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고 싶어. 형도 보고 싶어"

준수가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등록 2004.11.04 14:06수정 2004.11.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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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가 입원한 지 꼭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체감으로 느낀 길이는 한없이 긴 기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지만 흩어져 살아야 하는 가족들이 치러야 할 어려움은 여전합니다.

세브란스 병원 병실에서 엄마의 간호를 받으며 병마와 싸우는 준수도 안쓰럽고 불쌍하지만 원주 집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는 둘째 광수의 처지도 안쓰럽긴 매일반입니다. 마땅히 녀석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대학을 휴학한 조카가 와서 함께 살고 있지만 한 달도 넘게 엄마를 보지 못한 채 지내고 있습니다.

저도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운 탓에 일주일에 한번 겨우 얼굴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주말에 집에 들러도 준수가 입원한 서울로 급히 가야 하기에 차분히 앉아 광수와 다정한 얘기를 나눌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밥 잘 챙겨 먹고 옷 잘 챙겨 입고 학교에 다니라는 말만 건네는 게 대부분입니다.

소풍 때에도 엄마가 김밥을 챙겨줄 수 없었습니다. 친척의 도움으로 겨우 김밥은 챙겨 보냈지만 그 날은 하루 종일 우울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소풍을 떠난 녀석이 풀죽어 지낼까 걱정이 되었던 거지요. 저녁 때 전화를 통해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소풍의 일환으로 고구마 캐기 체험활동이 있었는데 녀석은 꽤 많은 고구마를 캐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고구마는 그냥 뒹굴 뿐이었습니다. 광수가 캐온 고구마를 삶아줄 엄마가 집에 없기 때문입니다.

광수가 소풍을 갔다 온 지 보름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베란다 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고구마를 발견했습니다. 광수에게 고구마에 얽힌 사연을 들으면서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베란다 구석에서 뒹굴고 있던 고구마의 모습이 꼭 엄마 아빠도 없이 한 달을 살아온 광수의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애들이 그러는데 이 고구마 참 맛있대요."

아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수는 옆에서 얘기했습니다. 애들이 맛있게 먹었다던 고구마를 녀석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녀석이 측은해졌습니다. 함께 삶아 먹어보자며 고구마를 바가지에 담아 씻었습니다.

광수의 말대로 삶은 고구마는 참 달고 맛있었습니다. 삶은 고구마를 앞에 놓고 함께 먹으며 모처럼 광수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고구마 캐던 얘기며 학교 앞에서 내려 고구마 들고 오는데 힘이 들어 몇 번을 쉬어 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광수가 캐온 고구마가 여태까지 먹어본 고구마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하니 녀석은 배시시 웃었습니다.

고구마를 먹던 광수가 문득 엄마와 형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엄마와 형에게 전해줄 테니 한마디 해보라고 했습니다. 광수는 고구마를 먹으며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 형도 보고 싶어. 형 빨리 나아서 나 공부도 가르쳐주고 나랑 같이 축구도 하자."

녀석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먹고 있던 고구마가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며 겨우 넘겼습니다.

형이 다 나으면 아빠도 축구 할 때 끼워 줄 거냐고 광수에게 물어봤습니다. 녀석은 좋아라 박수를 쳤습니다.

광수의 말을 병원에 있는 엄마와 형에게 꼭 전해줄 거라고 약속을 하고 서울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광수가 캐온 고구마 몇 알도 함께 챙겨 가지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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