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체결된 MOA와 MOU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용산기지이전협상 결과보고서 내용.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지난 21일 공개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 평가 결과보고'(이하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네티즌들은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협상을 다시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 1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만든 보고서는 용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한 문제점을 충분히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규명하여 관련자를 문책하는 한편 외통부, 국방부 및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련 부문의 인사개편을 적극 검토함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인사개편은커녕 지적되었던 문제점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난 7월22~23일 제10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에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현재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 포괄협정(UA)와 이행합의서(IA)는 이달 말 비준을 받기 위해 국회에 정식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는 국회 동의를 받기 전까지는 UA와 IA의 전문을 절대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지적했던 문제점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한나라당은 극소수 의원을 제외하고 찬성할 것이 확실하다. 열린우리당의 30~50명 정도의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당 지도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냥 통과시킬 계획이다. 지난 7월22일 여야의원 63명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과 관련한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으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를 반대해 사실상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결국 UA와 IA의 국회통과에 반대할 세력은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의 일부 의원 등 70명도 못되는 상황이다.
조약국-북미국 싸움의 원인은 용산기지 협상
왜 지난해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 대해 조사에 나섰을까? 그리고 왜 이 보고서는 그냥 사장되고 말았을까?
지난해 3월부터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이 전세계적인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 차원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과, 용산기지 이전도 미군 재배치의 하나라는 것은 명확했다. 즉 미국의 필요에 의한 기지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협상팀은 이를 무시하고 지난 1990년 체결된 용산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합의각서(MOU)와 양해각서(MOA)를 그대로 인정하고 "한국이 기지 이전비용 전액을 부담한다"는 원칙하에 협상을 시작했다.
90년 각서들은 이상훈 당시 한국 국방부 장관과 메네트리 당시 주한 미 사령관이 서명했다. 이 각서들은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된 모든 비용, 심지어 미군 및 가족, 고용인들의 이사비용, 기지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간업자들의 영업손실, 번역료 등까지 모두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공사기준도 모두 미국 기준을 적용한다.
더구나 90년 각서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외국과의 조약은 반드시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한 헌법 제60조 1항을 무시하고 국회 동의도 받지않았다. 따라서 체결 당시부터 위헌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그러자 미국은 지난 1991년 5월 당시 반기문 미주국장(현 외교통상부 장관)을 위협해 90년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내용의 '소파합동위원회 각서'를 만들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 안에서도 일부 인사들, 특히 외교통상부 조약국이 90년 각서를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협상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그리고 이 협상의 감독책임이 있는 NSC는 조약국의 문제제기를 철저히 무시했다.
조약국을 한편으로 하고,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NSC를 한 편으로 한 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논란이 분분하자 지난해 10월부터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이 조사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