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상모동 생가, 다시 복원한 집으로 본래의 모습은 이보다 훨씬 더 초라했다구미시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내린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나 진보적인 인사들은 대부분 박정희씨는 일본군 장교인 민족반역자이며, 결코 이 나라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또 4·19 혁명으로 막 돋아나려는 민주주의 싹을 잘라내려고 했으며, 민족정기를 흐려놓았다고 매우 혹평을 한다.
그런가 하면 경제면을 중시하는 다른 한 편의 의견은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박정희는 단군 이래 이 나라에 가난을 물리친 가장 뛰어난 지도자라며 한껏 치켜세운다.
한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 우리는 그 인물에 대한 실체를 바로 알고 평가하기보다는 대부분 자기중심적이요, 다른 이의 평가에 추종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는 대개의 사람들이 자기 주관이 뚜렷치 못한 탓도 있지만, 역사학자나 언론인 그리고 작가들이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군인 박정희> 저자 정운현(오마이뉴스 편집국장)씨는 기자로서 일찍이 현대사 자료 발굴과 취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중앙일보> 재직 때 현대사연구팀의 일원으로 '실록 박정희 시대'를 연재하면서 박정희가 거쳐 간 곳은 죄다 현장 답사하고(심지어 만주군관학교까지), 관계자를 일일이 만나 그의 증언을 녹취하여 '박정희'라는 한 인물의 전 생애를 조명한 바 있다.
그 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로 자리를 옮겨서도 저자는 친일파 연재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지의 항일유적지 답사,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반민특위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 등에 정열을 쏟아왔다.
그 무렵 필자가 항일유적 답사 중,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이라는 한 독립영웅의 기록을 접하고 그 자료를 추적하던 중, 처음으로 허형식 논문을 쓴 분이 당시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인 장세윤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이를 국내신문에 최초로 보도한 사람이 정운현 기자라서, 우리 세 사람은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허형식 장군의 고향인 구미 임은동이 바로 박정희 생가 상모동과는 철길을 사이에 두고 있어, 같은 시대를 살던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 우리 현대사 비극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박정희가 고이 잠들도록
저자는 이 책 글머리에서 "'교사 박정희 - 군인 박정희 - 대통령 박정희'로 이어가는 과정에서 '군인 박정희'에 더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박정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본 뿌리가 '군인'에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군인 박정희>는 모두 13장으로, '어린시절과 부모 형제'부터 '반혁명과 알래스카 토벌작전'으로 5·16 쿠데타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박정희를 떠나보내기 위해'라는 맺음말에서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는 무덤 속의 박정희가 고이 잠들도록 놓아줄 수 있을까? 그게 이승을 사는 산목숨들의 이치인 터에 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목적이나 감정에 앞서 냉철한 판단력과 이성으로 무장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그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안식처를 찾게 될 것이므로."
무릇 글을 쓰는 이는 춘추필법으로 양심에 따른 곧은 글로 사실 그대로('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서 바른 역사의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