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찾습니다"

떠나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활동가들을 보며

등록 2004.10.04 10:26수정 2004.10.0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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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주의보!


갑자기 찾아든 한파주의보로 움츠렸던 어깨를 오후부터는 펼 수 있겠다는 뉴스를 들으며 사무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찾아왔던 가을 추위만큼이나 움츠리게 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수원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이주노동자 활동가가 지난 9월 말 사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체 센터 상담수의 80%를 차지할 만큼 비중 있었는데, 그 공백을 메울 때까지 남아 있는 사람 혼자 일해야 한다는 소식이 결코 남의 일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주말마다 봉사하는 단체도 그 동안 사무국장을 맡던 전도사가 10월부터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겨 일하기 때문에, 상담과 센터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일할 만한 사람이 없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 이주노동자지원센터에서 주로 하고 있는 노동, 인권 관련 상담은 오랫동안 경험을 해야만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 있는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a 상담접수 모습

상담접수 모습 ⓒ 고기복

대부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형편이 그렇듯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활동가들의 급여수준이나 근무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반면 그들에게 지워지는 업무와 기대는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들 정도로 과다한 것이 현실입니다.


가령 이번에 그만둔 전도사의 경우 과학기술대(카이스트)라는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힘든 가운데서도 2년여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노고를 말로 다 치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가정을 꾸린 후 이주노동자 활동가 생활을 접는 것을 만류할 수가 없었던 것은 그간 고생이 어떠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재정은 뻔하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이주노동자들이 활동가들에 거는 기대는 지나칠 정도입니다. 그러한 사례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어느 일요일 제가 사무실에 있을 때였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이주노동자 두 명이 임금을 체불 당했다면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상담을 접수하던 전도사가 난감해 합니다. 임금을 체불 당했다는데, 우리말이나 영어 모두 서툴러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가, 일했다는 회사 이름도, 주소도, 업체 대표 이름이나 전화번호도 모르고, 다만 급여 내역이 적혀 있는 월급봉투 몇 개만 들고 와서는 해결해 달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 정보에 그렇게 무지하면서,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고 어떻게 믿고 있는지 의아하기도 했지만, 성의를 가지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전도사의 인내도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말한 정보로는 경찰이라 해도 업체를 찾기 힘들고, 그 상황에서는 임금 체불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예는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활동가들이 누차 겪는 상담 유형입니다. 약간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자신이 일하던 회사 정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도와달라고 기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졸지에 탐정 노릇해야 되는 경우가 늘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능해결사로 생각하고 찾아온 사람들을 볼 때면, 답답하기 그지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믿고 찾아왔는데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난감해지기 시작합니다.

위에서처럼 이주노동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일하다 보면 보람도 느끼지만, 열정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일이 년이 지나면 다들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에서 장기간 일하는 중간 활동가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 남겨진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을 위한 경찰 혹은 큰형님인양 의지하던 이주노동자 활동가를 어디 가서 다시 찾겠는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 고민할 때면 추수할 곡식을 앞에 두고 일꾼이 없어 한숨쉬는 농부의 심정이라고 할까요? 넉넉히 줄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오랫동안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 할 수만 있다면 좀 뻔뻔스럽다 할지라도 '인재를 찾습니다'라고 광고라도 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a 지원단체 한글 교육 모습. 즐거워 보이죠?

지원단체 한글 교육 모습. 즐거워 보이죠?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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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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