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71

뭐야? 빌려줬다고? (9)

등록 2004.09.13 12:15수정 2004.09.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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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악―!

"으으! 으으으으…!"


"이놈, 이제 바른 말을 하겠느냐?"
"으으! 으으으…!"

"무슨 목적으로 군화원 입구까지 땅굴을 팠는지 고하라!"
"으으으! 으으으으…! 저, 정말 호, 호기심… 끄응!"

힘겹게 말을 잇던 이회옥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또 다시 아득한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흥! 다시 물을 뿌려라."

촤아아아악―!


또 다시 찬물이 끼얹어졌지만 이회옥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으음! 완전히 맛이 갔군. 좋아, 오늘은 이만하지. 놈을 일단 규환동에 하옥하라. 그리고 의방에 연락하여 외상을 시료케 하라. 나아지면 다시 심문할 것이다."
"존명!"


철기린이 전각 안으로 사라지고 난 뒤 이회옥은 개 끌리듯 끌려 규환동으로 향했다. 또 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무언화 조연희 때문이었다.

며칠 전, 철기린은 부푼 마음으로 군화원을 다시 찾았다. 전날 보았던 여인 가운데 하나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았건만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가 온갖 치장을 다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심히 기대되었던 것이다.

빙기선녀 사지약은 분명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좋은 노래도 세 번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내들이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발견하면 자신의 것이 되기 전까지는 온갖 공을 들이지만 일단 제 것이 되고 나면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으려 한다. 이는 낚시꾼이 잡은 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빙기선녀는 잡은 고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녀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 이유는 뛰어난 방중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대문의 감춰진 힘과 재물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런 와중에 회임을 하여 더 이상 합방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욕정(欲情)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치미는 육욕을 만족시킬 대상이 필요했는데 눈에 확 뜨이는 미녀를 발견하였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하여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마음으로 군화원을 찾은 것이다.

한편, 군화원의 여인들은 혹시 자신에게 행운이 내려질지도 모르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초조히 도열해 있었다.

그런 그녀들 사이로 화원의 꽃을 감상하듯 천천히 걷던 철기린은 자신이 찾던 미녀가 어디쯤 있을까 연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녀를 골라내는 눈썰미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부하였다. 그렇기에 잘못 보았을리 없다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색다른 명을 내렸다.

모든 치장을 제거하고 세수까지 한 뒤 다시 모이라는 것이었다. 영문 모를 명이었지만 여인들은 우르르 달려갔다.

철기린이 이런 명을 내린 이유는 때로는 치장이 원래의 미모를 훼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략 이 각 정도가 지난 후 도열해 있는 여인들 사이를 다시 어슬렁거리던 철기린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찾던 여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인원 점검까지 실시하였지만 군화원의 여인 가운데 결원(缺員)은 하나도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사라지자 괜스레 기분이 상한 철기린인은 짜증을 부렸다.

이때 십팔호천대주 가운데 하나인 무영으로부터 중대 보고가 있었다. 군화원 외곽에서 정체 모를 땅굴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하릴없던 대원 가운데 하나가 석등에 대고 소변을 지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굴을 따라가 보니 입구가 무려 일곱 군데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상당히 치밀하거나, 교활한 성품의 소유자가 굴을 뚫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여 즉각적인 수사가 착수되었다.

며칠 후, 주 출입구가 철기린의 애마가 머무는 마굿간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다른 곳은 굴이 뚫려 있기는 하였으나 드나든 흔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알아낸 사실이다.

그곳은 철마당주인 이회옥과 마굿간 청소를 담당하는 늙은 하인 이외에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범인은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늙은 하인은 결코 범인일 수 없었다.

한쪽 무릎에 이상이 있어 늘 다리를 끌고 다니는데 굴 속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숨을 잃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고문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회옥을 잡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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