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가 제 힘으로 일어섰습니다

50일만의 가족 상봉

등록 2004.11.29 12:58수정 2004.11.2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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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와 함께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습니다. 준수가 입원한 지 꼭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광수는 엄마와 형을 보고 싶어했지만 준수가 동생에게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며 한사코 반대해서 광수를 데리고 가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준수가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나면서 광수를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해서 광수를 처음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엄마와 형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아오면서 텅 빈 집을 지켜온 광수는 엄마 아빠의 걱정과 달리 힘차게 잘 살아주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작업 치료실을 들어서니 준수와 엄마는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광수가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광수에게 달려가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광수의 볼을 어루만지며 잘 지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습니다. 광수의 볼에 얼굴을 맞대고 비비던 아내는 광수가 입고 온 겨울 잠바가 눈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광수야, 이 잠바 어디서 났어."
"친구 용재 엄마가 입으라고 빌려준 거야."
"광수 것도 집에 있는데."

겨울옷을 챙겨줄 엄마도 아빠도 집에 없으니 기온이 내려가도 철지난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보기에 안쓰러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가 옷을 빌려준 것입니다. 직장에서 병원으로 바삐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던 아빠는 아이의 옷에 대해 별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눈에는 그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입니다.

광수에게 전혀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병원에서 지낸 일이 마음이 아픈지 아내는 광수를 안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준수도 동생과 얘기하고 싶은 눈치인데 아내는 준수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광수를 놓아줄 기미가 안보입니다.

보다못해 아내에게 한마디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만났으니 준수와 나란히 앉아 사진 한 장 찍어보라고 말입니다. 그제서야 아내도 광수를 놓아주었습니다. 준수를 사이에 두고 작업치료대에 나란히 앉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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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50일만에 만난 환자복 차림의 형이 낯선지 광수는 주춤거렸습니다. 뭐라고 얘기도 하고 손이라도 잡아줄 줄 알았는데 광수 녀석은 형 곁에 어색하게 앉았습니다. 옆에 있던 분들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응원의 말을 건넸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면 반갑게 끌어안기라도 해야지."
"너네들 형제 맞아, 왜 그리 어색하니? 좀 웃어봐."

그제서야 광수가 형 가까이 다가가 앉았습니다. 형이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광수 못 본 사이에 살이 더 찐 거 같아."

그러면서 행여 광수가 저보다 키마저 더 큰 게 아닌가 걱정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앉은 광수의 키와 제 키를 비교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준수 키가 광수보다 크다며 녀석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런 형 옆에서 광수도 한마디했습니다.

"형은 다리가 길잖아. 일어서면 형 키가 더 클 거야."

키는 아직 준수가 큰데 얼굴을 보니 준수 녀석이 동생에 비해 훨씬 수척해 보입니다. 그 동안 병마와 싸운 탓이겠지요. 준수 옆에 앉은 아내의 몰골도 말이 아닙니다. 피곤에 지친 모습입니다. 입술마저 부르터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활짝 웃어보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준수가 아빠와 광수에게 보여줄 게 있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 손짓을 하며 의자를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또 새로운 운동을 배운 거구나 생각하며 녀석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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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작업치료대에 걸터앉은 준수 앞으로 의자를 가져왔습니다. 준수는 앉은 채로 오른발과 왼발을 힘겹게 옮겨 어깨 너비로 벌렸습니다. 그리고 발바닥을 땅에 대었습니다. 두 팔로 의자 손잡이를 다잡고 팔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의자에 의지해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아내는 준수의 발바닥이 안전하게 땅에 밀착되도록 의자 뒤에 앉아 도와주었습니다. 서 있는 자세가 힘겨운지 녀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엉덩이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습니다.

준수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습니다. 곁에 있던 광수도 따라서 손뼉을 쳤습니다. 주변에 계시던 환자며 가족들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재활 치료를 받으며 근전도 검사를 해도 전혀 반응이 없던 왼쪽 다리에 이틀 전부터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준수의 변화된 모습에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싹 씻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용을 쓰며 서 있던 준수가 작업 치료대에 앉은 후 애쓴 준수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동생과 아빠에게 자신이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준수도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50일만에 만난 광수와 엄마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준수는 내가 돌보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우리 네 가족이 오손도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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