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라, 태국

4박 6일간의 동남아 오지 문화체험

등록 2004.09.17 14:40수정 2004.09.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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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종칠금(七縱七擒)을 아시는지.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갈공명은 서기 225년 대군을 이끌고 남만을 정벌하러 떠난다. 이 정벌에서 공명은 남만의 우두머리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줌으로써 그가 스스로 복종하게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전한다.

이른바 칠종칠금의 이 고사를 읽으며 일찍이 남만여행을 꿈꾸어 왔다. 큰 뱀을 통째로 삶아먹고 사람의 머리를 쳐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 열대우림과 만도 그리고 코끼리의 나라. 언제나 세상의 변방으로서 원시의 열정을 갖고 있을 것 같은 남만. 사람들은 지금의 운남성과 함께 태국과 미얀마의 북쪽지방을 남만이라 한다(남만은 남쪽의 오랑캐 혹은 남쪽 지방에 사는 야만족이라는 뜻으로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주변 민족들을 그 방위에 따라 남만, 북적, 서융, 동이라는 말로 일컬었다. 이 가운데 동이에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포함된다).


또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요구에 따라 연합군 포로들이 다리를 건설한 실화를 바탕으로, 일본인의 잔혹함과 횡포를 강렬한 이미지와 뛰어난 극적 구성으로 만든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실존하고 있는 곳, 타이. 이 영화는 1957년 7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영화 곳곳에서 흘러넘치던 휘파람 소리를 따라 애상의 석양 무렵,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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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오랜 가슴 속의 남만여행을 위해 여행사에 특별히 태국의 오지여행을 주문했다. 일행은 가족과 직장 동료 13명. 인천공항을 떠나 방콕에 도착하니 저녁 9시 10분으로 우리 나라보다 2시간이 늦은 거리에 낯선 얼굴들이 가득하다.

조금은 더 검고 작은 모습에 미간이 깊이 팬 형태의 쌍꺼풀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세발택시와 차량의 오른편 운전석이 이채롭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을물 같은 그윽한 눈매를 지녀 '곱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숙소(Ban Yoke Sky Hotel)에 도착하니 10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콕 시내가 어둡다. 전력이 부족한 탓은 아닐 터이니 이 나라는 꼭 필요한 만큼만 불을 밝히는 것인가.

아침식사를 78층에서 했다. 음식에서 순천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피와 같은 향신료 냄새가 스며 있다. 밥은 안남미로 먹을 만했다. 음식도 문화체험일진대 어찌 먹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방콕은 역시 국제공로(空路)의 요충지로서 손색이 없는 큰 도시였다.


담눅사두억 수상시장을 방문했다. 수로를 보는 느낌은 흥미 만점이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기다란 카누를 타고 즐겁게 물길을 돌았다. 일행 모두의 얼굴에 재미가 가득하다. 태국은 특히 수로가 발달한 국가로 우리가 갔던 모든 지역에 카누가 마치 호박 줄기처럼 달려있었다.

엔진이 달려 있지 않은 배들도 있지만 대개는 꽁무니에 엔진과 스크류, 방향키가 함께 달린 엔진대(낯설지만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를 설치하여 얕은 여울에서는 그것을 수면에 바짝 붙이고 깊은 물에서는 물 안 깊숙이 넣어 작동시키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폭이 작고 물이 적은 수로로 인해 발달한 모양으로 생각된다.


수상시장에서 목각 두꺼비와 모자를 샀는데 엄청 바가지를 썼다. 특히 차까지 따라온 태국 아주머니는 내가 8달러를 주고 산 모자를 단 2달러에 판다며 우리 말로 "2달러! 2달러!"를 외쳐 나를 우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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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칸차나부리로 이동해 전쟁박물관과 UN묘지를 방문했다. 가이드 박성룡씨는 7000명이 묻혀 있는 묘지를 가리키며 이와 같은 묘지가 태국 내에 5개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3만 5000명의 군인이 죽어갔다는 얘기다. 아, 인간은 언제나 더러운 탐욕을 버릴 것인가.

박물관 내에서 훈도시만 차고 있는 서양 사람들과 그들을 고문했던 그림(형태도)들을 살피며 머나먼 이곳까지 끌려와 연합군과 일본군 양쪽으로부터 냉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나라의 노무자와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을 상상했다.

그 당시 고국으로 귀향하지 못한 많은 노무자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는 단 한 분만 방콕에 살고 계신다는 얘기에 몇 년 전, 사십 몇 년만인가 고국을 찾았던 정신대 할머니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점심은 강가, 정확히 말하면 강물 위에 설치된 선상식당에서 콰이강의 다리를 바라보며 먹었다. 후식으로 나온 '넉'이라는 밤송이 비슷한 열대과일은 맛이 있었다. 식당 유니폼을 입은 '케이'라는 종업원 소녀와 사진 한 컷. 송원씨는 그 소녀에게 김 한 봉지를 건네며 김을 전하는 자기 생각을 헤아려 주라는 듯 "my think"를 연발한다. (아, 고 녀석 귀여운 걸.)

점심 후에는 코끼리 및 개, 악어쇼를 구경했다. 하지만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목을 쇠사슬로 묶어 놓은 코끼리들의 슬픈 정경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노래의 리듬에 따라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코끼리 두 마리의 몸짓과 때마침 내리는 열대 우기의 스콜로 인해 나까지 그 동물들의 슬픔에 동화되는 듯했다.

아무렇게나 게으른 걸음을 옮기는 조련사들과 그들의 요구에 의해 돈 바구니를 물고 관중을 헤집는 개들의 모습은 차라리 하나의 개그였다. 쇼 이후 사파리에서 차량으로 먹을 것을 달라며 몰려든 고라니, 사슴 그리고 물소와 기린들을 보고 우리 일행은 웃었다. 바나나 껍질을 먹기 위해 어떤 놈은 창 안으로 고개를 디밀기까지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우리 나라 TV에도 출연했다는 왓탐망껌통 사원의 보살 메츠 서웨이(56세)의 물 속에서 뜬 채 구도하는 모습을 관람했다. 과학적으로 그 모습이 기적일진 몰라도 내게는 다소 억지스러움이 전해졌다. 저렇게 조금 뜨는 것이 무슨 화젯거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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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저녁식사는 콰이강을 흘러 내려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오며 주변 풍광을 살피는 선상디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배가 끄는 식당 위에 차려진 김치 백반과 소주, 그리고 먹음직한 돼지 바비큐의 냄새. 한 잔을 먹고 또 한 잔을 먹는 사이 콰이강의 밤은 무한정 깊어갔다. 돼지고기를 썰어주는 이름모를 태국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둥근 원을 그리며 열대의 이국에서 한국 노래를 부를 즈음 아, 나는 이내 천국을 헤매고 있었다.

River Kwai Village 리조트는 콰이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콰이강이 도도히 흐르고 베란다 천정에는 태국의 상징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도마뱅 찡쪽이 붙어 있었다. 찡쪽은 태국 사람들이 친구처럼 사랑하는 도마뱀으로 그들은 찡쪽이 붙어 있고 떨어지는 형태를 통해 운세를 점친다고 했다.

식전 몬족의 생활상을 살피기 위한 몬족마을 방문을 위해 숙소를 내려가다가 문득 계단마다 그 나라의 열대수 잎 모양의 문양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 잎사귀를 콘크리트가 굳어지기 전에 놓아 문양을 만든 것으로 보였는데 여러 가지 형태의 그 모양이 예뻤다. 이처럼 태국에서 발견한 새로움은 교통신호등에도 있었다.

교통신호를 대기하다 신호등을 보니 신기하게도 대기를 해야 하는 잔여시간이 파랗게 표시되어 있었다. 보행자 대기시간이 아닌 차량대기시간이 초 단위로 표시되고 있는 것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하는 것이 어떨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타이는 모두가 아다시피 왼쪽으로는 미얀마, 오른쪽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아래로는 말레이시아와 접해 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곳은 미얀마와의 접경지역이었다. 이 국경지역에는 몬족과 카렌족이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었다.

몬족은 한때 미얀마의 한 편에서 당당히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살았었지만 지금은 미얀마에서 쫓겨나 타이의 묵인 하에 국경의 수림 속에서 살며 자유로운 통행마저도 제한받고 있었다. 카렌족은 더 깊은 곳에서 코끼리와 함께 살고 있다. 가이드는 몬족의 염원은 미얀마에 자기들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내일은 그들 종족의 염원이 간직된 황금사원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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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매우 빠른 카누를 타고 20여 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드문드문 보이는 수상마을과 적벽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강안, 우거진 열대수들의 모습은 이국의 여행을 충분히 만끽하게 했다. 수상가옥에 배를 대고 언덕 위에 형성된 작은 마을에 올랐다.

거기에는 태국인보다 덜 검은 듯한 사람들이 귀여운 아기들과 어울려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학교는 큰 초막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큰 나무 숲에 둘러싸인 채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마을의 작은 토산품 가게에서 가게를 관리하는 '아삘'(14)과 한 컷. 참, 몬족은 일부다처의 나라이며 16세만 되면 자유로운 연애가 보장되어 처녀가 애를 낳아도 축하를 받는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가지고 간 고추장으로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정이 듬뿍 든 운전기사 '삐일라'와 한 컷. 이 날도 삐일라는 나를 가만히 부르더니 가져온 태국 음식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늘 잘 웃고 친절하여 그 맑은 마음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듯한 친구다.

우리 나이 35세.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우리 일행과 일정을 같이 했지만 한 번도 같이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운전기사이기 때문이다. 태국도 얼마 전 노예제가 폐지될 정도로 계급제가 심한 나라여서 '손님'인 우리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기피한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못된 놈의 불평등한 세상. 이러다가 결국 온 인류가 다양성의 부재와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해 망하고 말지.

몬족의 집촌이라는 산카부리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은 계속하여 오르막길로 나중 도착하게 되는 산카부리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고 한다. 가는 도중 들른 'Ain Did Hot Spring'이라는 마금네슘 온천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 느낌이 일품이었다. 노천이었지만 뜨거울 정도였고 그럼에도 물이 맑았다.

일행은 미리 수영복을 준비해왔지만 게으른 나는 '어찌 되겠지'하는 심사로 그냥 왔으나 물을 보니 어쩌랴, 이리 좋은 것을. 부부가 함께 온 윤섭씨를 통해 여자 분들이 다른 탕으로 가시도록 꼬드긴 후 그냥 팬티 차림으로 온천에 들어갔다가 바로 옆인 냇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즐겼다. 냇물도 물살이 세 선호씨나 상권씨가 물 속에 자세를 잡고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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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구비 구비 산을 오르는 길목마다 어김없이 호수가 이어졌다. 아울러 굴곡진 호수 사이 안락한 곳마다 수상가옥이 이어졌다. 물 위에 집을 짓고 물 안의 생선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며 배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몬족. 우리로서는 생각만 해도 신이 나지만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 민중의 삶은 지독히도 가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 해도 빼앗긴 나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클 것이며, 게다가 울타리 밖 통행금지라는 슬픈 현실까지 그들의 가냘픈 어깨를 짓눌렀다. 오호 통재라, 우리에게도 일제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부국강병이 실감났다. 나라 잃은 설움을 겪은 우리,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어깨를 펴지 못하는 우리. 비록 조금 형편이 나아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찾아 왔지만 겸손하게 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각성이 온 몸을 울렸다.

태국과 미얀마의 허술한 국경 미얀마와의 국경지역에서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국경을 넘어 미얀마 노천시장을 방문했다. 국경을 넘자마자 느낀 것은 미얀마인들이 오히려 몬족의 행색보다 추레하다는 것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의 검은 피부.

낮은 지붕의 건물에 꾀죄죄한 상점들. 7~8세 가량의 남자 아이가 조악하게 꾸린 작은 난 하나를 건네며 "삼십 바트"를 외쳐대던 것을 슬픈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1달러를 건넸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앳되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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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돌아오는 길 1000분의 목각 부처님이 야외에 서 있는 왓싸오 능로이또 사원을 찾았는데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겠지만 그러나 시주를 요구하는 능란한 모습이 낯설었다.

폼페린 리조트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일행 몇 사람과 몬족의 일반적 풍속을 알기 위해 마을의 선술집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술집 안에 중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서 머리가 긴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그들을 살펴보니 남자들은 남자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앉아 술보다는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듯했다. 담배연기와 함께 떠도는 다소 역겨운 냄새. 그리고 낡은 탁자와 삐걱거리는 의자.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몬족과 국경을 넘은 미얀마인들이 섞여 있는 듯했고 따라서 입성은 초라하게 보였다.

저녁을 먹은 후 만났던 태국 공무원들이 생각났다.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던 그 사람들은 방콕에서 워크숍을 위해 왔다고 하며 몇 번이나 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리조트에서 아침을 먹고 또 하나의 소수민족 카렌족 마을로 가기 위해 카누를 탔다. 가는 도중에 수상사원(水上寺院)을 만났다. 우기 때는 물 속에, 건기 때는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데 알고 보니 하류에 댐을 막아 수몰된 지역으로서 그중 가장 높은 건물인 사원만이 빼꼼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수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그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물에 엎어진 듯 고기를 떼내고 있었다. 30분쯤 달렸을까. 코끼리를 부리는 카렌족 마을이 나타났다. 이 양반들 모습들이 정말 가관이었다. 작고 검은 피부에 긴 바지와 반바지, 어떤 사람은 보자기 같은 천을 치마처럼 둘렀으며 심지어는 우리 나라의 군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알 수 없는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던 이들에 의해 우리는 2사람씩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뗏목이 기다리고 있는 상류로 출발했다. 카렌족 운전기사(?)는 코끼리 머리 위에 타고서. 코끼리는 느릿느릿 걸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더러는 야생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멀리 무엇인가를 경작하는 원주민의 모습과 밀림 사이로 언뜻언뜻 스치는 집.

그리고 냇물 위를 헤엄치는 뱀. 배가 고파옴에 운전기사더러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따 달라며 손짓발짓했더니 무슨 열매인가를 따 주었다. 그 딱딱한 표피를 깠더니 속은 마치 우리의 무화과와 같았으나 맛은 시큼거려 먹기는 힘들었다. 코끼리가 진흙탕에 빠져 계속 고생했다. 특히 우리들을 위한 안장을 매달기 위해 목에는 쇠사슬을 걸고 꼬리에 밧줄을 걸어야 했으니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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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아, 그러나 우리는 그 날 1시간 20여분 래프팅을 하며 밀림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내 인생에 있어 언제 또 코끼리를 타고 만도로 열대수를 내리치며 밀림을 누빌 수 있을 것인가.

뗏목 래프팅도 한없이 즐거웠다. 우리 나라 동강에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촌놈으로서 일상에 쪼들리는 샐러리맨의 처지에 가보기가 어찌 쉬운 일인가. 맑고 고운 물 위에 서 하늘을 바라보고 숲을 간질이는 바람의 향기를 느껴보는 맛.

게다가 이국의 풍경이 넉넉하게 펼쳐짐에야 더할 나위가 있을손가. 물이 회오리쳐 흐르는 여울에서 넘어져 물 속에 잠긴 뒤에는 아예 물속에서 뗏목을 잡고 강줄기를 흘러 내렸다. 래프팅이 끝난 후 윤섭씨는 카렌족 뗏목잡이가 아주 재미 있는 사람이었다고 크게 웃었다.

"웃기는 친구였어요. 내가 중심을 잡을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는 삿대를 간단히 밀어 물 속에 빠뜨리기를 반복해요. 그러면서 나를 보고는 씩 웃어요. 내참."

왕엔역에서 유학생과 함께 숙소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차량으로 2시간 가까이 이동하여 왕포역에 도착했다. 왕포역은 콰이강의 다리를 비롯한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미얀마와 방콕 간의 철로를 살펴보기 위한 출발역이었다. 아마 40∼50대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보았을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니콜슨 대령의 고뇌 어린 명연기와 더불어 아름다운 책임감은 오랜 기간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영화 내내 들려지는 휘파람 소리는 들어도 물리지 않는, 그러면서 영화의 장면들을 가슴 안으로 밀어넣어 오랫동안 추억이 되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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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역은 우리의 간이역처럼 작고 초라했지만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은 세계 도처에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동양인을 태운 기차 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잔치를 이루었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가다서다'를 반복했으며 그럴 때마다 목제 좌석은 엉덩이를 두들겼다.

숲을 뚫고 갈 때는 아주 느렸지만 평지를 달릴 때는 제법 속도를 내기도 했다. 왕옌이라는 역에 10분간 정차했을 때 역 앞에 펼쳐진 좌판에서 태국 수박을 사먹다가 일본에서 공부한다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발견해 반가워하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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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개인적으로 태국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열차를 타보도록 권하고 싶다. 태국이라는 나라의 진면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인가와 평야 그리고 숲의 행렬을 통해 태국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을 뿐더러 기차 안에서 오르고 내리면서 이어지는 태국 학생들의 모습으로부터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인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평야지대에 심어놓은 농작물들은 그 나라의 음식문화까지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콰이강이 가까워졌다. 옆으로 흙탕물의 강줄기가 보이고 절벽을 연결하는 오래된 목제철로가 나타난다. 이윽고 콰이강의 다리가 보인다. 사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콰이강의 다리는 장쾌하게 크지도 높지도 않았다. 그런 느낌은 영화의 극적효과 때문이었겠지만 다소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디인가.

저 맑은 강과 남국의 풍물이 가득한 풍경 사이에 우뚝 서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기적을 울리며 정거하는 다리 난간 사이에는 사람들을 거둘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 안에서 다가오는 열차를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과 기차 안에서 밖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찍어대는 모습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자원이었다.

콰이강의 물 위에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아리랑 식당) 4박6일 태국여행의 마지막 밤. 흐르는 강물과 바람 그리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미련으로부터 아쉬움이 강물에 흐르는 불빛처럼 어른거렸다. 거푸 몇 잔의 소주를 마시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여수(旅愁)여/콰이를 흐르는 힘찬 물줄기여/내 옷깃에 흐느끼는 별빛을 떨치노니/나를 돌아보지 마라/이제 네 어깨에 깃들인 포환의 흔적 위로도/일용할 삶의 양식이 쌓여/취한 몸짓으로 술잔을 건네고 있다/너를 떠난다 해도 결코 두렵지 않다/그저 코끼리 등허리를 오르내리는 나비처럼/팔랑거리는 이별이 서러울 뿐/언제고 다시 라후의 후예를 만나/갈색 눈으로 푸른 몽골반점과 낮은 콧등을 부빌 것을 기약하며/람옹의 마지막 사위처럼 그렇게 우리는 간다

- 라후족이 고구려 후예라는 전설이 있음, 람옹은 태국 민속춤

저녁에는 일행 대부분이 일렬로 누워 태국 마사지를 체험했다. 잘못된 뼈다귀가 바로 서는 듯 시원했다. 이쪽에서 '아이구'하면 저쪽에서도 '아이고'하여 한참 웃었다.

태국왕궁을 둘러본 후 한 컷. 이튿날엔 숙소(Poong Yaan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방콕시내로 향했다. 점심으로 태국 전통식 '스키'를 맛보았다. 야채를 넣은 샤브샤브와 함께 말간 죽이 나왔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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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혁

관광객이 넘쳐나는 방콕 관광은 당초의 목적이 오지여행이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화려한 금장의 탑이 125미터에 이른다는 왓프라 체리아 사원과 에머랄드 불상(66㎝×48㎝) 그리고 왕궁을 차례대로 구경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한국식당에서 삼겹살로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태국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에 이끌려 공기밥을 더 먹고 나오니 차 곁에 장사꾼들이 "싸요! 좋아요!"라며 상아 목걸이를 사라고 한다.

처음에는 5개에 만 원이던 것이 차가 출발하려 하니 창문을 두들기며 "열 개에 만 원!"으로 내려간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정겹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으면 저처럼 우리 말을 잘할까. 가이드 박 사장이 문을 닫으며 태국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여권을 조심하라고 다시금 당부한다.

여권당 300만 원에 거래되며 특히 미국이나 일본 여행을 한 여권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란다. 태국의 밤거리를 잊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며 달린 지 얼마간. 돈 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10시 30분에 출발했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넘어 있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들의 여행은 끝났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지난 여행을 생각하니 아쉽고 한편으로 생경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월은 가고 그 뒤에 남는 것은 흔적뿐인 것을. 떠난 기차를 향해 언제까지 손을 흔들 것인가. 우리도 플랫폼을 떠나 우리의 일상으로 귀향해야만 한다. 귀항의 뱃고동을 울리며 돌아온 항구를 향해 기쁨으로 손짓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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