도착한 후 전화해 달란다. 그러면 자기가 호텔로 찾아와 란주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 말이 하도 고마워 전화를 걸었더니 정말 호텔로 여자 친구를 데리고 찾아왔다. 함께 나가자며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란주 시내와 백화점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도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특히 중년 아저씨에게는 말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에 중국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여행에서 생긴 우정

a 이번 여행에서 우정이 싹튼 여인 삼총사

이번 여행에서 우정이 싹튼 여인 삼총사 ⓒ 정호갑

이번 여행은 17명이 함께 했다. 일정도 9박 10일로 길었고, 긴 거리를 계속 옮겨 가며 해야 하는 여행, 그리고 모두가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이다. 더구나 여행길은 편안한 곳이 아니라 삶의 몸부림이 배어 있는 모험의 길인 실크로드, 그것도 한여름이었기에 그 길을 따라 17명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가는 날에서 오는 날까지 그 누구 하나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서로 힘이 되어 주며 모두들 잘 다녀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녀 와서 우정이 새로 싹텄다. 다녀온 뒤로 여자 분들은 더욱 더 사이가 가까워져 함께 북경을 누비면서 중국 맛을 톡톡히 즐기고 있다. 집사람은 내가 퇴근하고 오면 펑요유(朋友: 친구)와 함께 어디를 다녀왔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세상에서 사람의 정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9박 10일 동안 힘든 여행길을 함께 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그 가운데 세 사람의 우정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아닐는지?

여행을 마치면서

a 탐스럽게 열린 트루판의 포도

탐스럽게 열린 트루판의 포도 ⓒ 정호갑

미처 말은 못했지만 가욕관의 위진벽화묘도 인상에 많이 남았다. 죽은 사람을 묻으면서 무덤 꾸미기를 산 사람의 집과 같이 하였다. 위진벽화묘 안에는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 무덤 속에 그려진 그림들은 저승의 모습이 아니라 이승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마치 우리 옛날 농촌 모습과 같다. 그 때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트루판의 과일 맛은 잊을 수 없다. 과일이 달아서 많이 먹지 못할 정도로 당도가 높다. 평소에는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나인데도 이곳에서는 포도와 하미과라는 과일을 많이 먹었다. 이렇게 단 포도를 가지고 건포도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또한 정말 맛있다.

이렇게 9박 10일의 여행은 끝났지만 실크로드를 다니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은 앞으로 삶의 밑거름으로 남아 부족한 나의 삶을 계속 채워 줄 것이다. 다시 가고 싶다. 하지만 언제 또 다시 갈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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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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