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에서 만든 아름다운 가을 추억

폐교에 똬리 튼 장애인 예술공동체 '아름다움만들기'에 다녀와서

등록 2004.11.02 13:53수정 2004.11.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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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20여분 남짓한 거리인 경기도 가평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천연염색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소식에 한 달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가평행 경춘선 기차에 큰 아이와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오색의 가을색이 파란 하늘 밑에서 사이좋게 옹기종기 무르익어 간다. 서울 시내 지하철보다도 시간이 덜 걸리는 가평.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 참 오랜만에 다시 찾는 길이다. 가평행 기차 속에는 모꼬지를 떠나는 학생들의 유쾌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a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2리에 있는 장애우 예술공동체 '아름다움 만들기'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2리에 있는 장애우 예술공동체 '아름다움 만들기' ⓒ 유성호

가평역에서 유명산, 연인산 방면으로 차로 10분을 달리면 마장, 개곡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그리로 한 5분을 더 달리면 좌측 길가에 조그마한 나무 간판이 오는 이를 반긴다. '아름다움 만들기'란 이름을 가진 이곳에서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환경 생명 평화 통일을 주제로 '우리들의 꿈바램전'이라는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a 쪽, 감, 재, 숯, 황토 등 자연 재료로 염색한 천연염색 제품과 서예, 서각 등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

쪽, 감, 재, 숯, 황토 등 자연 재료로 염색한 천연염색 제품과 서예, 서각 등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 ⓒ 유성호

전시회는 '아름다움만들기'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2년만에 지역 주민과 지인들에게 정식으로 개소식을 알리기 위해 더불어 마련된 행사다. 이곳은 지금은 폐교가 된 가평 마장초등학교 개곡분교가 있던 자리로 2002년 이 곳에 똬리를 튼 권영환, 이혜화 부부가 살고 있다.

a 가평꽃동네 장애인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그림. '1+1=1'은 이 곳 주인인 권영환 선생의 생활 철학이다.

가평꽃동네 장애인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그림. '1+1=1'은 이 곳 주인인 권영환 선생의 생활 철학이다. ⓒ 유성호

이곳에서는 쪽, 황토, 감 등 천연재료를 이용한 천연염색은 물론 서예, 두부·떡 만들기, 고구마·감자·콩 구워먹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메주 만들기 등도 준비하고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30평 규모의 전시장에는 각종 천연염색 소품들이 차 있고 그 사이 사이에 권영환 선생이 쓴 통일시 서예작품이 운치를 더한다.

a '안얼어 죽고 살라믄 불씨를 나눠 가슴속에 묻어야제'. 한쪽 팔이 없는 가운데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권 선생의 서예를 서각한 작품.

'안얼어 죽고 살라믄 불씨를 나눠 가슴속에 묻어야제'. 한쪽 팔이 없는 가운데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권 선생의 서예를 서각한 작품. ⓒ 유성호

권 선생은 오른쪽 팔이 없는 장애인으로서 왼손조차 부자연스러운 지경이지만 서체는 정연하고 유려하다.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선 자신감을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전해주고자 그는 장애인 시설인 가평꽃동네와 손잡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a 정신지체 장애인이 만든 토우. 투박한 질감 속에서 정겨움이 묻어 난다.

정신지체 장애인이 만든 토우. 투박한 질감 속에서 정겨움이 묻어 난다. ⓒ 유성호

'1+1=1'. 이것은 그의 생존 철학이다. 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나 서로를 보듬고 세울 때 완전한 하나로 거듭날 수 있다는 철학으로 장애인 재활과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그래서 이날도 전시실 한 켠에 장애인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그림을 전시하는 등 하나됨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a 인근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정경.

인근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정경. ⓒ 이동수

한편 이날도 오전에 두부를 한 솥 끓여내서 손님 대접을 하고 있었다. 콩은 이웃 주민들이 행사를 위해 십시일반 추렴한 것으로 무공해 자연산이다. 이웃 주민과 멀리서 찾아 온 체험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콩을 삶아 갈고 익혀 두부를 만드는 모습은 정겨움을 뛰어 넘어 도농(都農), 장애·비장애인 공동체 문화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한다.

a 황토염색을 하고 있는 아이들.

황토염색을 하고 있는 아이들. ⓒ 유성호

게다가 잘 만들어진 두부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란. 두부가 만들어질 동안 한 무리의 아이들은 황토가 개어진 양동이 주위에 둘러앉아 하얀 손수건에 황토 물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a 떡메를 치는 아이. 아이들 체험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떡메를 치는 아이. 아이들 체험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 유성호

'조물조물 잼잼'을 백번 정도 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목청을 돋우며 숫자를 세는 아이들의 조물거리는 손과 오물거리는 입을 보면 이곳이 아이들의 천국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저절로 잘도 논다. 분무기에 인체에 무해한 형형색색의 천연염료를 넣어 걸어 둔 천에 뿌리면서 색깔의 배합을 자기들끼리 익히는가 하면 한편에 마련된 떡메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a 고구마, 감자, 콩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모닥불 체험. 아이들 얼굴이 금세 꼬질해 진다.

고구마, 감자, 콩 등을 구워 먹을 수 있는 모닥불 체험. 아이들 얼굴이 금세 꼬질해 진다. ⓒ 유성호

그것이 싫증나면 발길을 조금만 옮기면 모닥불 속에 숨어 있는 군고구마와 감자를 꺼내 먹거나 콩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여기서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숯검정 물이 꼬질꼬질하게 든다. 흥이 조금 가라앉을 무렵엔 대학생 자원봉사 사물놀이패가 분위기를 돋운다. 흥에 겨운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덩실 춘다.

a 밤이 이슥해 지면 모닥불로 사람들이 모여 정담을 나눈다.

밤이 이슥해 지면 모닥불로 사람들이 모여 정담을 나눈다. ⓒ 유성호

짧아진 가을 햇살이 어슷하게 기울면 기온이 차츰 떨어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닥불 주위로 모이고 낮에 묻어둔 고구마며 감자를 꺼내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족끼리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보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이번 행사를 위해 잡은 돼지의 가장 맛있는 부위를 골라 은박지에 싼 다음 숯불에 박아 두면 기름이 쏙 빠진 감칠맛 나는 바비큐가 된다. 여기에 가평의 특산품인 잣막걸리를 한잔씩 걸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어스름이 주변을 완전히 휘감은 한 밤에야 놀이판이 끝난다. 이 곳 주인은 아이들에게 절대 '하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역설적으로 어른들을 가르친다. 자연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어울림, 그리고 장애인들이 완전한 하나로 홀로 설 수 있는 곳, '아름다움 만들기'란 이름의 유래를 깨우친 것은 그곳을 떠날 무렵이었다.

"1+1=1, 그것은 완전한 하나를 말합니다"
아름다움만들기 주인 권영환씨

▲ 권영환 선생
"개곡리 주민들이 손수 일궈낸 작은 배움터였던 개곡분교에 자리잡은 '아름다움만들기'는 장애우 예술공동체입니다. 이번 행사는 훼손되어가는 우리의 자연을 되돌아 보며 생명, 환경, 통일, 평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실천을 다짐하자는 뜻으로 준비했지요."

권영환 선생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시종 활력 넘치는 몸짓과 웃음으로 방문객을 반겼다. 그는 틈틈이 가평꽃동네 희망의 집에 나가 장애인들을 가르친다. 장애는 생활에 조금 불편한 따름이지 살아가는 삶의 장애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것이 체험실습을 통한 장애인 자활 프로그램.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과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곳에 자리잡게 됐다.

자신은 서예, 부인은 천연염색 기술을 장애인들에게 전수하고 나서자 많은 전문가들이 이 일에 자원하고 나섰다. 그래서 지금은 '식구'라는 공동체 정신으로 공동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이웃 주민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곳 식구들의 꿈은 장애인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체험관 확충. 그래서 인근 부지를 매입해 숙소를 지을 예정이고 다른 지역에는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다.

권 선생의 서예 작품 중 '얼어 죽지 안 으려믄 불씨를 나눠 가슴에 묻어야제'는 나누는 삶이 얼마나 절대적인 선인가를 깨우치게 하는 경구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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