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맛이 우러나오는 라오서차관

등록 2004.09.18 08:42수정 2004.09.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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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중국일 것이다. 음식점에 가면 차부터 먼저 나오고, 직장에서도, 버스나 택시 안에서도 늘 그들 손에는 차병이 있음을 본다. 건조한 기후, 석회 성분이 있는 물, 그리고 기름진 음식으로 인해 그들은 차를 마셔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 버스 운전 기사의 차병

버스 운전 기사의 차병 ⓒ 정호갑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차를 문화 상품으로 승화시킨 곳이 있다. 라오서차관(老舍茶館)이 바로 그 곳이다. 인민예술가로 중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근대 문학의 대가인 라오서(老舍) 그리고 그의 작품인 <차관(茶館)>을 따와 '라오서차관'이라 이름하고, 1998년 북경 한 가운데인 치엔먼(前門)에 문을 열었다.

찻집 입구에서부터 중국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먼저 홍등으로 문 입구를 꾸며 놓았고, 안으로 들어서면 양 옆으로 이곳을 방문한 각 나라의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가다보면, 1980년대 9시 뉴스에서 자주 봤던 낯익은 얼굴과 마주하지만 눈길을 주지 않고 그냥 계단으로 올라선다.

a 라오서차관 2층에 있는 라오서 흉상

라오서차관 2층에 있는 라오서 흉상 ⓒ 정호갑

2층으로 올라서면 정면에 라오서 흉상이 있다. 그 곳을 중심으로 한 곳은 민속극을 공연하고, 다른 한 곳은 음악을 공연한다. 두 곳 다 차를 마실 수 있는데 실내는 아담하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다.

왼쪽에 있는 찻집에서는 차를 마시면서 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음악은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시간이 조금 흐르니 그 가락이 나의 몸으로 스며들었는지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국적인 소리에 취하고 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의 찻값은 만만치 않다. 우롱차를 시키니 자그만 차통에 담긴(30g정도) 찻값이 150위안이고, 한 명당 물 값이 10위안이란다. 물론 마시다 남은 차는 가져가도 된다지만, 10위안이면 큰 수박 한 덩이를 살 수 있는데, 거기에 비한다면 찻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하지만 이렇게 잘 꾸며진 곳에서 중국 전통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을 위로로 삼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

a 차를 마시면서 중국 전통 음악을 감상하다

차를 마시면서 중국 전통 음악을 감상하다 ⓒ 정호갑

다른 한쪽에는 저녁이 되면 정기 공연을 한다. 매일 공연을 하는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공연 좌석은 120위안에서 40위안까지 하는데, 한 자리에 6명이 함께 하며, 120위안하는 좌석이 무대 앞줄이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값은 내려간다. 연극을 보는 동안 먹을 수 있는 차와 떡과 화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다과가 나온다. 그런데 그것도 좌석의 등급에 따라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도 이제 자본주의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 실감이 난다.


a 라오서차관에서의 음악 공연

라오서차관에서의 음악 공연 ⓒ 정호갑

무대의 양쪽 기둥에는 "扶植民族藝術花 振興古國茶文化(부식민족예술화 진흥고국다문화)"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민족 예술 꽃이 자랄 수 있도록 북돋워주고, 중국의 차 문화를 널리 떨치게 하는 것이 이 찻집을 세운 이유인 것 같다. 중국을 찾은 외국인이라면 중국 문화를 맛보기 위해 다 한 번씩 들러보는 곳으로 이제 자리 잡았으니 그 목표를 이룬 셈이다.

공연은 매일 저녁 7시 50분에서 9시 1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다. 노래와 악기 연주, 경극, 변검, 춤, 마술, 만담 등으로 이루어진다. 공연이 조금 길면 말을 알아듣지 못해 지루할 법 한데 이를 세심하게 배려하여 표정과 몸짓으로도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아주 기막히게 시간과 내용을 배분하여 놓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관객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애쓴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술은 무대에서 내려와 이루어지기도 하며, 손님들 가운데 관심이 있다면 무대와 올라와 함께 즐길 수도 있으니 우리 대동 놀이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1시간 30여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

a 라오서차관에서의 경극 공연

라오서차관에서의 경극 공연 ⓒ 정호갑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영화 <패왕별희>로 잘 알려진 경극과 자기 아들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변검을 아주 인상 깊게 보았다. 경극은 진한 화장으로 인물의 표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다. 인물의 심리를 읽기 위해서는 눈동자의 흐름을 주의 깊게 따라다녀야 하는데 그것이 경극을 보는 재미인 것 같다.

빠른 노래의 흐름 속에서 순간순간 얼굴의 모습이 바뀌는 변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하니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앞을 가로 막는다. 변검의 기술이 바로 중국이 자랑하는 상도가 아닐까? 중국 시장에 가보면 가격을 매기는 것이 순간순간 바뀌고, 바가지를 씌워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찻집 한 쪽에는 무대에서 사용한 도구들 - 탈, 인형, 옷, 악기 등을 판매하는 곳이 있는데 다른 곳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기술이 정교하여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비싼듯하지만 기념품으로도 하나 사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공연을 보고 1층으로 내려오니 차와 다기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그 곳에 들러보니 차와 다기의 품질이 보통 수준 이상이다. 하지만 값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 괜히 다른 곳에서 바가지 쓰는 것보다 여기서 구입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기에는 ‘老舍茶館(노사다관)’이라 새겨 놓았기에 기념도 될 만하고.

찻집에 들어설 때 나눠 준 프로그램을 가방에 넣는데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a 라오서차관을 찾는 관광객들

라오서차관을 찾는 관광객들 ⓒ 정호갑

來北京旅遊 不到長城非好漢. 到了老舍茶館 活力長生 益壽延年.(래북경여유 불도장성비호한 도료노사다관 활력장생 익수연년)

북경을 여행 하면서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남자라 할 수 없다. 라오서차관에 가면 활력 넘치는 삶으로 장수할 수 있다.


중국, 그 큰 땅덩이에다 오랜 역사까지 가지고 있어 관광 자원이 엄청난데, 이제 그들의 삶마저 문화 상품이 되어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부럽고 얄밉기까지 하다.

북경도 이제 도시화로 옛날의 자취가 많이 사라졌다. 진정 북경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라오서차관을 찾아보는 것도 뜻있는 관광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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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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