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의 재구성

맛 작가의 잘 나가는 맛 집 이야기(7)

등록 2004.11.25 01:40수정 2004.11.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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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참 잘 하는 돈까스'

'참 잘 하는 돈까스' ⓒ 김영주

허수아비 본점 돈가스에 대해 썼던 '맛 집 이야기' 세 번째 글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이, 나는 돈가스 하면 아무래도 일본식 돈가스에 점수를 더 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성된 돈가스에 대한 기억과 느낌들은 거의가 얇고 넓적한 형태의 튀겨진 돼지고기와 사정없이 뿌려진 소스의 돈가스를 나이프로 썰어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는데, 일본식 돈가스의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코기와 새콤달콤한 찍어 먹는 소스, 무엇보다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빵가루의 매력에 힘입은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식 돈가스에 이렇게 흠뻑 빠지면서도 늘 가슴 한 구석엔 왠지 남의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우리의 돈가스라는 음식도 포크커틀릿이라는 외국 음식이 수입이 되어 정착이 된 것이지만, 일본식 돈가스는 역시 '돈캇츠'라는 발음답게 일본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대중화되어 메이저리그가 된 일본식 돈가스의 위력을 뛰어넘는 우리의 정통(?) 돈가스는 마이너리그 속으로 숨어 버린 것인가. 과연 우리식이냐 일본식이냐를 떠나 맛에 있어서도 일본식 돈가스를 능가하는 정통 돈가스는 영영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클럽과 바의 거리 홍대 앞을 가면 동화적인 분위기의 자그마한 돈가스 집이 있다. 상호도 솔직한 건지 거만한 건지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이다. 바로 이곳이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일본식 돈가스의 광풍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돈가스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다.

30대 후반의 김재호 사장. 군대를 다녀와서 뒤늦게 경희호텔전문대 조리과에 90학번으로 들어가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고 2년의 학부 과정과 1년의 실습 조교 생활로 요리의 기초를 쌓은 다음, 본격적인 요리를 배우고자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일본의 요리 학원을 이수하고 본격적인 현장 수업을 위해 일본의 식당에 취직을 하려는데 한국에서 온 요리사라 그랬는지 흔쾌히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수업의 과정이 너무도 길다는 현실적인 벽에 부닥치게 된다.


김재호씨는 일단 낮엔 한식집, 밤엔 가라오케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게 되고 30개월을 일한 결과 모은 돈 1억을 들고 95년 한국에 돌아온다. 호텔을 들어갈까 생각하는데 선배들은 호텔에서 안정된 요리사의 길을 걷기보다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식당을 가질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결국 김재호씨는 1년 정도 우유배달을 하면서 점포를 보러 다니게 되는데 당시는 IMF 이전이라 점포에 거품이 있어, 가격이 비싸 맘에 드는 곳은 도저히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 된다.

그래서 누나가 작게 운영하고 있던 '멋진 남자 멋진 여자'라는 식당을 본격적으로 같이 하기로 한 것이고 돈가스와 다양한 음식들을 팔다가 점점 돈가스 전문점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고 지금의 자리로 오면서 김재호씨만의 색깔을 입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까지 다녀온 김재호씨가 차린 돈가스 전문점이 왜 젓가락으로 먹는 일본식 돈가스가 아닌 나이프로 썰어 먹는 돈가스가 된 것일까. 여기서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이 생길 당시인 199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 외식 산업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재호씨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닐 무렵인 80년대에서 90년대 초만 해도 포크커틀릿인 돈가스라는 음식은 경양식집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인기리에 팔리던 메뉴였다. 물론 비후까스, 함박스텍 정식 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당시 경양식집들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어땠는가? 대낮에도 들어가면 어두침침했고 무엇보다 칸막이들이 적지 않게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88올림픽 이후 우리의 외식 산업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는데 어두침침한 경양식집에서 즐겨먹던 메뉴들이 밝은 곳(?)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맥주는 톡 쏘는 생맥주가 되어 밝고 경쾌한 호프집들로 옮겨오고, 커피는 자댕 같은 커피 전문점에 자리를 넘겨주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도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밝고 넓은 형태의 새로운 스타일의 공간들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전의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였던 돈가스 형제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이식되지 못한 것이다.

a '이상한 치킨까스'

'이상한 치킨까스' ⓒ 김영주

김재호씨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도대체 그 많던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먹던 분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돌아가신 것도 아닐 텐데, 다 어디로 간 거지? 그렇다면 밝은 곳에서 경양식집에서 먹던 돈가스를 팔아 봐? 혹시 이곳에 틈새시장이? 그렇게 해서 자리에 앉으면 크림수프부터 나오고 포크로 누른 다음 나이프로 써는 돈가스가 나오는 돈가스 전문점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재호 사장이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은 창업을 하려고 할 때는 일단 유행에 머무를 것 같은 아이템은 피하고, 자신만의 상황 파악과 계산 등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재호씨가 일본식 돈가스는 싫고 정통 돈가스가 좋아서 후자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마침 일본식 돈가스도 서서히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창업비용에 있어서도 일본식 돈가스가 많이 드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정통 돈가스를 궤도에 올려놓은 다음 나중에라도 일본식 돈가스를 도입을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97년 IMF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IMF가 극복된 후 외식 산업을 둘러보니 어느새 일본식 돈가스가 더 대중화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던 정통 돈가스가 본의 아니게 돋보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걸로 색깔을 굳히게 된 것이다.

물론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이 처음부터 참 잘된 건 아니었다. 2001년까지 한 5년 정도는 고전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김재호씨의 부인이 다니던 회사도 부도나고 김재호씨는 낮엔 채권회수 회사에 나가 일을 했고 퇴근을 한 저녁에야 장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소스는 자신이 직접 연구 개발을 하고 만들었지만 사장이 가게를 온전하게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잘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 일과 장사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머지않아 다가왔고, 김재호씨는 고민 끝에 결국 가게에 전념하기로 한다.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은 계속적인 연구 개발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게 되는데 한 단계 도약을 하게 되는 계기는 2001년 9월 14일 SBS <리얼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의 한 꼭지인 '그곳에 가면'에 방송이 되면서였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은 도약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월드컵을 전후해서 잡지사 등 각종 언론에서는 젊음의 거리 홍대 주변에 대한 취재가 많아지는데, 놀고 마실 곳은 많지만 제대로 밥 먹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색하게 자리잡고 있는 돈가스 전문점인 이곳이 덩달아 언론에 노출이 되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홍대 앞에 술집과 바, 클럽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된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 상황이 좋다고 해도 기본적인 돈가스 맛이 없다면 손님은 줄어들 것이다. 김재호씨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 대신 맛있는 돈가스 만들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돼지는 그 날 잡은 암퇘지만을 쓴다. 좋은 고기는 식어도 부드러운 고기가 좋은 것이다. 고기를 판단하려면 튀긴 다음 식혀보면 안다. 식어도 부드러워야 한다.

빵가루는 일본식 돈가스와 달리 입자가 고운 부드러운 것을 쓴다. 그래서 바삭거림은 다소 덜할지라도 부드러운 빵가루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스는 야채와 과일이 12가지 정도 들어가는데 지금의 소스를 완성하는 데까지 4년 걸렸다고 한다. 약간은 새콤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달콤해야 하고 너무 가볍지 않아야 하며 색깔은 밝은 브라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튀김기는 2개를 쓴다. 1차는 180도에서 30초 튀기고, 2차는 170도에서 1분 30초 정도 튀긴다. 2번 튀겨야 바삭하기 때문이다. 튀긴다는 것은 넣으면 일단 재료가 기름을 먹고, 그 다음은 재료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는 과정인데 꺼내는 시점은 오로지 감각으로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은 일단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한 동화풍이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누님 친구가 살던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라 벽이 많아서 테이블을 많이 놓을 수 없어 불만이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분위기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고, 지금의 돈가스 가격은 97년 받던 그대로란다.

이 집 돈가스의 투톱은 '얼리지 않은 돈등심으로 만드는 부드러운 돈가스. 저희 가게만의 브라운소스'라고 메뉴판에 적혀 있는 「참 잘 하는 돈까스」와 '노릇노릇하게 구웠다는 꼬동블루식 닭요리. 햄과 모차렐라 치즈, 체다 치즈가 부드러운 닭 가슴살과 어우러지는 저희 집의 명물'이라고 적혀 있는 「이상한 치킨까스」이다. 그러고 보면 상호나 음식 이름 모두가 친절하고 재미있다. 김재호씨의 간판과 메뉴판 철학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서 공부했지만 일본식 돈가스가 아닌 정통 돈가스로 자신의 색깔을 고수하고 있는 돈까스 참 잘 하는 집처럼 거리 곳곳에 다양한 '잘 하는 집'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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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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