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메신저 사용을 허하라(?)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 (34)

등록 2004.11.09 05:37수정 2004.11.0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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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부정보 보호 및 업무효율성 향상을 이유로 지난 10월 22일부터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들의 메신저 이용을 금지시킨 것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발이 크다는 신문보도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그 보도내용을 보면서 솔직히 이미 개인 메신저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일반 대기업이 많은 실정인데 이제 와서 웬 뒷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티즌의 37.1%가 사용하는 메신저


메신저의 편리함이야 이미 써본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화상 채팅이나 파일 전송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PC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격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원격지원 기능 등까지 갖췄다. 이렇듯 사용하기에 따라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인해 네티즌들의 다수가 메신저를 즐겨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인터넷진흥원(NIDA)이 지난 11월 5일 발표한 '한국인 평균 인터넷 이용현황'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전국의 만 6세 이상 1만 7347명을 대상으로 6월 한 달 동안 조사 분석한 결과, 인터넷 이용자 중에서 메신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37.1%이고 메신저 사용시간은 1주일에 평균 6.6시간으로 나타난 것.

그러나 문제는 잘만 쓰면 해외 파견자 내지는 거래처와의 화상통신이나 거래처와의 문서교환 등 업무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 메신저가 업무상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기 보다는 신변잡기적인 수다 떨기로 업무 집중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심지어는 근무시간 내내 아예 활성화시켜 놓고 실시간으로 사적인 파일 등을 주고받다보니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하고 악성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등 네트워크 관리에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업비밀이 빠져나가기도 하는 보안의 취약점이 노출되는 일도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기업의 경우 보안문제로 아예 사내 그룹웨어에 개인 메신저 프로그램을 차단시키고 사내 전용 메신저만을 사용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실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에서 뒤늦게 개인 메신저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은 역시나 일반기업에 비해 늦어도 한참은 늦은 조치임에는 틀림없다. 이로써 개인 메신저를 차단당한 일선 공무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의 불만이란 다음과 같다. 할 일을 제쳐 둔 채 수다 떨기나 사적인 파일 주고 받기 등으로 메신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부서간 의견 교환과 업무 조정을 위해 메신저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소수의 사적인 이용을 막기 위해 메신저를 전면 금지함으로써 부서간 업무조정을 예전처럼 직접 만나서 해야하니 그 또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불만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순수하게 말하는 업무 조정과 사적인 수다와의 한계가 제3자가 볼 때는 매우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업무 조정과 사적인 수다의 경계


수다 얘기를 하다보니 메신저 보급 초기의 황당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회사 내에 1인 1PC를 보유하지 못했던 시절, PC 작업 중에 알 수 없는 이상한 내용의 대화창이 뜬 것을 우연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오빠, 지금 뭐해? 나 기분 꿀꿀하고 술 고프거든…."
"왜 대답이 없어…."
"그럼 7시에 00로 와. 기다릴게."

누군가 메신저에 접속하고 활성화시킨 창을 숨긴 채 종료하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 채 나간 사이, 여자친구인지 동생인지는 알 수 없는 어떤 이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꼭 남의 은밀한 대화를 엿본 것 같은 그때의 민망함이란….

그 민망한 사건 이후로 집이 아닌 이상 업무시간 중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메신저 이용을 자제하겠다고 다짐하고 주의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이 회사에서 개인 메신저를 이용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전송받은 정체모를 파일에 묻혀들어온 바이러스들이 백신들을 피해 네트워크 여기저기를 떠도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회사의 입장에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직원들 입장에서 볼 때는 신기하고 재미난 기능에 저도 모르게 빠져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업무 중에 사적인 남용들이 점점 많아지다보니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메신저와 관련된 추억들을 끄집어내놓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능상으로만 볼 때 잘만 사용하면 모두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개인 메신저가 왜 이렇게 일반기업이나 정부의 입장에서 천덕꾸러기 기피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가장 큰 원인은 프로그램 자체의 성능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마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다시 인간의 발목을 잡게 된 셈이다. 모두 인간의 의지 박약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 할까. 이쯤 되면 먼저 메신저 사용 허용 여부를 주장하기 전에 우선 스스로를 조용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지금 메신저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메신저에 빠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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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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