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원경고등학교, 한글날 기념 온하루 행사 열어

등록 2004.10.06 18:32수정 2004.10.0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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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 제558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지난 10월 5일, 한글날 기념 전일제 행사를 추진하였습니다.

이번 한글날 기념행사는 작년까지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백일장 한 번으로 끝마쳤던 형식적인 행사보다는 하루를 다 잡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한글날의 뜻을 새기는 행사로 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쉽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과학적이며, 글자를 만든 원리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인 '한글'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며,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어 쓰이고 있는 이 사실이 참으로 세계의 큰 경사임을 알리기 위한 이번 행사는 "한글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국어과에서 준비하였지만 원경고등학교의 전 교직원들이 마음을 모아 이끌었습니다.

a 백일장, 한 자 한 자에 혼신의 힘을!

백일장, 한 자 한 자에 혼신의 힘을! ⓒ 정일관

오전에는 교실에서 각 담임 선생님들의 주관 아래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 대회와 '3행시 짓기', '한글 이름 짓기' 그리고 '백일장'을 펼쳤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학교 이름을 자신들의 개성을 살려, 색을 칠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가 끝난 후에는 그것들을 모아 복도에다 쭉 게시하여, 지나다니는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등인 한빛상은 사람의 형상을 글꼴로 만들어 낸 2학년 차바다 학생이 받았습니다.

'백일장'도 가졌습니다. 시제를 '가을', '아버지', ‘코스모스', '허수아비', '점심시간' 등 다섯 개를 주어서 운문과 산문으로 글쓰기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글 중에서 그나마 그 내용이 간절한 것은 '아버지'라는 시제였습니다. 다른 시제는 대개 관념적으로 흐르거나 말장난 수준을 넘어서지 못 하기 일쑤였습니다만, '아버지'는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의 삶 속에 뿌리내려져 할 말이 많은 소재이기 때문이었겠지요. 백일장의 한빛상은 '뒤에서 우는 사람,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산문을 적은 1학년 김성희 학생이 차지하였습니다.

a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 학생 작품 전시

아름다운 글꼴 만들기 학생 작품 전시 ⓒ 정일관

오후에는 모두 강당에 모여 한글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스크린에 노래 가사를 올려 3절까지 기념 노래를 불렀는데, 학생들은 음악 시간을 이용해서 몇 번 불러본 터였죠. 도리어 선생님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시상식 전 훈화 시간에 "한글날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라고 하며 그 동안 한글과 한글날에 대한 무심함을 자책하였습니다.

a 도전! 우리 학교 받아쓰기 왕 대회

도전! 우리 학교 받아쓰기 왕 대회 ⓒ 정일관

한글날 노래 부르기에 이어 'OX 문제 맞히기'와 '도전! 우리 학교 받아쓰기 왕' 대회를 가졌습니다. 모두 다 한글 맞춤법 규정과 표준어 규정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내었고, 받아쓰기 왕 대회는 방송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본 땄습니다.


a 문제를 내고 있는 국어 선생님들

문제를 내고 있는 국어 선생님들 ⓒ 정일관

평소에 우리가 틀리기 쉬운 단어들을 불러주고 받아 적게 하여 답을 확인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하얀 코팅판에다 답을 적고 지우며 평소에 하지 않던 국어 공부를 하느라고 진땀을 흘렸습니다.

결국 '도전! 우리 학교 받아쓰기 왕' 대회에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이 백일장에서 한빛상을 받은 1학년 김성희 학생이어서, 김성희 학생은 제 558돌 원경고등학교 한글날 기념 대회 "한글마당"의 2관왕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글자인 '한글'의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은 알았을까요? 한자어와 영어, 그리고 컴퓨터 용어라는 이모티 콘으로 병들어가는 우리 문자 한글의 운명 앞에 놓인 우리 아이들이 정말 한글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a 답을 적고 또 지우며

답을 적고 또 지우며 ⓒ 정일관

이 작은 행사 하나로 아이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기야 하겠습니까만, 또 하나 작은 씨앗을 아이들의 마음에 뿌립니다. 파란 가을 하늘과 주홍빛 감과 한 편의 시(詩)와 단정한 청년같이 생긴 한글은 서로 아름다운 어울림으로 사람사람을 맑고 깊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멋진 문자, 그리고 착하고 어진 사람이 결국 둘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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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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