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스리랑카 바티칼로아 남부 지역에서 한 여인이 해일로 파괴된 집 앞을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폐허'라고 할까? 아니면 '초토화'라고 할까?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참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로부터 해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가에는 완전하게 파괴되어 무너진 잔해만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30도에 이르는 무더위와 함께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작업을 하는 이나 지나가는 이들까지도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나 수건으로 코를 쥐어싸고 있다.
거리마다 이어진 흰 띠, 도움을 요청하는 현수막
지친 얼굴 위로 휘날리는 흙먼지가 얼룩지고 이내 땀방울과 함께 흘러 내린다. 집집마다 차량마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흰 조기를 내 걸고 있다. 길거리에는 길게 이어진 흰 띠들이 늘어져 있고, 도움을 요청하는 현수막들이 바람에 춤을 춘다. 참사 현장마다 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 군인들과 복구 작업을 하는 군인들이 줄지어 있다. 이들 얼굴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길가에는 먼저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불도저로 밀어놓은 쓰레기 더미가 있는데 집집마다 쓸어내는 쓰레기까지 더해져 완전히 산을 이루고 있다. 무너진 집들마다 포클레인이나 불도저가 밀어놓은 폐자재와 쓰레기의 불길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곳곳마다 피어오른다. 전염병과 냄새, 전염병의 매개체인 파리를 막아내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다.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에는 여지없이 소와 염소들, 개와 까마귀가 몰려들어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직도 나무 위에는 누군가 아끼며 입었을 옷가지와 담요들, 온갖 쓰레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쪽빛을 자랑하는 스리랑카의 바다에는 배 한척도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배들은 부서진 채 엎어져 있거나 언덕 위편이나 부두에 올라앉아 있고 도로 위나 심지어는 나무 위에 매달려 있기도 한다. 온 세계의 관광객을 유혹하던 백사장은 고요하기만 하다. 죽음의 유혹을 떨쳐버리려는 사람들은 백사장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정말 한 사람도 모래 위를 밟지 않는다. 다리는 비틀어져 무너져 내렸고 흙을 부어 만든 임시 도로가 구호물품을 나르는 차량을 힘겹게 통행을 시키고 있다.
나뒹구는 열차 객실에는 시신 썩는 냄새 진동
기찻길은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하늘로 치솟아 있고 콘크리트 침목이 실로폰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다. 철도만이라도 복구하자면 족히 10년은 걸릴 것 같다.
군인들의 제지를 피하며 눈치껏 들어가 보니 기차는 뒤집어진 철로에서 백여 미터나 나자빠진 채 있다. 객차는 띄엄띄엄 흩어져 꼬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차의 바퀴는 전멸해 뿔뿔이 흩어져 있고, 뒤집어진 객차 안에 들어서니 썩는 시신의 냄새가 숨을 막는다.
두어 걸음을 떼어 객차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를 빨고있던 수백 마리의 파리 떼와 뒤엉킨 작은 벌레들이 일시에 날아올라 얼굴을 때린다. 걸음을 멈추고 감았던 눈을 떠보니 구슬이 달린 빨간 어린이 지갑이 눈에 띈다.
나도 모르게 집어들려다가 혹시나 하는 부질 없는 생각에 손을 거두고 사진기 셔터만 눌러 본다. 더이상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뒤돌아 나오니 뒤편 우거진 수풀더미를 칼로 베어내며 가족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저쪽 편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나며 일단의 군인들이 엉켜 무언가를 들것에 실고 운반한다. 발견된 시신을 플라스틱 돗자리에 싸고 철사로 묶어 밑으로 가로지른 긴 각목 두개 위에 얹어 운반한다. 밑으로는 줄줄 물이 흐르고, 위로는 참을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흐른다. 그 시신은 길 건너편으로 운구되어 포클레인이 캐塚?구덩이 옆에 내려졌다. 구덩이는 10평 정도 면적을 4미터 정도 깊이로 파놓았다.
시신 확인하는 가족도 없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손도끼를 든 군인 하나가 철사를 자르고 긴 작대기로 돗자리를 펼쳐내자 심하게 부패된 얼굴이 보인다. 아뿔사! 얼굴이 드러나자 보는 이들이 갑자기 탄식을 한다.
얼굴은 새까맣게 부패해 있는데 구더기들이 새하얗게 흘러내린다. 쉼없이 들고나거나 머리를 내밀며 꼼지락거리며 기어 다닌다. 구더기가 미운지 군인 하나가 긴 싸리 빗자루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예상치 못했던 두피가 훌렁 벗겨지고 흰 두개골이 햇빛을 반사시킨다.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온다.
그 군인은 그런 결과를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며 계면쩍게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내온다. 평소 하던 대로 주머니 쪽을 위 아래로 쿡쿡 찔러 보더니 아니 되겠는지 이내 긴 갈고리로 능숙하게 시신을 뒤집는다. 곧바로 손도끼를 들고 불룩한 청바지의 뒷주머니를 겨냥한다.
손도끼의 날 안쪽을 주머니에 걸어 주머니를 뜯어내자 검은 지갑이 젖은 채 주인 몸에 밀착되어 떨어지기를 거부한다. 파란 고무장갑이 매정하게 지갑을 들어내고 여기저기 뒤지자 신분증이 나온다.
신분증을 뽑아 옆에 서있는 군인에게 건네어주자 고개를 내저으며 한걸음 물러선다. 아마도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에 "잠깐만"을 외치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친절하게도 자선을 베풀 듯 도끼 위에 신분증 얼굴이 보이게 해서 각도까지 맞추어 비춰준다.
고마운 마음에 몇차례 더 셔터를 누르자 외신기자 두명이 자리를 탐내고 끼어든다. 못 이기는 척 자리를 피해 비켜서자 이내 줄줄이 시신이 운반되어 들어온다. 반토막인 어린이 시신도 있다. 그렇게 신원 확인을 할 따름이고, 얼굴 사진을 찍거나 실종자 가족들에게 알려 확인하는 절차도 없다. 그저 10여구가 모이면 구덩이에 밀어 넣고 흙을 덮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시신을 확인하는 가족이 전혀 없다. 실종자를 찾을 가족까지 실종된 것이거나, 그 물길 속에서 살아난 사람이 없기에 찾기를 완벽하게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전염병 발생에 초비상이 걸린 정부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일까? 며칠 전 콜레라가 발생했다는 국제기구의 발표를 스리랑카 보건장관이 극구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그나마 찾아오는 구호팀들의 활동 저해를 우려해서는 아닐까?
완벽한 파괴, 그 안에도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