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을 앞두고 한 당직자가 김덕룡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에게 '카메라 의식. 표정관리 부탁. 일희일비 조심 (충청도민)'이라고 적힌 쪽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제공>오마이뉴스 권우성
[2신 : 21일 오후 6시 40분]
"환영 일색"에서 "우리도 책임 있다, 충청권 위로" 등 신중론 선회
'탄핵 악몽' 한나라, 수도이전 역풍 고심 "죽 쒀서 남 줄 수도..."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결정 직후, 환영 일색이던 한나라당의 들뜬 표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신중론으로 차분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박근혜 대표가 주재한 긴급대책회의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논평 내용은 "법치주의의 승리"라는 수준에서 되풀이됐지만,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다, 충청권의 충격에 위로를 보낸다"고 '겸허한' 자세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회의에서 박근혜 대표는 "나라를 위해서 다행스런 일이다. 법치주의의 승리인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충청권 주민들의 당혹감과 놀라움이 컸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등 충청권을 의식한 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승리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지난 대통령 탄핵가결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30여분 간의 긴급대책회의를 끝낸 뒤 22일 의원총회를 열고 헌재 결정에 따른 후속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며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당내 수도이전특위(위원장 이강두)가 내놓은 기존의 안들에 대해 전여옥 대변인은 "수도이전 전제로 한 대안은 재검토될 것이지만 지방분권과 지역경제활성화 차원의 안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신중론은 헌재 결정이 당장에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이기는 해도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탄핵역풍을 경험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한 '잘한 건 없지만 이건 아니다'라는 소극적 지지의 재결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 수도이전특별법 제정의 원죄가 여진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헌재의 위헌결정에 박수를 쳤지만 결국 위헌법률을 제정한 것에 대한 책임, 특히 청와대와 여당이 수도이전 반대를 하려면 특별법 폐기법안부터 내라고 압박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렇다 할 입장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울러 전국정당으로서의 이미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냐는 점이다. 이번 판결로 충청권이 통째로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한나라당의 노심초사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서울·경기 수도권 지지층의 결집도는 배가되었을지 몰라도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균형발전에 있어 한나라당의 '대안'은 별다른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나아가 이 같은 수도권 결집이 '죽 쒀서 남 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분석이다. 당 지도부는 헌재 결정 이후 수도이전 반대의 목청을 높여온 이명박 시장과 당내 수도권 비주류와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이명박 시장은 관제데모 논란 등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수도이전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해왔다는 점에서 '주가'를 높일 수 있고, 장외투쟁을 통해 '어정쩡한' 지도부를 압박해온 김문수, 이재오 등 수도권 비주류들의 목소리도 따라서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들은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즉각 기자회견을 갖고 10월 28일로 예정된 수도이전반대 100만 국민대회를 시청 앞 광장에서 예정대로 치를 것이며 국민대화합의 축제한마당으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현장정치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재오 의원은 기자회견문을 읽던 도중 눈물을 보였고, 이에 박계동 의원은 "너무 감격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수도이전반대국민운동본부와의 지속적인 연계의사를 밝혔는데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따른 비주류 결집력이 당내 어떤 권력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