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 숲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고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한성희
공릉 안이라고 해서 다 통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소 옆 참나무 옆에 찰싹 붙어 있으면 지지직거리면서도 겨우 통화가 된다. 그래서 쓰레기통 오른쪽, 순릉 입구 정가운데 같이 통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전화기를 들고 쫓아 다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곳에서 서너 걸음만 옮겨도 전화는 끊어져 버린다. 그러나 이나마도 공릉 입구 근처에서만 가능하다. 관리사무소 사람들은 능 순찰을 나갈 때면 아예 무전기를 들고 다닌다.
공릉 안으로 들어가면 벨도 전혀 울리지 않아, 연락할 일이 있는 사람들은 전화가 안되면 공릉에 갔으려니 짐작한다. 그래도 문자는 가능하다는 걸 몇 달 만에야 알고 요즘은 무조건 문자를 날리라고 미리 일러두는 판이다.
하지만 아예 휴대폰이 안되는 날이 있다는 것이 속편하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명당에 다니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휴대폰을 못 받지만, '못 받는 걸 어쩌란 말야?'하는 배짱이라 휴대폰에 목을 맬 일 없는 세상과 자유로운 날을 만끽한다.
그렇게 숲의 낙엽들과 바스락 수다를 같이 떠느라고 문자가 온 것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문자를 확인했다. 오후 늦게 온다고 했던 장춘섭씨가 보낸 문자였다.
"점심 준비해서 공릉으로 출발합니다."
문자가 온 시간을 보니 거의 도착했을 듯 싶었다. 허둥지둥 입구로 달려가다가 안되겠다 싶어 사무소에 있는 강근숙씨에게 전화를 했다. '근숙씨가 컵라면에 물을 부어 놓으면 어쩌지? 점심 준비해서 온다는데.'
공릉 근처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도시락은 각자 준비한다. 라면이라면 질색하며 컵라면을 먹지 않는 해설사들에게 컵라면의 진수를 알게 한 것이 바로 나다. 김밥을 몇 번 사들고 다니다가 김밥도 지겹고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 컵라면을 사들고 온 것이 시초가 됐다. 야외에서 먹는 뜨거운 컵라면 맛은 기가 막히다. 그래서 컵라면을 사들고 공릉으로 향하는 것이 요즘 해설사들의 습관이다.
근숙씨에게 전화를 걸자 아니나다를까, 전화벨이 울리고 "여보세요?" 한마디 하기가 무섭게 끊어져 버린다. 안되는 휴대폰이 갑자기 될 리가 있나. 헛일인 줄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전화를 건 것이다. 번번이 헛일인 줄 알면서도 급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전화를 걸고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반복된다.
장춘섭씨는 뒤늦게 늦둥이 딸을 낳아 오십이 넘은 나이에 남편 김성수씨와 애지중지 기르는 파주여성문학회 회원이다. 일가족이 점심을 준비해서 공릉 나들이를 나온 것이다.
파주시에 있는 문화재 일 때문에 나와 의논 할 게 있다며 집을 나서기 전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맘이 바뀌어서 아예 가족 나들이를 한 것이라 한다.
햇밤과 콩을 까 넣고 새로 지은 뜨거운 밥과 손수 만든 된장, 밭에서 뜯은 야채 쌈, 쑥떡, 과일, 동치미까지 바리바리 보따리 싸들고 온 춘섭씨 가족 덕분에 컵라면 대신 호화스런 점심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