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원경고의 새로운 화두, '머리로 하는 공부'

인성교육과 체험학습에 기초 학력 향상까지... 2학기가 분주합니다

등록 2004.09.16 20:27수정 2004.09.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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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에 위치한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의 2학기 화두는 '공부'였습니다. 체험학습과 자연친화교육을 통해 인성 중심 열린 교육을 시행하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공부라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사실 애초에 대안학교가 처음 형성이 될 때에는 '공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였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일반학교에서는 지식 공부만으로 한정하여 사용되는 데 비해, 대안학교에서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체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나 노력'으로 규정하여 사용하였죠.

a 아이들이 방과 후에 수학 보충 지도를 받고 있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 수학 보충 지도를 받고 있다 ⓒ 정일관

그래서 대안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지식 공부에 매몰되어 시행할 수 없었던 인성교육과 체험학습을 수행하여 그 한계를 보완하거나 극복하려 하였습니다.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한 특성화교과목을 마련하고, 지리산종주등반이나 현장학습 등의 체험학습과 심성계발훈련과 마음공부 등의 인성교육에 주된 초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몇 가지의 오해와 편견이 자리잡게 되었으니, 그 하나가 지식을 주로 다루는 보통교과는 안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안학교에는 공부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이 주로 찾아오게 되었고, 교실 수업이 소홀히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교재나 필기도구 등을 챙기지 않을 뿐 아니라 교실 수업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가지거나 무시함으로써 교사들이 매우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교사들 또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이를 받아들여 교재나 필기구를 제공해주는 자구책을 강구하거나 체념하기 일쑤였습니다.

a 한글 펜글씨 교본 쓰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한글 펜글씨 교본 쓰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 정일관

이러한 학생들의 인식 바탕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란 도대체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용성을 강조하며 현행 학교 교육의 형해화에 반대했던 진보적인 교육관이 스며든 결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실 수업을 폐지할 수 없는 노릇이고, 교실 수업을 무한정 대체할 대안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인성교육과 체험학습도 타성에 젖을 수 있어서, 교실 수업, 특히 보통교과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1학기 원경고등학교 교사들은 계속 이어진 토론을 통해 학교 생활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교실 수업에 학생들이 뜻을 두지 못 한다면, 학교 생활의 절반 이상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학교 생활 전반에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 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습니다.


a 한 아이라도 성심 성의를 다하여

한 아이라도 성심 성의를 다하여 ⓒ 정일관

그래서 2학기 들어 선생님들은 기초 학력 향상을 중요한 교육의 한 부분으로 부상시켜서 인성교육, 체험학습과 함께 의자의 세 다리와 같이 대안교육을 떠받치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마음으로 하는 공부'와 '몸으로 하는 공부'에 '머리로 하는 공부'를 함께 하여 일반 인문계 학교처럼 머리로 하는 공부에만 빠지지 않고, 반대로 소외시키지도 않는 균형을 잡고자 한 것입니다.

학교라면 당연히 공부만 해야지 하는 분들이 보면 조금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재적응형 대안학교에서는 앞의 표현대로 '화두'인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a 따뜻하게 마주 앉아 공부하는 선생님과 아이들

따뜻하게 마주 앉아 공부하는 선생님과 아이들 ⓒ 정일관

우선 원경고등학교는 시간표를 정해놓고 보충수업하자고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찾아가서 가르치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살펴보고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을 설득하여 한 팀을 만들고, 공부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아이가 있으면 권유하고 설득하여 한 팀을 만들고, 담임 선생님들은 집요하게 상담하면서 권유하고….

이런 식으로 하여 수학· 영어 기초·보충, 국어 기초 보충, 과학 보충, 한자 공부 등, 9명의 선생님들이 18개 팀을 만들어 요일과 학년을 달리하며 방과 후에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서 전교생에게 한자로 이름 쓰기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흥미 위주 수업보다 학력 향상 위주의 수업을 권장하였습니다.

a 영어 문장카드로 개별 지도를 하고 있다

영어 문장카드로 개별 지도를 하고 있다 ⓒ 정일관

이렇게 되자 학교는 상당한 활기를 찾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 한 명이라도 끼고 앉아 가르침으로써 뿌듯함도 느끼게 되었고, 학생들은 마치 과외 공부를 받는 것처럼 기초를 배움으로써 새로 시작하는 기대감과 함께 목표 의식이 싹트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 공부 안 할래?" "우리 공부 좀 할까?" 하는 말들을 자연스레 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라든지, 교과 공부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는 또 새로운 화두를 풀기 위해, 또 한 걸음 내디딥니다. 지식 공부의 한계를 극복하되 지식 공부가 소용없다는 편견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대안교육이 온전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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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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