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리에서 옛 마을의 정취를 느끼다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을 다녀와서

등록 2004.09.21 00:29수정 2004.09.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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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 전부터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외암리. 이 마을 입구에 서면 사람들이 왜 이곳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뒤에는 설화산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작은 내(川)가 마을 동쪽을 휘돌아 광덕산 강당골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수하여 마을 앞을 흐르니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다.

외암마을 전경
외암마을 전경김정봉
설화산을 중심으로 그 북쪽에 맹사성의 옛집인 맹씨행단이 자리하고 있고, 남서쪽에 외암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 뒤가 높고 마을 입구인 서쪽이 낮아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남서방향으로 서 있다.


외암마을 정경,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외암마을 정경,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김정봉
이 마을이 형성된 최초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5세기 경에 강씨와 목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조선 명종(1545~1567)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연 일가가 낙향하여 터를 잡은 후부터 예안 이씨의 세거(世居)가 시작되었다.

예안 이씨가 이 곳에 살기 시작한 것이 이연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이사종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이사종이 딸만 셋 있는 진한평의 맏사위가 되면서 외암마을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송화댁이 이사종의 9세손, 참판댁이 11세손, 참봉댁이 12세손, 교수댁이 13세손이라고 소개한 점을 감안하면 이사종은 마을을 이룬 중심에 있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 후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고택들이 건립되면서 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초가와 돌담
초가와 돌담김정봉
원래 이 마을은 역말(시흥역)의 말을 먹이던 곳이라 하여 오양골이라고 하였다. 이 마을의 유래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되지만 마을 안내문에 따르면 이연의 6대손인 이간이 설화산의 정기를 받아 외암(巍巖)이라 호를 지은 뒤부터 이 마을을 외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간이 쓴 <외암기>에 이미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간의 호는 마을 이름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마을의 유래는 오양골에서 찾는 게 더 신빙성이 있는 듯하다. 현재 외암마을의 한자 표기는 표기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외암(外岩)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외암리 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순천 낙안읍성, 경주 양동마을 등과 함께 비교적 보전이 잘 된 마을 중에 하나다. 특히 이 마을은 관광용으로 변질되지 않아 옛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60여 호의 주민들이 실제로 살고 있어 마을을 산책할 때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고샅길에서 마을 주민이라도 만나면 왠지 어색한 웃음을 짓게 된다.

집집마다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집에 들어가 구경할 수 없고 돌담너머로 보거나 문틈으로 볼 수 밖에...
집집마다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어 집에 들어가 구경할 수 없고 돌담너머로 보거나 문틈으로 볼 수 밖에...김정봉
마을 앞 내를 건너면 외암마을의 입구다. 예전엔 물이 불면 건너기 만만찮았을 정도의 큰 내였지만 그렇다고 홍수가 날 정도의 내는 아니다. 웬만큼 오래된 마을이라면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 입구에 버티고 서 있어 여기부터 마을이 시작된다고 알리지만 이 마을은 다리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서쪽 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있다. 서쪽의 허전함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심어 놓은 마을 숲의 일종인데, 마을 풍수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을 숲치고는 그 규모가 작은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 집 곳곳에 심어진 나무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효도마을이라 새긴 돌비석이 오래된 마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서 있고 왼쪽에 그다지 오래돼 보이지 않는 나무 장승과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 밑의 나무의자는 좋은 쉼터가 된다.

예전에는 양반과 평민이 구분되어 살았겠지만 지금은 10여 채의 반가와 초가가 잘 어우러져 조화로운 마을 모습을 하고 있다. 기와집은 참판댁, 참판 작은댁, 종손댁, 송화댁, 참봉댁, 교수댁, 감찰댁, 건재고택 등 100~200년 정도 된 집들이다. 모두 문이 굳게 닫혔거나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돌담 너머로 일부분만 볼 수 있다.

택호는 주로 관직에서 따온 것이다. 송화 군수를 지냈다고 하여 송화댁, 참봉이나 참판 벼슬을 하였다고 하여 참판댁ㆍ참봉댁, 성균관 교수를 하였다고 하여 교수댁, 감찰직을 맡았다고 하여 감찰댁이라 부른다.

이 중에 대표적으로 볼 만한 가옥은 참판댁이다. 참판댁은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목조 기와집 두 채를 말하는데 큰집과 작은 집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별개로 배치되어 있다. 큰집은 돌담을 둘러서 집 안의 공간을 구분하고 대문 앞에 돌담을 쌓아 아늑함을 주는 등 공간 분할을 하여 운치 있다.

이 참판댁,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었다 한다
이 참판댁,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었다 한다김정봉
고종 때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지은 집이다. 이 참판댁에 대대로 내려오는 연엽주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종에게 봄철마다 진상하였다 한다.

이 마을의 아름다움은 뭐니 해도 돌담에 있다. 반가와 초가 할 것 없이 막돌을 규칙 없이 쌓아 올린 돌담은 마을 전체를 정갈하게 보이게 한다. 돌담 길이가 무려 5km를 넘는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돌담길, 낙안읍성 돌담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돌담이 아닌가 싶다
돌담길, 낙안읍성 돌담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돌담이 아닌가 싶다김정봉
돌담 고샅길을 걸으면 흡사 조선시대의 마을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돌담을 타고 올라가는 호박 덩굴과 거기에 매달려 있는 늙은 호박, 장독대 주변에 심어진 맨드라미, 장독대 주변을 맴도는 토종닭, 행운을 가져다 줄 듯한 조롱박 터널까지 잘 꾸며진 고샅길은 이 마을을 찾는 이의 발길을 마을 구석구석에까지 머물게 한다. 이 중 송화댁에서 종손댁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이 제일 예쁘다.

작은 참판댁의 장독대
작은 참판댁의 장독대김정봉
이 마을에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집 안에 꾸며 놓은 정원이다. 자연미를 중요시하는 한국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설화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인공으로 개울을 만들어 끌어들인 것인데, 이는 설화산이 불기를 내뿜는 형상이라 이를 잠재우려고 한 흔적이라 한다.

이런 정원은 건재고택, 송화댁, 교수댁, 감찰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 중에 감찰댁과 송화댁의 돌담이 그나마 낮아 정원 일부라도 볼 수 있고 나머지는 눈높이에 맞추어 담장을 쳐 놓아 잘 보이지 않는다. 들어가 보지 못하니 집 앞의 안내문도 그저 사문(死文)에 불과하다. 내 눈에는 한낱 집 자랑을 늘어놓은 글에 불과하였다.

송화댁의 정원은 넓은 사랑마당에 정원을 꾸몄는데 사람의 손길을 많이 주지 않아 자연미가 절로 난다. 마을 상부에서 흘러 온 물은 굽이쳐 흐르도록 하였고, 물길 주변에 바위를 놓아 계곡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하였다. 정원 주변의 수목도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친근감이 더하다.

송화댁 정원,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다 담고 있다
송화댁 정원,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다 담고 있다김정봉
감찰댁 안채의 동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으며, 그 앞으로 정원과 정자가 배치되어 있고 정자 앞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최순우 선생이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이 선생 것이었으면 하는 공상을 한다고 한다더니 감찰댁의 연못과 정자를 돌담 너머로 보고 있자니 저 정원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허망한 생각이 든다.

감찰댁 정원, 감찰댁의 담은 그래도 낮아 안의 일부라도 볼 수 있다. 낮은 돌담 때문인지 앙증맞은 정자가 더 예쁘게 보인다
감찰댁 정원, 감찰댁의 담은 그래도 낮아 안의 일부라도 볼 수 있다. 낮은 돌담 때문인지 앙증맞은 정자가 더 예쁘게 보인다김정봉
마을을 다 돌고 나면 자연스럽게 느티나무 밑 쉼터에 이르게 된다. 마을 주민 몇몇이 호박이며 옥수수 등을 팔고 있다. 솔직히 팔러 나왔다고 하긴 했어도 파는 것보다는 여기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데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할머니 뭘 또 갖고 나오셔요?"

한 할머니가 먹음직스런 돔부한 움큼하고 윤기가 도는 늙은 호박을 무겁지 않을 만큼 갖고 나오고 있었다.

"그 놈 돔보 참 맛나게도 생겼네."
"할머니 밥에다 그냥 놔 드시지 뭐하러 갖고 나와요?"
"며늘아가 이렇게 묶어 놨어."
"그거 얼마에 팔 건디?"
"돈 천원에 팔까?"
"할머니, 그람 나 줘."

다른 할머니가 천 원짜리를 얼른 건네며 침을 퉤퉤하며 건넨다. 물러주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돔부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즐거워한다. 팔러 나온 사람끼리 사고파는 훈훈한 장면이다.

"요새 농사지으면 뭘햐? 뭐 건질 게 있어야지. 자식놈 공부시키면 또 뭘 하고…."
"개똥이네는 벌초했다고 하던감?"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한참 하는데 동문서답 하듯 마을 얘기를 한참 한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면서도 말이 잘 통한다. 세상에 도가 튼 모양이다. 한쪽 얘기는 다 소화하고 그 와중에 동네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말이 전혀 끊김이 없다. 느티나무에 1시간 이상을 앉아서 얘기를 듣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팔기 보다는 담소하는데 더 열중이다
팔기 보다는 담소하는데 더 열중이다김정봉
외암 민속마을 안내 책자에는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은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다'라는 큰 글씨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외암리 민속마을은 다른 박제된 관광용 민속마을과 달리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민속마을이라 하여 붙인 문구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느티나무 밑에서 오간 진정한 삶의 얘기들을 듣고 있으니 외암리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이 더욱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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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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