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많을까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34)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등록 2004.09.25 12:04수정 2004.09.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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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


며칠째 가을볕이 좋다. 이런 볕이라면 곡식들이 잘 여물겠다. 오전부터 쓰던 글을 밀치고, 텃밭에 나가 남은 햇살을 즐기면서 고추를 따고자 막 일어서는데 옆집 노씨가 왔다. 그분은 올 때마다 내 일에 방해되지 않느냐고 늘 문앞에서 겸연쩍어 했다.

마침 텃밭에 고추를 따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그럼 잘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일은 내일하고 읍네 장터에 가서 바람도 쐴 겸 막국수나 한 그릇 먹고 오자고 했다.

a 안흥면 상안리에 사는 농사꾼 박인규 최정희씨 부부가 잣나무 아래서 수확의 기쁨에 웃고 있다.

안흥면 상안리에 사는 농사꾼 박인규 최정희씨 부부가 잣나무 아래서 수확의 기쁨에 웃고 있다. ⓒ 박도

어제 내가 장터에서 노씨에게 국밥을 신세졌기에 나도 그 빚을 갚을 기회라고 좋다고 하고는 신발을 고쳐 신고 따라나섰다. 그런데 노씨 집 앞 트럭에서 낯익은 농사꾼 박씨 내외가 차에서 내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앞좌석에 타라고 했다.

노씨와 박씨 말을 정리해 보면, 박씨 내외가 우리 동네로 잣을 따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 내외에게 지난 여름에 진 빚을 갚고자 막국수라도 대접하겠다고 노씨에게 부탁한 모양이었다.

지난 여름, 장마가 잠시 멈춘 어느 날이었다. 노씨가 장마로 앞 내에 고기가 많을 거라면서 천렵을 가자고 했다.


마침 투망질을 잘하는 상안리에 사는 박씨도 같이 가기로 했다면서 기왕이면 냇가에서 자리를 펴놓고 즉석에서 끓여먹자고 했다. 그래서 부인네까지 나서서 냄비랑 갖은 양념을 준비하여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삼형제바위 냇가로 갔다.

박씨는 몇 차례 능숙한 솜씨로 그물을 던졌으나 물고기가 한 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장소를 강림면 월현리 냇가로 가서 투망질을 했으나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다른 곳에도 투망질을 하면서 두어 시간을 헤매었으나 결과는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하였다. 나는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박씨에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 날이 있다”고 여러 차례 얼버무리면서 고개를 들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읍네 농협 슈퍼에 들러 돼지고기 삼겹살을 사다가 내 집 뜰에서 구워먹으면서 여름 날 오후를 즐기다가 간 적이 있었다.

박씨는 내 아내와 노씨 부인도 함께 대접하겠다고 하였지만 아내는 서울에 갔고 노씨 부인은 찐빵 가게에 품일 갔기에, 두 남자만 따라 갔다. 읍네 강릉 막국수 집에서 네 사람이 맛있게 먹은 후 트럭 짐칸에 타고 돌아왔다.

때때로 졸업한지 오래된 제자가 산동네 내 집으로 찾아오거나 시내 음식집으로 초대하여 만나고 보면, 그들은 나를 찾게 된 언턱거리를 이야기한다.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데 선생님이 꽃을 사들고 문병 오셨다든지, 집안이 어려웠는데 마침 학비 감면 혜택을 주었다든지…,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는데 그들은 아주 자세하게 그때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물심 양면으로 빚진 사람을 찾게 되나 보다.

박은식 선생 유족이 백범 선생에게 진 빚

지난 1월, 여러 네티즌의 성금으로 권중희 선생과 함께 백범 선생 배후 실마리를 찾고자 미국 워싱턴에 갔을 때 많은 동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 자원봉사자 중 박유종(64) 선생은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 손자였다. 선생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셔서 문서 검색에 한국전쟁 관련 사진 찾는 일에 열성적으로 도와주셨다.

a NARA 5층 사진 자료실에서 'Korea War' 앨범을 펼치는 박유종 선생

NARA 5층 사진 자료실에서 'Korea War' 앨범을 펼치는 박유종 선생 ⓒ 박도

필자가 NARA의 사진을 복사해 와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여러 독자에게 생생한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도,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엮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박유종 선생의 도움 덕분이었다.

매번 필자가 미안해하면 그런 말씀 말라고 내 말문을 닫게 하고는, 당신은 ‘선대의 빚을 갚고자 그런다’고 하셨다.

중국 상해에서 박은식 선생이 1925년에 돌아가신 후, 남은 가족들이 그곳에서 몹시 어렵게 살았는데 이따금 백범 선생이 동지 집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백범 선생은 동지 집을 찾으면 말없이 쌀 뒤주부터 열어보시고 가신 뒤면 곧 쌀자루가 배달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면서, 백범 선생 생전에 그때 진 빚을 못 갚았으니 이제라도 그때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니 개의치 말라고 하셨다.

사람이 살다보면 다른 이에게 신세지는 일이 많다. 특히 내가 배가 고플 때 얻어먹는 한 그릇 밥이나 한 푼의 돈은 천금보다 더 소중하게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내가 평생 두고 못 잊어하는 분(외삼촌, 동대문시장 어머니, 가회동 어머니, 누하동 오거리 한약국 할머니…)도 모두 배가 고플 때 밥을 주시거나 학비를 보태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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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당 수수빗자루와 외삼촌

깊은 가을 밤,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나는 많은 분에게 신세만 졌다. 그런 탓인지 보고 싶고 그리운 분이 많다. 남은 날 그분들에게 진 빚을 다 갚고 갈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다 갚고 가겠는가. 이미 고인이 된 분도 많은데….

대신 다른 이에게라도 베풀면 간접으로 은혜를 갚는 게 되지 않을까? 그보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이에게 빚지지 않도록 자신부터 잘 관리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세상사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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