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활짝 열린 교무실이 좋았죠"

[인터뷰] 원경고 최병선 교생 선생님

등록 2004.09.20 14:40수정 2004.09.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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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문득 옷 속을 파고들어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열 무렵이면 심한 일교차 때문에 학교와 미타산에는 안개가 자욱합니다. 신기하게도 원경고등학교에는 미타산을 타고 내려온 샘물이 학교 운동장 귀퉁이에서 '콸콸' 솟아나고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그 물을 받아서 조그마한 물놀이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학교 샘물을 한모금 마시면 차가운 느낌이 전해 오는 게 가울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논두렁의 두렁콩잎들이 두런두런 잡담하듯 무성하게 피어나고, 학교 주변 황정리 들판에는 메뚜기들이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은 플라타너스를 타고 올라간 수세미는 노란 꽃을 피우며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아이들은 추석을 기다리며 웅성대는 마음들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a 최병선 교생 선생님

최병선 교생 선생님 ⓒ 정일관

이렇게 여름 가고 가을 오는 길목에서 원경고등학교의 소중한 인연 한 사람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 사람은 지난 6월 3일부터 9월 18일까지 105일간 원경고등학교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하고 간 최병선이라는 청년입니다. 학교에서는 최군을 교생이라고 소개했는데 최 교생은 지난 5월 말에 진해의 해군부대에서 제대하고 곧바로 원경고에 와서 봉사했습니다.

최 교생은 해군으로 복무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편지를 보내 대안학교와 원경고등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명했고, 군 복무 마지막 휴가를 이용해 간디학교와 영산성지고, 실상사 작은학교 그리고 원경고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물색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제대하면서 원경고등학교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최 교생은 청주대학교 수학교육학과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 올해 5월 제대한 23살의 청년입니다. 원경고 학생들과도 연배가 맞아 쉽게 어울렸고, 선생님들의 업무 보조에 학교 청소, 방과 후 기초 학력 지도와 고민 학생 상담까지, 묵묵한 가운데 성실하게 우리를 도와주었습니다.

애초에는 내년 복학 전까지 학교에 봉사할 계획이었는데 중국에 있는 여자 친구의 초청으로 중국을 여행하게 되어 갑자기 학교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죠. 다음은 최병선 교생과 나눈 인터뷰 내용입니다.

- 학교를 떠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6월 3일 학교에 왔고, 그 다음날 바로 학교 논에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정연하게 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모내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6월 8일부터 4일간 향토 순례를 간 것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그 때 2학년 지선이를 부축해 주었는데, 하도 뒤에 처지기에 차를 타고 가자고 했죠. 그랬더니 지선이가 다른 사람 다 걷는데 미안해서 안 된다고 죽어도 걸어가겠다고 하더군요. 정말 기특했고, 도리어 저에게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a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 정일관

-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생활하면서 안타까웠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숙사 4층에서 1학년 학생들과 살다 보니, 후배들이 선후배 관계 때문에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기초 학력 지도를 아이들이 잘 따라 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끝을 맺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10월에 있을 대동제에 참가 못 한 것, 3학년 졸업을 보지 못한 것 등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아이들과 상담을 많이 했는지.
"3학년 학생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편하게 찾아와 얘기를 많이 나누었고 많이 친해졌습니다. 3학년들하고는 주로 진로 문제에 대한 상담을 했습니다. 기숙사 4층에 살다 보니 1학년 학생들도 자주 제 방에 찾아 왔습니다. 1학년들은 주로 이성 문제, 가정과 가족 관계, 취미 적성 문제들을 상담했고, 군대 얘기를 참 좋아해서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 학교의 장·단점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장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첫째 아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교무실이 좋았죠. 그러므로써 교사와 학생들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 곁에 스스럼없이 가서 하소연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주무시고 하는 것, 체험학습이 많아 자기 계발 시간이 많은 것, 학생들의 계발 활동을 위해 학교가 여러 모로 배려하고 인정하는 모습, 마음 일기를 기재하여 아이들의 마음과 만날 수 있는 것 등이 큰 장점입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면 다소 경직된 선후배 문화와 선생님들의 행정 업무가 너무 많아 교과에 할애하는 시간이 부족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a 제일 존경한다는 이미경 수학 선생님과 함께

제일 존경한다는 이미경 수학 선생님과 함께 ⓒ 정일관

- 원경고에 와서 특별히 배운 것이 있다면.
"크게 세 가지를 얻어 갑니다. 먼저, 교과에 대한 깊은 연구와 자기 아이템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깨치고 갑니다. 어떤 선생님은 수업을 들어갈 때는 반드시 3가지의 수업 방식을 준비해서 학생들의 분위기나 상태를 봐가면서 적용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두 번째는 교육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며 학생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중에 아이들에게 매우 엄한 선생님이 계신데, 아이들에게 어느 선생님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꼭 그 엄한 선생님이라고 대답해서 제가 그 때 깨친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교과 이외에 내 특기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원경고 선생님들은 다 전공 이외에 특성화교과목을 지도하고 있는데, 저도 제가 잘 하는 풍물이나 탈춤을 계속 익혀서 학생들에게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아이들 머리 모양이나 복장 등의 모습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았는지.
"제가 말년 휴가 때, 원경고뿐 아니라 다른 대안학교를 많이 방문했기 때문에 원경고 오기 전에 충격을 많이 받았죠.(웃음) 간디학교에 가서 놀랐고, 영산성지고에서 또 놀라면서 실상사 작은 학교를 거쳐왔기 때문에 원경고에서는 많이 적응된 상태에서 오게 되었죠."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제가 대안학교에 와서 감명을 많이 받고 가기 때문에 앞으로 대안학교에 대한 연구와 공부도 계속하고, 졸업 논문도 대안학교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가면 변화하는 중국을 더 배워 견문을 넓히겠습니다. 책도 많이 읽으며, 고민도 많이 할 예정입니다. 또 반드시 상담 공부를 하겠습니다. 복학을 하고 내후년, 지금 1학년이 3학년 될 때, 지리산 종주 등반에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다시 원경고를 찾을지 모르지만, 간혹 집을 다녀올 때, 멀리서 기숙사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었는데, 다음에도 꼭 설레는 마음으로 원경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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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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