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요즘은 개량 머루가 나와 예전 머루와 포도의 중간 크기더군요.김규환
들녘은 텅 비어 가고 있었다. 산도 붉게 물든 지 오래지 않아 바위가 더 선명히 보이고 헐벗어 갔다. 으름 따먹으러 다녔던 깊은 골짜기엔 어김없이 다래 넝쿨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한둘이 갔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니 아이들이 한패가 떠난다. 아버지 막걸리 주전자 하나씩 들고서….
“쩌것이 뭐시다냐?”
“뭐야? 달래야?”
“고게 아니고 뽀짝 와서 똑바로 쳐다봐 봐.”
“아, 보인다. 쩌게 다래구나.”
마침 서리 맞은 쪼글쪼글 쪼그라든 다래가 노랗다. 곧 떨어질 태세다. ‘조놈들을 어떻게 딴다지? 가만, 잡아채 볼까. 아냐 그래도 끄덕 없을 거야. 에라! 모르겠다.’
“야, 욜로 모여 봐봐.”
“대막가지로 후들겨 불게?”
“여기까장 누가 간지대를 갖관간디 그냠마.”
“글면야?”
“다 모타 보란 말이다. 한꺼번에 잡고 넝쿨을 땡기면 됭께, 암말 말고 모여.”
수가 없었다. 그냥 당겨서 흔들면 담은 몇 개라도 떨어지겠지.
“한나, 둘, 셋!”
“읏샤!”
“다시 한번 땅겨!”
“끙~”
잡았던 줄에서 손이 빠졌다. “툭!” 나자빠졌다. “어이쿠, 엉뎅이야.” 손톱만한 알갱이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낙엽이 쌓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감쪽같이 들어간 것 절반이 넘고 눈에 보이는 건 몇 개 안된다.
“규환아, 허벌나게 달다.”
“한 개 줘 봐봐.”
“니도 줏어 묵어.”
“던지런 새끼. 한나 주면 누가 잡아 묵냐?”
입에 넣고 오물오물 우물우물했다. 씹을 필요도 없었다. 쪼그라든 다래가 몽실몽실 물컹거리며 부서지자 작은 씨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흙 내음인가. 쉰 막걸리에서 나는 술 냄새 같다. 그래도 뒤끝은 달다. 물기가 자작거리는 골짜기를 따라 하노고(한없이) 올랐다. 어둑어둑해질 녘까지 따도 아직 차려면 멀었다.
“야, 글다가 어두워지면 호랭이 나온께 인차 그만 내려가자.”
“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