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수상에게 인류애를 배우다

[쓰나미 한달] 마힌다 라자 박사 수상, 한국 외국인노동자단체 직접 만나 도움 요청

등록 2005.01.26 10:46수정 2005.01.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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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없는 지진해일(쓰나미)로 남아시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중 스리랑카는 1만3천여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을 정도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재난 복구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스리랑카에 머물렀던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표인 김해성 목사가 <오마이뉴스>에 쓰나미 발생 한달을 맞아 세번째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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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성 목사-현지보고①] 시신 확인하는 가족도 없다

a 구호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

구호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 ⓒ 김해성

스리랑카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나라다. 사면이 모두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호텔과 리조트, 많은 위락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은 당연히 산 같은 높은 지대에 살지 않고 바닷가에 살고 있다.

스리랑카는 국토 중앙에 고산지대가 있기에 해안선을 중심으로 도시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진이나 해일을 당해 보지 않아서 재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남한보다 조금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가 지진해일로 인해 온통 파괴된 것이다.

작년 12월 26일 지진과 해일이 스리랑카를 휩쓸고 지나간 후 한국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공동체로부터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해일 피해 지역이라고 나오는 곳이 다름아닌 자신들의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이다. 게다가 통신도 두절되어 아무리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완전히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가족이 있는 스리랑카로 달려가고 싶지만 한번 가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 노동자가 모은 옷가지와 적은 돈에서 시작된 구호활동

a 탈선한 기차. 부서진 채 바퀴와 몸체가 따로 떨어졌다.

탈선한 기차. 부서진 채 바퀴와 몸체가 따로 떨어졌다. ⓒ 김해성

a 물이 빠진 뒤의 당갈라 지역. 사람들 뒤의 나무에는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물이 빠진 뒤의 당갈라 지역. 사람들 뒤의 나무에는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 김해성

참사 발생 후 이틀 정도 지났을 때 스리랑카 친구들이 커다란 상자 몇 개와 봉투 하나를 가지고 왔다. 성탄절에 받은 선물과 옷가지를 다시 모으고 없는 돈이지만 조금씩 모금했다는 것이다. 그 정성과 마음이 갸륵하게 느껴졌다. 물론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는 "에게, 이 조금밖에 안되는 것을 어떻게 보내누"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성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모금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고 우리 다함께 정성을 모았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나라별 공동체에서 모금을 했다.

이렇게 정성이 모이자 이 여세를 몰아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설립해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도 휴업하고 의료진을 파견해 봉사활동을 하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의도는 좋았지만 이 계획은 이내 수포로 돌아갔다. 의사 두 명을 중심으로 최소 인력이 입원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들을 내버려 두고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해결하는 것은 어렵고 다른 곳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그중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선뜻 찾아오셨다. 그분들은 스리랑카 형제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스리랑카 방문과 함께 430만달러어치의 의료품과 생활필수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과 협력병원 관계인 고려대학교 의료원에서도 18명의 의료진과 6톤 분량의 의약품을 지원하겠다고 전해 왔다.

이렇게 대강의 준비를 마치고 직접 스리랑카에 갈 사람들은 정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 직원 중에서 자비로 비행기표를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조활동을 펼치기 위한 방문단이 꾸려져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결국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덩이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광주리가 남은 것처럼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작은 정성이 씨앗이 되어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이룬 것이다.


스리랑카 수상과 맺은 인연

a 스리랑카 마힌다 라자 박사 수상과의 만남.

스리랑카 마힌다 라자 박사 수상과의 만남. ⓒ 김해성

사실 우리의 스리랑카 방문은 1년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2년 전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 한사람이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과 중국동포의 집, 스리랑카 공동체의 기념 행사장을 방문했다. 스리랑카의 국회의원 마힌다 라자(Mahinda Raza Baksha) 박사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우리들에게 몇 번이나 감사를 표시했다.

그에게 남한산성 밑자락에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때 그가 우리를 스리랑카로 초청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는 스리랑카를 방문할 수 있었고 그는 우리를 국회의사당으로 안내해 만찬을 베푸는 등 모든 것을 배려해 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스리랑카의 야당 총재 위치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1년여 후. 그는 스리랑카의 수상 자리에 올랐다. 수상이 된 후에는 그는 우리를 잊지 않고 다시 초청했고 그 방문이 1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쓰나미 참사로 인해 좀 더 일정을 앞당겨 스리랑카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출발하기 전 스리랑카 공동체 회장인 프레마 랄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스리랑카에 거는 것 같기는 했는데 알고 봤더니 스리랑카의 마힌다 라자 박사 수상에게 전화를 한 거라고 한다. 수상은 "(한국의 외국인노동자의 집 사람들이) 스리랑카에 오면 꼭 모시고 와서 만나도록 해 달라"고 분명히 요청했다고 했다.

일개 노동자가,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수상에게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일정을 잡다니….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예전에 국회의원이었을 때는 그렇다고 해도 수상이 된 지금에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지금은 지진해일로 인해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비상사태에 처해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스리랑카 수상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졌지만 스리랑카에 간 우리는 수상 관저를 찾았다. 무사히(?) 경비 초소와 문 대여섯 군데를 통과하고 나니 우리가 진짜 스리랑카 수상을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리랑카 수상의 열린 자세에 감복하다

a 스리랑카의 유명한 휴양지인 골에서 시신을 발견해 옮기고 있는 사람들.

스리랑카의 유명한 휴양지인 골에서 시신을 발견해 옮기고 있는 사람들. ⓒ 김해성

우리는 드디어 스리랑카의 마힌다 라자 박사 현 수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일행을 영접하고 한국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돌봐 주는 것과 이번 참사에 대한 복구와 지원 활동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스리랑카 수상은 한국과의 인연이 남다른데 수상의 친조카도 지금 한국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참으로 거짓말 같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귀국해 집에 돌아와 초등학생인 딸에게 스리랑카 수상을 직접 만났다고 했더니 즉각 "정말이야? 거짓말이지?"하는 게 아닌가?

한국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각국에서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한국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능력과 배경을 갖춘 이들인데 그중에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자국으로 돌아가 이미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된 이들도 있다. 수상은 한국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자국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우리 또한 스리랑카와의 좀 더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쓰나미로 남아시아에서는 2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복구에만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피해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서, 국경과 피부색이 다른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해서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스리랑카의 수상이 한국의 일개 사회단체의 구성원인 우리 일행을 소탈하게 맞이하고 도움을 당부한 것처럼 우리들도 그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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