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빅쇼' 앞두고 고민 깊어가는 SK

주총 3개월 앞으로... 겉으론 느긋해도 우호지분 확보 비상

등록 2004.12.06 20:43수정 2004.12.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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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진은 SK 본사 빌딩.
SK는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진은 SK 본사 빌딩.오마이뉴스 권우성
SK(주)(이하 SK)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퇴진 의도를 가시화한 외국계 펀드 소버린 자산운용과 두번째 표대결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3월로 예정된 43차 정기주주총회에서 SK는 그룹 경영권을 놓고 소버린과 사활을 건 대결을 벌여야한다. 그러나 주변 여건은 지난 3월 열린 42차 주주총회와 비교해 여러모로 SK에 불리해졌다.

우선 외국인 지분율이 지난해 말 44%선에서 최근엔 61.35%까지 치솟았다. 소버린 14.93%, 웰링턴 9.04%, 캐피털 그룹 6.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템플턴 자산운용도 현재 3%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4대 주요 외국인 주주 지분율만 해도 33%를 넘어선 상황이다.

반면 현재 SK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최태원 회장 0.6%, SK C&C 8.60% 등 16.91%다. 또 이번에 1000억원 어치의 SK 주식을 매입하기로 한 팬택앤큐리텔 지분 1.1%와 하나은행 등 채권단 지분 3.19%, 이토추상사 0.26% 등 일본의 거래처 지분을 모두 합쳐도 SK의 우호지분은 23%를 넘지 않는다.

이같은 우호 지분의 감소는 지난해 말 SK의 자사주를 사들여 백기사(우호주주) 역할을 한 회사들이 지분을 정리한 반면 외국인 주주들은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율 61%... 우호지분은 23% 넘지 않아

SK는 지난해 말 10.41%에 이르던 자사주 지분을 SK에 우호적인 회사에 매각해 0.75%까지 낮췄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주총을 앞두고 지지세를 높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지난 주총에서 SK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백기사들은 주가가 오르자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SK 주식 110만여주를 매각해 지분율을 0.87%로 떨어뜨렸다. 산업은행도 지분율을 현재 0.42%까지 낮췄다. 또 지난해 말 127만주를 매입한 팬택앤큐리텔은 정기주총을 위한 주주확정일이 지나자 바로 지분을 정리했다.

당시 채권단과 일부 기업들이 SK의 우호주주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국가 기간산업인 에너지와 통신사업의 경영권을 외국자본으로부터 지켜낸다는 명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가 차익 실현에 대한 기대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팬택앤큐리텔은 지분 매입 이후 SK텔레콤에 단말기 납품 물량이 늘어나는 혜택도 맛봤다.


그러나 지금은 SK의 주가가 이미 많이 올라 올해는 백기사 역할을 해도 별다른 차익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 3만원선을 오르내리던 SK 주가는 최근 6만4000원대까지 올라있다. 업계에서는 SK 상승이 소버린과의 지분경쟁으로 과열된 측면이 있어 이정도면 오를만큼 올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가가 2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백기사들이 주식취득에 들여야할 자금 규모가 2배가 된 것도 부담 중 하나다. 실제로 팬택앤큐리텔은 지난해 350억원으로 1%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1% 지분 확보에 1000억여원을 들여야한다.

그나마 우호주주들에게 매각할 자사주도 올해는 0.74%로 얼마 남지 않았다. 주총을 앞두고 새로운 백기사를 찾아야 하는 SK에게는 이래저래 불리한 상황이다.

주가상승, 잔여 자사주도 얼마 남지 않아.. '백기사'확보 이중고

SK 관계자는 "우리가 주식 매입을 요청한다해도 주가 차익 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호응해 줄 회사들이 있겠느냐"며 "손실보전에 대한 이면계약을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번 주총과는 달리 이번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도 SK에게는 걱정거리다. 지난 주총 때에는 최 회장의 등기이사 임기가 끝나지 않아 해임을 위해서는 출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만 했다. 그러나 내년 주총에서는 최 회장의 임기가 끝나 주주 과반수 출석과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만 확보하면 최 회장의 재선임을 저지할 수 있다. 해임 조건이 작년보다 더 완화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주총에서 SK가 소버린에게 판정승을 거둔 직후에도 내년 주총이 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당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빅쇼(Big Show)'를 위해서는 내년을 기다려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K는 겉으로는 느긋한 표정이다. 획기적으로 개선된 올해 경영실적과 꾸준히 추진해온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경영성과로 충분히 정면돌파가 가능하다는 게 SK의 판단이다. 특히 상당수 외국인 주주들이 지난 주총에서 SK를 지지한 전례가 있는데다, 국내외 주주들로부터 현 경영진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도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SK 관계자는 "올 경영실적과 지배구조개선 성과를 통해 국·내외 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소버린을 제외한 외국인 주주들도 현 경영진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61%가 넘었지만 이들의 주총 참석율이 낮고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 소버린과 동일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낮은 것도 SK에게는 위안거리다.

겉으로는 느긋한 SK... 물밑에선 백기사 확보에도 적극적

그렇지만 SK는 백기사 찾기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는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개별 기업설명회(IR)를 가졌고 일부 금융기관은 SK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지분율 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SK정유 공장이 있는 울산지역에서는 SK 주식 사주기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특히 SK는 지분 매입을 유도하기 위해 올해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작년 250원에 불과했던 배당을 올해는 크게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소버린은 지난 주총에서 외국인 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각 표대결마다 45%가 넘는 만만치 않은 지지세를 과시한 바 있다. 이는 과반에 5% 못미치는 수치로 소버린의 물밑 작업에 따라 얼마든지 외국인 주주들의 표심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단기 투자 수익을 노리는 외국계 펀드의 경우 SK텔레콤 지분 매각과 에너지사업 집중 등 소버린이 추구하는 그룹 구조조정 방안이 주가 부양 효과가 큰만큼 이를 노려 소버린에 힘을 보태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빅쇼'는 이제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주주총회에서 백기사들이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연말 주식시장 폐장 이틀 전까지 주식을 사야한다. SK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내년 3월 펼쳐질 빅쇼 승리를 위한 SK와 소버린 간 소리없는 물밑 전쟁은 이제 종반전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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