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여, 왜 분노하지 않는가

[주장]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 언제나 학생은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다

등록 2004.11.10 03:07수정 2004.11.1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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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 개정 논란, 사립학교 1700여개교의 폐교 결의, 교사들의 폐교 저지 성명, '좌파' 공격….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문제를 놓고 교육계는 극한 대립 중이라는 신문기사와 여기저기 학교 안에서 갈라져 싸우는 소리….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논제 하나로 지금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는 '어느 이유에서든'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학생은 잠잠하다. 학생회에서 학교 개폐에 대한 의견을 낸 곳은 고작 30여개가 안 되는 수준. 아예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생은 고사하고 선생도 모르는 학교 폐쇄 결의. 이러한 결정에, 교육 수요자인 학생은 언제나 돈 잘 벌어다주는 일개미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사학은 '왕국'이다. 동생 이사, 누나 이사, 며느리 영양사, 아들 교감, 딸 주임…. 이러면서도 사학의 재정자립도는 10% 미만이며, 재단전입금이 1원도 없는 학교가 허다하다. 재단이 돈을 가져가면 가져갔지, 돈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직장'이 바로 대한민국 사립학교라는 왕국이다.

이 왕국은 충실한 일개미로 유지된다. 학생이라는 일개미로 열심히 유지된다. 학생들은 학교의 가르침을 성전처럼 떠받들고 학교를 다닌다. 학교에 안 다니면 왕국을 벗어난 왕국에서 역시 거지 취급일 뿐, 마치 사지를 자르는 형벌이라도 받은 양 은둔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철옹성 속에 '착한 백성' 학생들은 오늘도 사학재단의 뱃속으로 가족과 자신이 땀흘려 번 돈을 집어넣고 있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학생들이 전혀 모르는 학교 상황, 학생 없는 이사회, 사유물 학교….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의 위치는 '일개미', '착한 백성'보다 나은가? 아니, 못하지 않는가? 너무나 착해서 자신의 팔과 다리와 귀와 눈을 빼앗기고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교육을 받으라, 재단에 복종하라는 말만을 강요당하는 학생의 모습. 차라리 일개미가 나을 것이다.

사학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학생이기에 당연히 학생들이 사학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외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이사장과 교장의 권력 남용에도 아무 말 없이 침묵하고 학교를 떠나야 한다.

용화여고 사태는 흐지부지 끝났으며, 강의석군의 투쟁은 류상태 목사의 사표로 이어졌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왕국이 바로 사립학교이다. 그리고 그 왕국에서 충실히 일하는 일개미들인 학생들은 오늘도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학교의 폐쇄 결정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본 적이 없다. 사립학교장회의 논평에 따르면 전체 사립고등학교 중 97% 이상이 "이사회의 뜻에 따라" 폐쇄 결의를 하였지만, 전체의 97%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다. 아니, 침묵을 강요당하며 계속 먹이감과 인질이 되어라 종용받고 있다.

이것은 기만이다. 아니, 차라리 테러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학생들의 발에 족쇄를, 눈에 안대를, 손에 수갑을 채우고 마음껏 유린하는 테러. 사학재단 '왕'들은 그들의 철옹성을 지키기 위해서 학생들을 유린하고 있다.


학우들이여, 왜 침묵하는가? 왜 분노하지 않는가?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받아 연명하는 자들이, 그들 맘대로 학교를 폐쇄하겠다 으름장을 놓고 있다. 왜 움직이지 않는가? 당연히 학교는 학교를 유지해가는 사람들이 주인이다. 국민 없는 국가가 없듯이 학생 없는 학교는 존재할 수 없다. 학생들이 이 사안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나설 때만이 사립학교의 지금과 같은 전횡과 횡포를 종식시킬 수 있다.

비리를 저지른 이사장은 2년만에 돌아와 다시 학교를 점령하고, 학생은 학교에 참여할 수 없고, 학부모 역시도 어떠한 권한도 없다. 학교는 '친인척 난장판'이고, 이사회는 '가족회의장'이다. 지금 대부분의 사학은 너무나 당연한 '시장의 원리(돈을 내는 사람이 주인인)'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유지하고 있다.

학생은 더 이상 일개미가 아니다. 사학왕국의 충성스러운 백성도 아니다.

학생은 올바른 방식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학생의 의견은 학교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학생은 분명 학교의 존속근거이며, 지금도 학교를 유지하고 있다. 학교를 유지하는 것은 이사회가 아닌 학생이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건 말건, 학생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고,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라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아니, 조금이라도 '민주적인 척'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다. 애초에 학교가 민주적이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다. 단지, 지금의 구조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사학왕국의 왕족들에게만 걸리적거리는 법일 뿐이다.

사학당국과 교사들은 부디 지금 학생에게 눈을 돌려달라. 당신들이 스스로의 배를 채우는 사이에 학생들은 수많은 소음공해 속에서 언제 학교가 폐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학교는 학생의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일신의 영달, 돈벌이 수단으로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지금 무슨 짓을 벌이는지 자신의 손을 돌아 보라.

정치권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사립학교법이 개폐 논란을 겪는 사이 학교는 이미 정치선전장이 되어 있다. "노무현 빨갱이"라는 소리가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야 할 교사의 입에서 나오고, "빨갱이정부 반대한다!"라는 민주주의, 사상의 자유와는 거리가 먼 파시즘적 선언이 학교 안에 난무하고 있다.

비리사학을 정리하라. 법을 더 강화하고 '범죄자와의 전쟁'에 나서라. 지금까지 빼앗겨왔던 학생들의 권익을 정치권이 돌려달라.

왜 '사립학교법 개정'이라는 문제에서 최선의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가? 아니, 이해당사자들의 말 속에서도 왜 '학생'은 영원히 소외되는가? 학생은 교육의 주인이고 주체이다. 교육의 3주체는 교사, 학생, 학교가 아니다. 이것들은 단지 부수적인것일 뿐 진정한 주체는 학생이다.

학생들이여, 부디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달라. 사립학교법의 개혁에 반대한다는 목소리조차 좋다. 자신의 목소리가 없다면 '입장이 없다!'라고도 외쳐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학생의 목소리가 커질 때만이 학교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학생을 일개미로 보는 세력를 경계하라. 그들은 지금 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그들의 치외법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투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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