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주인은 태산할미인 벽하원군이다

등록 2004.10.20 21:25수정 2004.10.2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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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태산 입구

태산 입구 ⓒ 정호갑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노력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라는 뜻을 지닌 양사언의 시조로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우리 속담으로도 태산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 태산에 올랐다. 막상 오르고 보니 태산의 높이는 우리 설악산보다 더 낮은 해발 1545m에 지나지 않는다. 오르는 길에서나 정상에서 느끼는 산수의 멋도 우리 산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a 태산 정상에 늘어 서 있는 가게들

태산 정상에 늘어 서 있는 가게들 ⓒ 정호갑

7412개나 된다는 가파른 계단과 바위에 새겨진 시구를 비롯한 많은 글들 그리고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기념품 가게를 비롯하여 호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면 다른 풍경이었다.

a 태산에 오르면서 만나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들

태산에 오르면서 만나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들 ⓒ 정호갑

하지만 그들은 ‘태산에 올라보니 조국의 산하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하며 감탄하였고, 태산을 다른 어떠한 산보다 신성한 산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함께 하고 있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리 높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이름을 떨치고 있을까?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태산은 2000여년 동안 왕조시대 제왕들이 제천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예술적 걸작품들이 자연 경관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중국의 예술가와 학자들에게는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해주는 원천이었고 고대 중국 문명과 신앙의 상징이었다”라며 그 지정 이유를 밝혔다.


태산은 중국 오악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은 만물 생성의 근원인 동시에 바로 하늘의 상징이므로 황제의 봉선 의식이 태산에서 거행되었다.

a 옛날 봉선 의식에 거행되었던 곳

옛날 봉선 의식에 거행되었던 곳 ⓒ 정호갑

봉선 의식은 황제가 자신의 즉위를 하늘에 고하고 태평성대가 땅에서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의식으로 지금도 3월이면 태산에서 ‘묘회(廟會)’란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한다.


봉선 의식을 처음으로 거행했던 이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다. 그 뒤로 한 무제와 당 현종을 비롯한 72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봉선 의식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가 숨쉬고 있기에 태산은 중국인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중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또 하나는 만세사표(萬世師表)로 우러러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자가 태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자등동산이소노 등태산이소천하(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 노나라가 좁다는 것을 알았고, 태산에 올라서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흔히 젊은이에게 말하는 호연지기를 공자는 태산에서 느꼈던 모양이다. 그리고 태산은 두보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글감이 되었다. 곧 봉선 의식과 공자의 등정이 오늘의 태산을 만들었다.

a 태산 오르는 길

태산 오르는 길 ⓒ 정호갑

산은 산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한데 태산은 그렇지 않다. 태산은 아름다움도 웅장함도 갖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태산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그것이 바로 태산이 지닌 힘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 그 존경은, 나라 잃은 시대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임시정부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으며, 광복이 된 뒤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 분단을 막아보려고 애쓴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가 문화 민족을 꿈꾸었다는 데서 그를 존경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구의 <나의 소원> 중에서)


태산에는 태산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당이 있다. 공자를 모신 사당, 옥황대제를 모신 사당 그리고 벽하원군 곧 태산할미를 모신 사당이다.

중국의 사당은 기리는 대상을 모셔 놓은 사당 앞에 향불을 피우고 기원하는 곳이 있는데, 그 앞에 자물쇠꾸러미가 많이 걸려 있다. 자물쇠는 곧 결연을 뜻한다. 공자와 옥황대제 그리고 태산할미와 결연을 맺고자 자물쇠를 채운다. 이를 결연쇠라 부른다.

a 벽하원군의 사당 앞에 놓여 있는 결연쇠

벽하원군의 사당 앞에 놓여 있는 결연쇠 ⓒ 정호갑

만세사표인 공자가 태산에 올랐으니 그를 기릴만하고, 또 이곳에서 봉선 의식이 거행되었으니 옥황대제를 기릴만하다. 그리고 태산할미인 벽하원군 또한 이 산의 주인이니 기릴만하다.

그런데 이 세 곳 가운데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사당은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이다. 태산할미 사당이 공자나 옥황대제의 사당보다 잘 꾸며져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특별한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태산할미의 사당만 입장료를 받을까?

벽하원군이 바로 태산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태산할미보다 더 높은 옥황대제도 민생미유(民生未有 :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난 이래 공자 만한 성인은 없었다)라는 성인 공자도 태산의 주인은 아니다. 주인을 제대로 알고 그를 섬길 수 있는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태산 주인은 태산할미인 벽하원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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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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