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집에 들어가 구경할 수 없고 돌담너머로 보거나 문틈으로 볼 수 밖에...김정봉
마을 앞 내를 건너면 외암마을의 입구다. 예전엔 물이 불면 건너기 만만찮았을 정도의 큰 내였지만 그렇다고 홍수가 날 정도의 내는 아니다. 웬만큼 오래된 마을이라면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서 있어 여기부터 마을이 시작된다고 알리지만 이 마을은 다리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서쪽 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있다. 서쪽의 허전함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심어 놓은 마을 숲의 일종인데, 마을 풍수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을 숲치고는 그 규모가 작은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 집 곳곳에 심어진 나무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효도마을이라 새긴 돌비석이 오래된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서 있고 왼쪽에 그다지 오래돼 보이지 않는 나무 장승과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 밑의 나무의자는 좋은 쉼터가 된다.
예전에는 양반과 평민이 구분되어 살았겠지만 지금은 10여 채의 반가와 초가가 잘 어우러져 조화로운 마을 모습을 하고 있다. 기와집은 참판댁, 참판 작은댁, 종손댁, 송화댁, 참봉댁, 교수댁, 감찰댁, 건재고택 등 100~200년 정도 된 집들이다. 모두 문이 굳게 닫혔거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돌담 너머로 일부분만 볼 수 있다.
택호는 주로 관직에서 따온 것이다. 송화 군수를 지냈다고 하여 송화댁, 참봉이나 참판 벼슬을 하였다고 하여 참판댁ㆍ참봉댁, 성균관 교수를 하였다고 하여 교수댁, 감찰직을 맡았다고 하여 감찰댁이라 부른다.
이 중에 대표적으로 볼 만한 가옥은 참판댁이다. 참판댁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목조 기와집 두 채를 말하는데 큰집과 작은 집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별개로 배치되어 있다. 큰집은 돌담을 둘러서 집 안의 공간을 구분하고 대문 앞에 돌담을 쌓아 아늑함을 주는 등 공간 분할을 하여 운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