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망둥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등록 2004.10.11 13:33수정 2004.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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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고장엔 해마다 가을이면 망둥이 잡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청년 시절에는 그런 축이었다. 틈만 나면 다람치(다래끼) 하나 메고 망둥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내달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태안반도 한복판에서 사는 덕에 망둥이를 잡을 수 있는 갯골은 주변에 수없이 널려 있었다.

갯둑에 서서 갯물에 발을 적시지 않고 하는 낚시로도 망둥이를 많이 잡아보았고, 허리까지 물에 담그고 하는 낚시로는 더 많은 망둥이를 잡았다. 망둥이가 목적인 낚시에 '깔때기'라고 부르는 어린 농어, '깜팽이'라고 부르는 어린 우럭, 그리고 놀래미와 장대 따위도 곧잘 걸려들었다.

낚싯배도 여러 번 타보았다. 거아도 앞 바다에서 제법 큰 우럭도 잡아보았고, 밤에 안흥 신진도에서 붕장어 낚시도 해보았고, 우리 고장이 아닌 보령 무창포까지 가서 보고치 낚시를 즐긴 적도 있다. 또 대천 앞 바다에서 전 속력으로 달리는 배 위에서 삼치를 잡아본 경험도 있다.

민물 낚시도 많이 해보았다. 가슴 속에 시름이 쌓일 때는 곧잘 낚시가방을 둘러메고 근처 저수지를 찾았다. 내 차가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다니며 그렇게 시간을 죽였다.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깊은 시름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30대 초반 시절 춘천 소양호에서 낚시를 한 일, 경기도 발안 근처 저수지에서 밤샘 낚시를 한 일, 화성 조암리 간척공사장에서 생활하던 시절 여러 소설가들과 배를 타고 바다 낚시를 한 일, 금산 적벽강에서 여러 번 쏘가리 낚시를 해본 경험 등은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다.


a 태안군 남면 신온리 방파제에서 한가롭게 망둥이 낚시를 즐기는 한 강태공(자료사진)

태안군 남면 신온리 방파제에서 한가롭게 망둥이 낚시를 즐기는 한 강태공(자료사진) ⓒ 신문웅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겐 망둥이 낚시가 제일 재미있었다. 망둥이는 체구에 비해 입이 커서 미끼 달린 낚시를 쉽게 물었고, 미끼를 물고 흔드는 힘이 강했다. 그렇게 입질 좋은 망둥이를 반사적으로 물 밖으로 낚아 올리는 손맛은 어떤 물고기보다도 확실했다.

망둥이는 순간적으로 물 밖으로 끌려나오면서도 내 손에 이상한 무게를 주었고, 낚시에 달린 채로 파닥거리는 놈들이 많았고, 물 밖 다래끼 안에서도 이내 죽지 않았다.


아무튼 망둥이 낚시는 정말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낚는 동작을 자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수 좋은 날은 낚시를 넣기가 바쁘게 망둥이가 물려나왔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고, 때로는 팔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망둥이 낚시와도 결별을 하고 산 세월이 무척 오래 되었지 싶다. 마지막으로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가로림만 바다에서 배를 타고 망둥이 낚시를 했던 때도 10년이 넘었지 싶다.

(2)

망둥이 낚시를 직접 하지는 않더라도 해마다 가을과 겨울 망둥이 맛을 보며 살았다. 동생이 낚시광인 덕이었다. 동생은 망둥이 낚시에 정말 환장 들린 사람이었다. 노는 날은 성당도 필요 없고 무조건 낚시 가는 날이었다. 물때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때로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내달리기도 했다.

동생은 태안반도 곳곳 갯골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갯고랑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어서 위험한 곳은 피하면서 망둥이가 잘 잡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손속이 유난히 좋은 동생은 망둥이를 못 잡은 날은 사시랭이라고 부르는 어린 꽃게나 바지락 따위를 다래끼 가득 담아왔다.

씨알 좋은 망둥이들을 유난히 많이 잡아온 날은 그것을 처리하는 작업도 컸다. 집 뒤 베란다에서 일일이 내장을 빼내고 소금에 절이는 일을 하면서 동생은 싱글벙글했다. 팔뚝만한 망둥이를 잡아 올릴 때의 쾌감을 한껏 자랑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시누대에 소금기가 밴 망둥이 아가미를 꿰고, 여러 마리씩 나란히 아가미를 꿴 망둥이들을 또 여러 줄 위 아래로 늘어놓고 망으로 씌운 다음 연립주택 옥상의 장대에다 매다는 것까지가 동생의 일이었다. 옥상 위의 장대 끝에 높이 매달린 망둥이들의 가지런한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푸른 가을 하늘의 햇볕 속에 망둥이들은 잘도 말라갔다.

옥상 장대에다 걸어놓은 망둥이를 관리하는 것은 제수씨 몫이었다. 치사한 밤손님을 경계하여 저녁에는 걷어들이는 일, 낮에도 비가 비칠라치면 서둘러 거두어들이는 일을 했다.

그러는 사이 가을이 거의 이울 때쯤이면 동생의 집 베란다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말린 망둥이 포대는 빵빵해져 있었다. 삭정이처럼 말라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마른 망둥이들은 아주 단단했다. 동생은 큰 포대에 가득한 마른 망둥이들을 보며 흐뭇해 했고, 형네며 안양 누님네며 남산리 처갓집이며 여러 곳에 손을 썼다.

마른 망둥이는 불에 구워서 막걸리 안주를 하면 맛이 일품이었다. 물에 불렸다가 솥에 넣고 찌면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해서 우선 집 안팎 고양이들부터 갈팡질팡했다. 물에 불려서 그냥 찌거나 양념을 입혀서 자글자글 졸이면 밥반찬으로도 최상이었다.

이렇게 해마다 가을과 겨울이면 망둥이를 잘 먹고 살았다. 주문 음식이 아닌, 집에서 차린 음식으로 잔치를 하는 집에 가면 상에 망둥이가 오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런저런 맛좋은 음식들이 많건만 망둥이를 최고 별미로 치고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3)

그런 망둥이가 지난해 가을부터 표가 나게 잡히지 않더니 올해는 무척이나 귀한 생물이 되고 말았다. 전에도 망둥이가 많이 잡히지 않아서 망둥이 흉년이네 하는 말들이 있었지만, 흉년이 있으면 풍년이 있게 마련이었다. 해마다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헌데 지난해부터 조짐이 이상하더니, 올해는 아무래도 흉년 때문이 아닌 것만 같다. 뭔가 이상한 징후 같은 것이 느껴진다. 심각한 환경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은….

지난해도 망둥이 낚시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동생은 올해는 더욱 낙심천만한 기색이다. 망둥이 낚시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올 가을에도 장명수 바다에 두 번 갔으나 모두 허탕을 치다시피했다.

안면도 신야리 바다는 먼 거리인데도 동생이 가장 자주 다니는 망둥이 낚시터다. 낚시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갯골이 있는 모양이었다. 동생은 그 비밀장소에 갈 적마다 다래끼를 가득 채우다시피해서 돌아왔다.

올해도 기대를 안고 지난 9월 중순경 물 때에 맞추어 새벽 4시에 안면도 신야리를 간 동생은 오후에 풀이 죽은 기색으로 돌아왔다.

"작년에두 거기서는 망뎅이가 잘 잽혔어요. 삼백 마리를 잡은 날두 있었구요. 그런디 올해는 영 딴판이네요. 오늘 새벽 참에 가서 겨우 서른 마리 잡었다니께요."

동생의 그 말을 들은 며칠 후 나는 천수만 제방 길을 지날 기회가 있었다. 간월호 방조제의 수문 주변은 썰렁한 상황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면 수백 미터씩 늘어선 망둥이 낚시 차량들의 행렬로 장관을 이루던 곳이었다.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수문 앞 갯고랑 양편에 길게 늘어서서 들물에다 낚시를 넣는데,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닐 정도로 망둥이가 정신없이 잡혔다. 정녕 그런 시절도 있었다.

지난 추석 전 날과 다음날 동생들과 함께 태안화력발전소 근처 이원방조제 쪽으로 갯바위 낚시를 갔다. 아이들도 따라붙어서 추석 전 날은 도합 여섯 명이 낚시를 했는데 한 나절 동안 올린 수확이 고작 깜팽이 여덟 마리였다. 추석 다음날은 네 명이 간신히 깜팽이 네 마리를 잡았다. 망둥이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9월 말일까지 휴무인 동생은 역시 '효도방학'으로 하루를 더 노는 내 아들 녀석을 데리고 30일 아침 일찍 안면도 신야리 바다로 망둥이 낚시를 갔다. 전 날 출타한 나는 전화로 동생과 아들 녀석이 신야리에 간 사실을 알고, 그들이 부디 재미를 보게 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옛날 장명수 바다로 자주 망둥이 낚시를 갔던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나처럼 아들 녀석도 낚시 재미를 쏠쏠하게 맛보게 되기를…. 그리하여 올해의 망둥이 흉년에 얹혀 있는 불길한 징후와 불안감 따위가 냉큼 사라지게 되기를….

그러나 오후에 돌아온 동생과 아들 녀석의 다래끼엔 망둥이가 고작 열 세 마리 들어 있었다.

(4)

"그 많던 망둥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원…."
동생은 한숨을 쉬었다.

동생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얼마 전에 태안군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소원면 모항리 의향리 일대 주민 수백 명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바다에다 생계를 걸어놓고 있는 어민들이었다. 그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는 태안군이 업자들에게 바다 모래 채취 허가를 함부로 남발하여 바다 속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동경찰이 진을 치고 있어서 군청으로는 진입을 못하고 정문 앞 한쪽 길을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어민들은 하나같이 고단하면서도 비장한 모습이었다. 울분과 결연함과 절규가 거기에 다 모여 있었다.

바다 속의 모래를 너무도 많이 긁어내어서 어족들의 산란장이 대규모로 파괴된 바람에 해마다 어획량이 격감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가뜩이나 어업이 사양 산업인 상황에서 바다 속 생태계마저 파괴되는 현상이 계속되면 곧 생계가 막연해질 거라는 얘기였다.

태안반도 해변의 모래 유실은 오래 전부터 심각한 상황이었다. 만리포와 학암포, 안면도 꽃지, 그 외 여러 곳의 풍성하고 아름답던 모래들이 어디론가 점점 유실되어서 자갈밭으로 변하고 있는 현상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수많은 방파제와 해변의 시멘트 구조물 탓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해변의 그런 상황에다가 바다 속의 모래를 마구잡이로 긁어내는 무분별이 맞물려서 바다 환경은 시시각각 나쁘게 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요 건축 자재인 모래가 거의 고갈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레미콘 공장마다 바다 모래가 쌓여 간다고 한다. 중국 등 외국에서 수입을 하기도 하는데 거의가 바다 모래라고 한다.

그런 사정과도 맞물려 바다 환경은 시시각각 나쁘게 변하고 있다. 어장 황폐화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금은 새우철이고 꽃게철이건만 새우도 꽃게도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고 격감 상황이다. 새우와 꽃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어종이 그렇다.

그런 현상은 일년생 어종인 망둥이도 마찬가지다. 연근해 어종 중에서는 번식력이 가장 뛰어난 망둥이마저 어느덧 귀한 생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면 망둥이 잡는 재미로 살았던 사람들은 요즘 똑같은 의문을 갖는다.

'그 많던 망둥이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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