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 유행 속에 자취 감춘 자연섬유

천연염색의 황홀한 빛깔 잔치(3) - 천연염색 견학기

등록 2004.10.25 19:32수정 2004.11.02 13: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밤송이(왼편)와 꼭두서니(오른편)로 염색한 명주

밤송이(왼편)와 꼭두서니(오른편)로 염색한 명주 ⓒ 박도

이제는 무공해, 친환경 제품이 사랑받는 시대다


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자라면서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방학 때면 부산에 사시는 부모님 곁에 가서 지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나일론 남방셔츠를 사 주셨다. 방학이 끝난 후 다시 시골로 와서 그 옷을 입고 다니자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서 아이들이 나일론 옷감을 한번이라도 만져 본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 무렵 나일론 옷감은 최신 옷감으로 사람들에게는 꿈의 옷감이었다. 곧 나일론 바람은 태풍처럼 몰아쳐서 온 나라에 유행했다. 지금은 거지들도 입지 않을 나일론 치마저고리가 그 무렵 여인들에게는 최상의 나들이옷으로, 온통 나일론 옷감이 전국을 뒤덮었다.

이 나일론 옷감이 의류계에 일대 돌풍을 몰고온 이유는 옷감이 질기고 손이 덜 가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 재래의 무명이나 명주 삼베 모시는 잘 해지고 손이 많이 갔다.

그런데 나일론 옷감은 질길 뿐 아니라, 세탁도 간단해서 세탁 후 물을 뺀 다음 한두 시간이면 다림질하지 않고는 입을 수 있었기에 한복 손질에 시달렸던 주부들에게는 일대 혁명으로 꿈의 옷감이었다. 그래서 나일론은 쓰이지 않는 데가 없을 만큼 온통 나일론이 판을 쳤다. 나일론 양말, 나일론 스타킹, 나일론 팬티….

그 당시에는 '나일론'이라는 말도 유행어였다. 쉽고 편리한 것에도 '나일론'이라는 말이 붙었고, 가짜, 얌체, 요령꾼을 이르는 말에도 '나일론'이라는 말이 붙었다. 한 예로 군에서 '나일론' 환자는 교육받기 싫어 일부러 아픈 척하는 이를 말했다.


a 1차 염색한 옷감에 매염하고 있다

1차 염색한 옷감에 매염하고 있다 ⓒ 박도

1950~60년대 이러한 화학섬유 열풍은 이 땅에 뽕나무가 사라지게 했고, 목화나 삼 재배도 자취를 감추게 했다. 화학섬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같은 화학섬유에 명주나 무명이나 삼베 옷감은 값이나 생산량에서 도저히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자연히 뽕나무를 베고, 목화나 삼 대신에 다른 작물을 심고, 베틀은 아궁이나 박물관으로 갔다. 더는 베를 짜려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화학섬유로 온통 몸치장한 사람들이 화학섬유의 단점에 눈 뜨게 되면서 그 열풍은 서서히 걷히게 되었다. 이제는 화학섬유는 저질에 값싼 옷감이 되었고, 자연섬유인 명주나 무명, 삼베나 모시가 고급 천연섬유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염색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의식주에서 양보다 질의 시대다. 공해가 없고 친환경 제품이 사랑받는 시대다.

천연염색의 재료는 무궁무진하다. 봉선화·쑥·포도·감·양파·도토리·뽕나무·소나무껍질·진달래·은행나무·칡뿌리… 등 산과 들에서 나는 대부분 초목들은 그 재료가 된다. 그래서 이 분야는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는 신비의 세계다. 젊은이들이 한번 도전해 볼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번 회는 천연염색 마지막 회로서 '꼭두서니', '밤송이' 염색 소개를 하면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꼭두서니는 '천'(茜) 또는 '가삼자리'라고도 하는 여러해살이 야생초로 중국과 한국이 원산지다. 줄기는 네모나고 속은 비었으며 잔가지가 있다. 잎은 둥글며 끝이 뾰족하고 마디마다 4장씩 나온다.

가을에 꽃잎 5장이 하얗게 통꽃으로 된다. 동그란 열매는 파랗게 열린다. 익으면 자줏빛이 난다. 뿌리는 가늘고 여러 갈래로 나며 어린 뿌리는 황색이며 굵은 뿌리는 검붉다. 염색에는 뿌리를 쓰는데 굵고 붉은 색조가 많은 것이 좋다. 꼭두서니는 매염제에 따라 색상 변이가 심하다.

밤나무는 참나뭇과의 낙엽 교목이다. 전국 야산 어디에나 흔하게 분포된 밤나무는 줄기·나무껍질·잎·낙화·밤송이·속껍질과 겉껍질이 모두 염재로 쓴다. 백반 매염에서는 갈색 기운이 나오고, 철매염을 하면 회색빛을 얻을 수 있다.


a 염색꾼의 염화미소(1)

염색꾼의 염화미소(1) ⓒ 박도



a 염색꾼의 염화미소(2)

염색꾼의 염화미소(2) ⓒ 박도



a 어디서 이런 빛깔이 나왔을까

어디서 이런 빛깔이 나왔을까 ⓒ 박도



a 꼭두서니의 현란한 쇼

꼭두서니의 현란한 쇼 ⓒ 박도



a 밤송이 빛깔에 물든 명주

밤송이 빛깔에 물든 명주 ⓒ 박도



a 밤송이 빛깔의 화려한 변신(오른쪽)

밤송이 빛깔의 화려한 변신(오른쪽) ⓒ 박도



a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우아한 빛깔이 있을까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우아한 빛깔이 있을까 ⓒ 박도



a 가을바람에 나붓기는 다홍빛 엷은 스카프

가을바람에 나붓기는 다홍빛 엷은 스카프 ⓒ 박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