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m짜리 김밥 말기에 골목이 들썩들썩

서울 방학동에서 열린 흥겨운 마을 축제 '골목대장'

등록 2004.11.03 15:50수정 2004.11.0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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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밥맨의 입재담으로 행사 분위기는 한층 흥겨워졌습니다.

김밥맨의 입재담으로 행사 분위기는 한층 흥겨워졌습니다. ⓒ 김세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일은 이제 오래된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일상화되어 있다. 주차구역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아파트보다,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이런 작은 동네에서 사소한 주차문제 등으로 낯을 붉히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어느 집에 사는지, 어떤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지 모두 골목길로 나오세요!"

이는 지난 10월 30일 도봉구 방학동에서 열린 마을축제 '골목대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골목대장'은 골목에서 열리는 큰 장터, 골목대장들이 아이들을 불러모으듯 축제라는 이름으로 모두 모이라는 뜻.

a 우리동네 골목가수왕 선발대회

우리동네 골목가수왕 선발대회 ⓒ 김세진

이번 '골목대장' 마을축제는 동네 주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페이스 페인팅, 골목 노래왕 선발대회, 골목 제기왕 뽑기, 비누방울 날리기,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동네 주민이 모두가 함께 참여한 40m 김밥 말기 등 다채로운 마당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행사 하루 전날 저녁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이동목욕차량을 꾸며만든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하나 부럽지 않은 골목영화제가 열렸다.

행사는 방아골복지관, 방아골어린이집, 방아골노인주간보호센터, 도봉자활후견기관 등이 함께 진행하였고 방학2동사무소와 예비군 방학2동대의 지원, 그리고 방학2동 통장님들의 적극적인 홍보와 협조로 동네 주민 약 500여명의 참여 속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축제는 복지관 앞 40여m 골목길 좌우를 막으며 시작되었다. 차 없는 거리는 판이 벌어지기 전 이미 퀵보드와 롤러브레이드 등을 타고 나온, 원래 이 골목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잠시 돌아갔다.

a 아이들이 직접 만든 만국기

아이들이 직접 만든 만국기 ⓒ 김세진


방아골어린이집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만국기가 골목 여기저기에 드리워지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이어 고사리 손으로 밤새워 정성스럽게 만든 꼬마의 간판이 엄마의 도움으로 걸리고 오래된 레코드판과 세발 자전거 등 재미있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골목대장이 시작되었다.

a 엄마와 직접 만든 벼룩시장 간판

엄마와 직접 만든 벼룩시장 간판 ⓒ 김세진


행사 중간에 벌어진 골목노래왕 선발대회는 동네 피자가게와 치킨집에서 내놓은 피자와 닭을 경품으로, 즉석에서 심사위원을 선발해 한 시간 가량 진행했다. 트로트에서 최신 곡까지 노래방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고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소리는 골목을 가득 메워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a 골목대장의 마지막을 장식한 '40m 김밥말기'

골목대장의 마지막을 장식한 '40m 김밥말기' ⓒ 김세진


행사가 끝날 무렵. 열린 장이 하나둘 걷히고 사람들은 골목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오늘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40m 김밥 말기가 시작될 차례이다.

길게 늘어진 책상 위로 아이 어른 모두 섞여 재료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밥, 오이, 계란 등이 차례로 올려지고 모든 준비가 끝이 난 사람은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김밥을 말기만 하면 되는 순간. 잠시 우리 골목에 긴강감이 감돌고 모든 시선이 사회자의 입으로 모아졌다.

하나! 둘! 셋! 일순간 와, 하며 김밥이 돌돌 말렸고 조심조심 가슴 위 높이까지 들어올려졌다. 우리 동네 40m 김밥 말기 성공!

미리 준비한 보리차, 해장국과 함께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어르신들과 참석한 모든 주민들이 함께 나눠먹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a 방학동 최초로 주민들이 모두 함께 만든 40m짜리 김밥

방학동 최초로 주민들이 모두 함께 만든 40m짜리 김밥 ⓒ 김세진


우리 동네 마을 축제 '골목대장', 지역 공동체성 회복이 목표

사실 골목대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8년부터 거리음악회, 사랑나눔 바자회 등이 진행되기는 하였으나 복지관이 중심이 되고 주민들은 참여의 대상이 되는 행사에만 그쳤다.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진행하는 마을잔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지난 5월에는 단오잔치, 그리고 이번 '골목대장'을 계획하게 되었다. 서로 돕고 나누는 지역 공동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러한 마을잔치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는 소극적인 복지활동이 아닌 지역사회의 좋은 나눔의 문화를 만들고 동네 분들이 직접 어려운 분들, 아픔이 있는 분들을 이웃의 어려움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직도 계획 단계부터의 주민 참여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는 있으나 이번 '골목대장'을 계기로 조금씩 주민들이 원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만들어내는 신명나는 축제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참여했던 동네 분들이 격려와 칭찬, 그리고 감동받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a 우리동네 마을장터 골목대장 풍경

우리동네 마을장터 골목대장 풍경 ⓒ 김세진


내년에 있을 '골목대장'을 그려본다. 동네 꼬마들과 홍보포스터를 만들고, 동네 어르신께 잔치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엄마들은 500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비빔밥 만들기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고민하며, 아빠들은 퇴근 후 동네 놀이터에 모여 스크린과 의자를 설치하고 음향시설을 점검하는 등 아이들을 위한 방학동 심야 영화제 준비에 한창이다.

예전 서로 돕고 나누던 마을사람들처럼, 살기 좋은 우리 동네를 만들기 위한 마을축제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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