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신선 맞을 만하구나!

주천 제일의 풍경 요선정과 주천의 명물 섶다리, 명찰 법흥사

등록 2004.12.28 02:02수정 2004.12.28 14:17
0
원고료로 응원
겨울이면 가고픈 곳이 있다. 강과 산이 그려내는 풍광이 아름답고 이런 풍광에 새겨진 선인들의 자국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 바로 주천이다. 그곳엔 주천강을 가로지르는 섶다리와 주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요선정과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그리고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법흥사가 있다. 영월을 다녀올 때면 시간이 모자라 그냥 지나쳐 온 곳이어서 항상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

주천은 섶다리가 있어 겨울에 가야 제 맛이 난다
주천은 섶다리가 있어 겨울에 가야 제 맛이 난다김정봉
중앙고속도로 신림 I.C.를 빠져 나와 10여km를 달리면 주천에 닿는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음식점들이 산골 마을의 정취를 해치긴 해도 남으로 뻗은 국도에 비해 제법 한적한 산골 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찐빵으로 유명한 황돈을 지나면 얼마 가지 않아 주천에 이른다. 주천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것이 주천의 명물 섶다리다. 섶다리는 물에 강한 물 버드나무를 새 다리 모양으로 박고 그 위에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골격을 만든 후 그 위에 솔가지로 얽어 흙으로 다져 만든다. 못 하나 박지 않고 만들긴 하나 황소가 지나가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섶다리 풍경. 축제의 마당도 되고 화보집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섶다리 풍경. 축제의 마당도 되고 화보집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김정봉
<옛 다리, 내 마음속의 풍경>의 저자 최지연님의 말대로 물과 다리와 하늘이 하나되는 다리다. 돌로 그럴싸하게 만든 홍예다리를 '청주'라 비유하면 섶다리는 '탁주'라고나 할까. 투박한 멋이 난다.

하늘과 물과 다리가 하나가 되다
하늘과 물과 다리가 하나가 되다김정봉
이 섶다리는 본래 추수가 끝난 뒤에 만들어져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강물이 불어나면 자연스레 떠내려간다. 예전엔 영월과 정선에 많이 놓여져 주민들의 생활 도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다가 콘크리트 다리에 밀려 사라졌던 것이 판운리 청년들이 다시 놓기 시작해 어느덧 주천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주천강은 횡성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주천면을 휘돌아, 서면 신천리에서 평창강과 합류하여 서강이 되고 영월에 이르러 동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이 된다. 주천강은 상류에 속해 주천강변의 풍광이 수려하다. 이런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한 것이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과 요선정으로 주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전경. 마애여래좌상 옆에 요선정이, 그 앞에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는 앙증맞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전경. 마애여래좌상 옆에 요선정이, 그 앞에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는 앙증맞은 삼층석탑이 서 있다김정봉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물방울 같이 생긴 큰 바위에 새겨져 특이한데 뒤로는 벼랑이 아득하고 앞으로는 오는 이를 반기고 있다. 친근하게 느껴졌다가 희한하게 다가오고 그 앞에 다가서면 아찔하다. 전체 높이가 3.5m에 이르는 고려 마애불인데 살이 찌고 둥근 얼굴에 눈·코·입과 귀가 큼직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체에 비해 앉아 있는 하체의 무릎 폭이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체의 길이도 너무 길어 신체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다. 게다가 하체의 무릎 폭에 맞추어 발을 표현하다 보니 발이 지나치게 크게 보여 발가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강원도엔 마애불이 드물기 때문에 애정이 더 간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강원도엔 마애불이 드물기 때문에 애정이 더 간다김정봉
전체적으로 힘이 넘치지만 균형이 맞지 않고 옷 주름과 신체 각 부분의 표현이 형식화되어 있어서 고려시대 지방 장인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강원도 지역엔 마애불이 드물기 때문에 이 마애불에 무한한 애정이 간다.


이 마애불 옆에 있는 요선정(邀僊亭)은 조선 중기 풍류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곳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양사언이 누구인가? 그는 해서와 초서에 능해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함흥, 평창, 강릉, 회양, 안변, 철원 등 강원 지방의 여덟 고을에서 수령을 지내면서 경치가 수려한 곳이면 그의 필적을 남기곤 했다.

강릉 부사로 부임하면서 봉평 팔석정이라는 곳에도 여지없이 그의 필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는 풍광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지 않았나 싶다. 팔석정이라는 곳이 언뜻 보기에는 그리 빼어난 경치가 아닌 것처럼 보이나 가까이 가서 보면 볼수록 마음을 사로잡는 멋이 있다.


마애여래좌상 바위에서 내려다본 주천강. 과연 신선을 맞을 만하다
마애여래좌상 바위에서 내려다본 주천강. 과연 신선을 맞을 만하다김정봉
요선정도 겉으로 봐선 별개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거기에 오르면 이곳을 빼놓고 주천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풍광이 좋다. 5분 남짓 걸어서 닿을 수 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하지만 거기에 올라 주천강을 내려 보고 있으면 여기를 오르지 않고 갔더라면 후회 막심할 뻔했을 거라 할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다. 과연 이름대로 신선을 맞을 만하다.

요선정은 수주면 무릉리에 거주하는 요선계 계원들이 중심이 되어 1915년에 건립했다. 주천강 상류인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의 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

원래 어제시는 숙종이 직접 하사하여 주천강 북쪽 언덕에 위치했던 청허루에 봉안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청허루는 붕괴되고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일본인 주천면 경찰지소장이 소유하고 있었다. 요선계 회원들은 일본인이 숙종의 어제시 현판을 소유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많은 대금을 지불하고 매입했고 이를 봉안하기 위해 요선정을 건립했다.

전통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의 산물인 섶다리와 법흥사를 향하여 무릉리로 가는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의 모습을 보면 주천의 힘이 느껴진다. 비록 산골 마을이라 한다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고장이다. 이 탑은 예전에 험한 길을 걸어 법흥사를 찾아온 신도들을 안내하는 석탑이라고만 알려져 있고 그 유래를 알 수 없지만 이 탑 하나만으로도 주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 법흥사를 안내하는 석탑으로만 알려져 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 법흥사를 안내하는 석탑으로만 알려져 있다김정봉
법흥사 가는 길은 천변(川邊)을 따라가는 길이어서 좋다. 곳곳에 펜션이 자리하고 있으나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하다. 계곡 줄기가 끝날 즈음 사자산의 남쪽 기슭에 법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법흥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백덕산이, 서쪽으로는 삿갓봉 그리고 뒤로 연화봉이 법흥사를 감싸안은 형국이다.

법흥사는 통일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의 중심 도량인 흥령선원지의 옛터이다.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했으며 도윤국사와 징효국사 때 크게 산문이 번성했다. 그러나 진성여왕 4년(891년) 병화로 소실되었고 고려 혜종 1년(944년)에 중건했으나 그 뒤 또 다시 소실된 채 천년 가까이 그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법흥사로 개칭됐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징효대사보인탑비, 징효대사부도, 법흥사부도, 법흥사석분 등이 있다.

요새 새로 지은 원음루를 지나면 왼쪽으로 고풍스런 극락전이 있고 극락전 오른쪽 뒤편에 징효대사부도와 부도비가 양지 바른 곳에 모셔져 있다. 징효대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파를 연 칠감선사 도윤의 제자로 흥녕사에서 선문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던 분이다.

쭉쭉 뻗은 소나무 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선원이 있고 오른쪽 언덕길을 올라 돌면 연화봉을 배경으로 적멸보궁이 서 있다. 멀리 보이던 연화봉은 적멸보궁 가는 길에 모습을 감추었다 나타냈다 두어 차례하고 나서 적멸보궁 앞에선 그 모습을 훤히 드러낸다.

적멸보궁 오르는 길
적멸보궁 오르는 길김정봉
적멸보궁은 석축을 쌓은 대지에 마련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보궁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는데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건물 뒤쪽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전수 받아 상원사, 정암사, 통도사, 봉정암에 사리를 봉안하고 이곳 흥녕사(법흥사)에 마지막으로 봉안했다. 건물 뒤쪽에 있는 부도탑에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는 하나 이견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적멸보궁. 서기를 머금은 연화봉이 듬직하게 서있다
적멸보궁. 서기를 머금은 연화봉이 듬직하게 서있다김정봉
이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는 징효대사 부도와 같은 형식이나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명 사리탑이라고 하는 이 부도는 넓고 네모난 돌을 바닥에 깔고 1단의 층을 만들어 팔각의 아래 받침돌과 겹꽃잎 연꽃 무늬가 새겨진 받침돌을 놓았다. 몸돌은 위아래가 약간 좁아진 배흘림이 있는 팔각으로 앞 뒤 양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들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여섯 면에는 신장상을 돋을 새김하였다.

법흥사 부도. 일명 사리탑이라 하며 바로 옆에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이 있다
법흥사 부도. 일명 사리탑이라 하며 바로 옆에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이 있다김정봉
부도탑 옆에는 법흥사 석분(강원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 전하나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돌방의 겉모습은 흙을 붕긋하게 덮어 무덤처럼 보인다. 돌방 입구는 네모꼴로 만들었으며 통로를 통해 돌방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벽면은 둥그스름하다.

돌방 벽은 10단까지 쌓아 한장의 돌로 덮었다. 돌방 안의 크기는 높이 160cm, 깊이 150cm, 너비 190cm 정도이다. 지금은 화강암으로 단을 쌓아 들어갈 수 없다. 토굴 옆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셔 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 있다.

돌아가는 길에 무릉리에 이르니 아까 보았던 삼층석탑이 다시 보였다. 법흥사에서 나와 배웅이라도 하듯 반갑게 인사한다. 법흥사에 석탑이 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주변에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번 사람 있나요?"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