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입시학원은 배치표 돈벌이를 중단하라

'배치표 비공개' 합의에도 사이트에서 유료 서비스

등록 2004.11.21 09:39수정 2004.11.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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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학원> 배치기준표 서비스신청. 배치표 내용, 기간, 요금 등을 세분화했다.
<종로학원> 배치기준표 서비스신청. 배치표 내용, 기간, 요금 등을 세분화했다.종로학원
'배치표 공개발표 안 한다.' 사설입시학원들이 얼마 전 합의한 내용이다. 반갑다. 몇 차례 지적했던 배치표 관련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기뻐하기는 이르다. 배치표 문제는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이번엔 돈이다.

지난 11월 19일 고려학력평가연구소, 대성학원, 종로학원, 중앙교육 등 입시학원들은 매년 발표하던 가채점, 모집단위별 지원가능 점수, 점수대별 추정분포도, 영역별 점수변화폭 등 배치표 관련 자료를 외부로 발표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치르던 배치표 배포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학원별로 작성한 가채점 자료와 배치표를 교사와 수험생에게 제공하고 있다. 다만 배치표를 ‘참고 및 상담자료’로만(!) 활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대학입학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학원들 마음이다. 정보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사용자들 마음이다.

배치표 보려면 돈 내! 정보이용료 1만원 ~ 7만원

그런데 학원들 마음 씀씀이가 못마땅하다. 정보 제공의 대가를 지불하란다. 배치표는 공식적으로 외부에 발표하지 않지만 내부에선 돈벌이로 활용하고 있다. 학원들의 홈페이지에는 가배치 기준표와 최종배치기준표 등을 구분해 사용 기간과 요금 체계를 달리하고 있다.

종로학원은 자유이용권(11.20~12.27) 2만5천원, 최종배치기준표(12.17~12.27) 2만원, 가배치기준표(11.20~12.13) 1만원, 교사용 배치기준표 자유이용권(11.20~12.27) 7만원 등으로 기간과 요금을 세분화했다.

대성학원은 가배치 기준표(11.19~12.12) 1만원, 가배치+최종배치표(11.19~12.27) 2만2천원이다.


고려학력평가연구소는 지원가능대학 가채점(이용기간 11.22~12.13)과 지원가능대학 최종판ㆍ실채점(12.15~12.28)을 구분해 각각 이용료 1만원을 책정했다.

예전의 배치표는 학원들이 고등학교와 수험생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했었다. 입시철을 맞아 학원의 전통과 노하우를 홍보할 목적이었다. 2005학년도 수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배치표를 이용하는 요금은 3천원 정도였다.


배치표…12월 14일 표준점수 나오기 전 무의미

<고려학력평가연구소> 배치점수 서비스. '점수만 입력하면 지원가능대학이 와르르!!!'  유독 눈에 띄는 문구다.
<고려학력평가연구소> 배치점수 서비스. '점수만 입력하면 지원가능대학이 와르르!!!' 유독 눈에 띄는 문구다.고려학력평가연구소
학원들이 배치표를 언론 등에 공개 발표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이유는 명확하다. 올해 입학전형부터는 수능 원점수로 대학간 학과간 나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점수 체계와 대학별 입학전형을 한장의 배치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학원들이 배치표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발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점수체계와 입학전형이 동일하다는 조건에서 모집단위에 대한 비교선택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단 비교선택은 가채점한 점수가 아니라 12월 14일 모든 수험생들의 성적이 공개되고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이 확정돼야 가능하다. 표준점수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배치표를 제공하며 돈을 버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대학교육평가원 남명호 수능관리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가원이 수년간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놨던 원점수 표본채점에서도 2점 내외의 오차가 생겼다. 학원들이 매년 원점수 평균의 등락폭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표준점수까지 내고 이를 토대로 배치표를 작성하는 것은 대학별 전형방법이 다양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분명히 하자. 과연 배치표가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가? 배치 기준으로 삼는 표준점수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학과 학과를 점수대로 배치할 수 있나? 만들어질 때부터 불량인 것을 알면서 버젓이 내놓고 파는 건 처벌감이다. 소비자보호원에라도 신고해야 하는 걸까?

물론 학원들도 빠져나갈 방법은 있다. 입시 학원들이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참고’다. ‘주의하세요! 본 서비스는 득점에 대한 지원가능 여부를 추정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참고자료로 활용하세요’(대성학원). 참고하는 건 좋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배치표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받아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이 나올 때까지 불안하고 초조해 할 수험생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시험 결과도 모르고 자신의 위치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입시 전략을 짜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지만 수험생들은 점수가 발표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배치표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학원들은 배치표 돈벌이를 중지해라. 그렇지 않아도 수험생들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수험생들에겐 불안한 심리를 위로하고 다독여 줄 정보가 필요하다. 표준점수도 백분위도 등급도 없는 정보를 배치표란 명목으로 제공하는 행위는 수험생들을 기만하는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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